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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출마 약속' 지킨 이완구 전 충남지장

화이트보스 2010. 5. 14. 18:45

'불출마 약속' 지킨 이완구 전 충남지사

입력 : 2010.05.14 17:31

photo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자리 욕심 왜 없겠나… 그래도 약속이 우선"

<이 기사는 주간조선 2105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나라당은 지난 4월 말까지 6·2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중 충남지사 후보와 서울시장 후보 두 곳만을 공천하지 못했다. 서울시장 후보는 경선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고, 충남지사 후보는 공천신청자가 없었다. 한나라당은 충남지사 후보 공천시한을 두 번이나 연기했지만 공천 신청을 한 후보가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충남에 반(反)한나라당 정서가 확산되어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결과이다.

주간조선은 이미 4월 12일자(2100호)에서 이완구 전 지사의 지지도가 4개월째 고공행진하고 있는 점을 들어 ‘현실적으로 한나라당이 충남지사 선거에서 이기려면 이완구 전 지사를 전략공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전략 공천을 포기하고 박해춘 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을 공천했다. 그 직후 이완구 전 지사는 한나라당을 돕겠다고 선언하면서 ‘불출마 약속’을 지켰다.

박해춘 후보는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다. 조선일보 5월 3일자 지방선거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해춘 후보는 13%를 기록, 자유선진당 박상돈 후보(21%)와 민주당 안희정 후보(18%)에 크게 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해춘 후보가 인지도의 불리함을 딛고 ‘3강 구도’를 형성하게 될지 현재로서는 예측 불가능이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이 ‘이완구 전략공천’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이완구 전 지사가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여론조사상의 압도적 우위를 알고도 출마를 포기하는 사례를 본 적이 없고, 차라리 ‘출마 포기’가 출마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완구 전 지사는 ‘손에 들어온 떡’을 놓아버린 채 약속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지난 5월 3일 오후 이완구(李完九·60) 전 충남지사를 만났다. 장소는 서울 금천구 독산동 노보텔호텔 커피숍. 이 전 지사는 충남 서산시장 한나라당 후보 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다가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막 올라왔다고 했다. 이완구 전 지사 측은 “장소를 시내로 하면 약속 시간에 맞출 자신이 없으니 서해안고속도로와 가까운 곳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충남의 민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텐데, 현재 분위기는 어떤가. “혼전 양상이다. 집권 여당이 선전하지 않으면 지역적 기반으로 볼 때 자유선진당이 정서상으로 유리하다. 충남도민이 내게 보내준 지지가 한나라당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제 오늘 돌아다녀 보니 지역주민들이 한나라당에 대한 미움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과연 개인에 대한 지지가 한나라당으로 연결될지 자신은 못하겠더라.”

한나라당에 대한 미움이 왜 생겼다고 보나.“충청도민 대다수가 지지한 사람을 한나라당이 공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가능성이 높았는데, 왜 지사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나. “간단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작년 12월 3일 도지사직을 사퇴할 때 불출마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불출마 약속에는 무소속 출마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출마하면 말을 바꾸는 것이 된다.”

대부분 정치인의 선택 기준은 당선 가능성이다. 무소속으로 나가도 이긴다고 여론조사가 나왔는데 도지사를 한 번 더 하고 싶지 않았나. “나는 뼈 아픈 경험이 있다. 1996년 총선에서 충남에서 유일하게 신한국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이후 DJP연합으로 정권교체가 되었을 때 JP가 6개월간 총리서리로 있었다. 그때 선거에서 진 신한국당이 국회인준을 안해줬기 때문이다. 충청도 민심은 격앙되었다. 내게 자민련으로 당을 옮기라는 압력이 들어왔고 결국 청양·홍성지구당 당원들의 뜻에 따라 당을 옮겼다. 그 선택이  당원과 도민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나서 보니 당을 옮기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옳지 않았다.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었다. 오늘 같은 현실을 만든 이유도 정치인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말을 바꾸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아닌가. 정치를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결심했다.”

솔직히 도지사를 다시 하고 싶지 않았나. “인간적인 고민이 왜 없었겠나. 지사라는 자리가, 권력이라는 면에서 보면 어떤 자리인데…. 장관 지낸 사람, 중앙당 최고위원 지낸 사람들이 지사 한번 하려고 걸신 들린 것처럼 이전투구하는 상황인데. 또 주위에서 무소속 출마해도 된다고 하는데. 하지만 1997년 상황과 똑같다고 생각해서 약속을 지키는 쪽으로 선택했다.”
온라인 카페 ‘완사모’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왔나. “의견이 나뉘었다. 아무래도 격한 반응이 주를 이뤘다. 대부분은 공천을 주지 않은 한나라당을 안 찍겠다는 반응이었다. 일부에서는 당 방침을 수긍한다는 것도 있었고.” 

‘완사모’는 박근혜 팬카페 다음으로 회원 수가 많은 정치인 카페로 알려져 있는데. “회원 수는 약 1만9300명 정도된다. 1만1000명은 충남, 3000~4000명은 대전, 나머지 5000명은 서울·경기·인천·충북·대구·부산 순이다. ‘완사모’는 한나라당 지지자 외에 민주당, 선진당, 무소속도 포함된 순수한 카페 모임이다. 그래서 그동안 나에 대한 지지가 한나라당 지지보다 높았던 것이다.”  

이훈규 한나라당 충남도당 위원장은 ‘충남지사 선거에서 이기려면 이 지사를 전략공천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는데. “(중앙당의 결정이)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정부가 수정론을 들고 나왔는데 원안 관철을 주장하는 나를 공천하면 ‘수정론 포기’로 받아들여져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주변에서 ‘당론을 따르겠다’는 말만 해도 공천을 받을 수 있다고 권유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3일 이완구 충남지사가 국회에서 지사직 사퇴를 선언하고 충남도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전 지사가 무소속으로 출마할 줄 알았다. “한나라당 공천이 끝나기 전에 집사람이 한 모임에 갔더니 그 얘기가 화제가 됐다고 하더라. 그때 모임에 나온 사람 중 6명은 무소속으로라도 반드시 도지사에 출마한다고 예상했고, 4명은 약속을 지킨다고 했다더라.”

기초단체장 출마자들의 지원요청이 쇄도한다고 들었다. 한나라당 공천을 못 받은 사람이 선거 지원을 하는 게 모양이 이상하지 않나. “당원 자격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20여곳을 다녔다. 16개 시군에서 다 요청이 들어왔고 박성효 대전시장도 연락이 왔다. 현실적으로 요청을 다 소화할 수가 없어 미안하다. 기초단체장 선거는 지역 살림꾼을 뽑는 것이다. 기초단체장 선거까지 세종시 이슈로 몰고갈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당원으로서의 책무를 안할 수도 없고. 솔직히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건 사실이다.”

기초단체장 후보들의 개소식에 참석하면 무슨 논리로 한나라당 지지를 호소하나. “세종시 문제는 나 하나로 족하다. 한나라당에 불만 있고 의심하고 있는 거 다 안다. 내가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불출마 약속을 지켰으니 나머지 기초단체장들은 참다운 살림꾼을 뽑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살림꾼을 제대로 뽑아놓고 세종시 문제는 다시 중앙정부와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전문가들은 충남지사와 기초단체장이 야권에 넘어가면 현실적으로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 정권재창출은 어려워진다고 전망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중요한 질문을 했다. (선거에서 지게 되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현실적으로 굉장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본다. 대전·충남 지역의 토양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예컨대 자유선진당 박상돈 후보는 자유선진당 행복도시사수 대책위원장이다. 또 민주당 안희정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자녀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만일 광역단체장이 바뀌면 굉장한 부담이 찾아온다. 정부로서도 대화하기가 훨씬 더 힘들어진다. 경우에 따라선 대화가 단절될지도 모르고….”

지금 국회로 넘어간 세종시 수정안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나. “먼저 정부에서 세종시 문제를 꺼낸 과정부터 말하고 싶다.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가 갖고 있는 파괴력과 예민성을 간과했던 것 같다. 세종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없었다. 절차와 과정에서도 매끄럽지 못했다. 충청을 대표하는 충남지사와도 한마디 상의 없이 수정론을 꺼냈다. 나와는 공식·비공식 접촉이 전혀 없었다. 내가 200만 도민의 정서를 가장 잘 아는 민선 도지사인데, 충남지사가 법집행자인데….”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하나. “충청 지역의 어젠다가 국가적 어젠다로 변질되었다. 타 시도에서는 혁신 도시와 기업 도시 문제로 비화되지 않았나. 세종시 수정안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정에 혼선을 가져왔다. 더이상 시간을 끌어선 안된다. 결론을 빨리 내야 한다. 다른 국정의 발목을 잡아선 안된다.”        

세종시 원안을 주장하면서 권력 측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다. 측근들이 뒷조사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런 것 없었다. 현 정권이 도덕적으로 그렇게 치졸하지는 않다고 본다. 그렇게 할 정부가 아니다.”

도지사직 사퇴 이후 주로 일본에 오래 머물렀던 것으로 안다. 일본에 있으면서 느낀 건 뭔가. “처가 쪽 친척이 일본에 살아서 일본에 머물렀다. 일본의 지방 도시를 두루두루 다녀봤다. 교토, 고베, 오사카, 후쿠오카 등을 다니면서 지방자치제도가 발달한 일본을 체험했다.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만이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지방선거 이후 어떤 정치적 행보를 할 생각인가. “일단은 휴식을 취하고 싶다. 36년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짧았던 식견을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장관 입각설부터 총리 기용설까지 나오고 있던데. “(웃음) 천안 보궐선거에 나간다는 얘기도 있더라. 그건 호사가들이 하는 얘기고. MB(이명박)정부 하반기에 중요한 일들이 많다. 남북관계, 총선, 대선 등. 지방정치 무대에서 역할이 끝난 이상 중앙정치로 복귀할 수밖에 없을 텐데,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때 가서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왜 자신에 대한 충청도민의 지지가 높았다고 생각하나. “정치가 불신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치인이 어떤 말을 해도 이젠 안 믿는다. 최근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 3명이 사퇴서를 제출했다가 슬그머니 돌아오는 것을 보지 않았나. 그런데 내 경우는 약속을 지키겠다며 불출마 선언을 했으니 그런 것 아닐까.”

정치인으로서 이번 선택으로 큰 정치적 자산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정치권에선 그렇게 보고 있더라. 하지만 자산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도지사’라는 자리를 현금에 비유하면, ‘불출마 약속’은 약속 어음이었다. (불출마 약속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치인에게 약속과 신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치인이 약속을 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국민에게 주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가치 추구가 정치의 본질이다. 그것이 훼손 당했을 때 누가 정치인의 행보를 믿어주겠는가. 정치 결사체가 전부 그렇게 나간다면 그 나라 수준은 뻔한 거 아닌가. 사회가 유지될 수 있겠나. 정치 선진국의 경우 약속과 신뢰를 문서화하지 않아도 다 그대로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유지되는 것 아닌가.”

이완구 전 지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불출마한 최초의 광역단체장으로 기록될 것 같다. 2007년 대선 당시 ‘세종시를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한나라당 소속인 이완구 충남지사는 200만 도민을 상대로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되니 걱정마라’며 보증을 섰던 사람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세종시 문제는 이완구 전 지사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한나라당과 이완구 전 지사. 양쪽 모두 충남지사 선거를 놓고 ‘결단’을 내렸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충남표가 항상 승부를 결정짓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역대 모든 정당은 당선 가능성을 공천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당선이 확실한 후보에 대한 전략공천을 포기했다. 이것이 정권재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사태를 결과할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이완구 전 지사는 미련없이 도지사를 포기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손에 쥔 떡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그 ‘결단’으로 인해 우리는 정치인의 약속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