해군·해경 단속 비웃듯 수백척 NLL 넘어와 밤마다 꽃게 싹쓸이… 우리 어민들, 발만 동동
12일 오후 6시 20분쯤 인천 옹진군 연평도 북쪽 연평리 미기해안. 바닷가에서 300여m쯤 떨어져 훤히 바라다보이는 우리 바다에 오성홍기를 펄럭이는 중국 어선 70여척이 한동안 멈춰 서 있다가 '삐익' 소리와 함께 일제히 움직였다. 처음에는 10~20여척씩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다 잠시 후 시위하듯 일렬로 나란히 서더니 본격적으로 고기잡이에 나섰다. 고기 운반선인 듯한 배 2~3척도 눈에 띄었다."저들이 몰려와 낮에 자고 밤에 조업해요. 요즘 꽃게, 까나리 철인데 바다 밑을 훑어 싹쓸이를 하죠. 하지만 우리 해군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니까요."
주민 김영식씨는 "그런데 우리 배들이 NLL(북방한계선) 근처로 조금이라도 가서 조업하려 하면 해군이 레이더로 파악해 가지 말라고, 가면 조업정지를 당할 수 있다고 바로 연락해 온다"며 "우리는 들어가 보지도 못한 곳에서 쟤(중국 어선)들은 저러고 있으니 연평도는 우리나라 땅이 아닌 모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일부 주민들 사이에 '천안함 사건 이후 해군이 또 무슨 일을 당할까 봐 몸을 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돌고 있다"고 했다.
실제 섬 바로 앞에 이들이 불법 정박하고 있지만 우리측 대응은 없었다. 4척의 해군 고속정은 그대로 부두 근처에 정박 중이었고, 섬에 있는 해병 초소는 중국어로 "경고한다, 경고한다, 대한민국 영해를 침범했으니 신속히 대한민국 영해에서 떠나라"는 방송만 10분 간격으로 계속 내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옹진군이 운영하는 어업지도선의 한 직원은 "지금 같은 꽃게철에는 중국 배를 셀 수도 없다. 소청도만 한 섬 하나가 움직인다고 보면 될 정도 규모"라 했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을 우리 해군이 방치하는 바람에 '꽃게의 본고장'인 연평도 어민들은 꽃게철임에도 꽃게 구경을 못하고 있다.
신승원(70) 연평도 어민회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 어선들은 NLL 근처를 오갔을 뿐 이렇게까지 우리 영해에 막 들어오지는 않았다"며 "올해는 지난 4월부터 한두 척씩 영해로 들어오더니 이젠 아예 수백척이 떼를 지어 자기네 부두처럼 우리 바다를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50여척의 연평도 어선들은 조업 나가봐야 잡히는 게 없어 그냥 돌아와 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 ▲ 12일 오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중국 어선들이 연평도 북쪽 해안가에 정박해 있다. 이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짝을 지어 국내에서는 금지된 쌍끌이로 불법 남획을 자행하고 있다. /연평도=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매년 5~10월 하루 평균 300여척의 중국 어선들이 NLL을 넘어와 조업한다. 하지만 단속 건수는 2007년 101척, 2008년 64척, 2009년 61척, 올해는 4척으로 모두 합해야 230척이다. 최근 3년간 단속 건수가 실제 매일 NLL을 넘는 중국 어선 숫자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다.
해경과 해군은 매일 경비정 3척과 고속단정을 보내 단속한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 어선들이 어두운 밤시간에 NL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와 2~3시간 조업하기 때문에 때맞춰 단속하기가 어렵다는 게 해경 설명이다. 특히 연평도 바다는 NLL과 불과 3㎞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중국 어선들이 NLL 북쪽에 숨어 있다가 잠시 내려와 조업한 뒤 돌아가곤 해 더욱 단속이 어렵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연평도에는 8년 전부터 해양경찰 특공대 5명이 상주하며 레이더와 고속단정을 이용해 단속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인천해양경찰서 관계자는 "연평도 주민들로부터 '중국 어선들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항의가 많다"며 "그러나 경비정 1000척을 현장에 내보낸다 해도 근본적 단속은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 어선들이 NLL을 넘는 것을 북한이 허용하는 것을 막는 게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이날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들과 중국 정부 관계자 3명은 배를 타고 연평도 일대를 돌아봤다. 중국 어선들의 한국 영해 침범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중국 관리들이 한국 영해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어선 57척을 사진 촬영했다"며 "2006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중국 관리들과 함께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 관리들이 한국 영해를 침범한 어선 사진을 찍은 뒤 이를 근거로 선원들을 처벌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중국에서 처벌이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