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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보수(保守)

화이트보스 2010. 6. 8. 14:41

가난한 보수(保守)

입력 : 2010.06.07 23:33

선우정 도쿄특파원
4일 일본 차기 총리를 뽑는 민주당 대표선거에 다루토코 신지(50)란 생소한 인물이 출마했다. 5선 중의원이지만 인지도가 높지 않아 민주당 1세대이자 현 재무상인 간 나오토에게 졌다. 하지만 당락과 관계없이 그의 출마는 주목할 만했다. 그의 경력이 일본 정치의 미래를 이끌고 갈 차세대 주역의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보수적이다. 미·일 동맹을 중시하고 기회균등과 건강한 경쟁을 정치 철학으로 삼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의 오키나와 미군기지 재편 시도를 비판했고, 이념이 다른 사민당과의 연립 해체를 주장했다. 오히려 자민당에 가까운 철학이다. 하지만 그는 자민당을 선택할 수 없었다. 의원직을 자녀에게 세습하는 낡은 자민당이 가난한 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난한 지방에서 가난한 양복 직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여동생을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잃었다. 할아버지는 두 눈을 못 보는 장애인이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어떤 상황이라도 자신의 두 다리로 서서 살아가야 한다고 할아버지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기회균등'과 '건강한 경쟁'이라는 보수 철학을 장애인 할아버지가 가르쳤다는 것이다. 부상으로 야구 선수의 꿈을 접은 그를 정치 세계로 인도한 것은 마쓰시타(松下)정경숙이란 정치학원이었다. 거대 가전기업 마쓰시타의 창업자가 돈과 배경이 없어 정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가난한 인재들을 위해 만든 곳이다. 보수적 학풍인 이곳을 그는 3기로 졸업했다.

민주당에는 정경숙 출신 국회의원이 30명 있다. 대부분 보수 그룹에 속한다. 자민당(6명)보다 훨씬 많다. 가장 앞서 가는 마에하라 세이지 의원(48)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모자(母子)가정 출신이다. 당내 정경숙 출신 그룹을 이끄는 노다 요시히코 의원(53)은 자위대원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스 점검원으로 생계를 유지한 시절도 있다.

이들은 한국 386보다 약간 윗세대다. 하지만 이념과 투쟁이 뿌리 뽑힌 조용한 대학을 다녔다. 무엇보다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경제는 고도성장을 넘어 안정 성장으로 진입하던 때였다. 국부는 정부의 재(再)분배를 통해 저소득층과 지방으로 흘러들었다. 19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일본 지방부에 분배된 정부 재원은 도시부의 1.5배를 넘었다는 통계도 있다.

덕분에 다루토코 의원은 가난했지만 비참하지 않았다. 마에하라 의원은 고등학교부터 장학금을 받고 명문 교토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가난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의 온기를 경험한 세대다. 당시 그런 정책을 추진한 정당은 자민당이었다. '자본주의 탈을 쓴 공산주의', '대중 영합주의'라는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그런 정책이 없었다면 지금 일본은 사회를 원망하고 보수를 증오하는 정치인들에게 내맡겨졌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이 중요한 보수의 가치를 스스로 상대 진영에 내줬다. 가난한 인재들에게 보수의 가치를 존중받으려면 보수의 나라가 절대 차갑지 않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려줘야 한다. 일본은 그것을 알려줬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를 미워하지 않는다. 가난한 보수, 건강한 보수를 국가와 사회가 육성했기 때문에 일본의 이념 기반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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