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6일 서해 백령도 근해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북한 어뢰 공격에 폭침한 직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해군작전사령부 등 군 당국의 대응이 허점 투성이었던 것으로 10일 밝혀졌다.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군 당국의 보고 및 위기대응 등에 대한 직무감찰을 벌인 감사원은 이날 중간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이상의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장성급 및 장성 진급 대상자 등 25명에 대해 “전투예방·준비태세, 상황보고·전파, 위기대응조치, 군사기밀관리 등에서 다수의 문제점이 발견됐다”며 국방부에 징계를 요구했다.
징계 대상은 이상의 합참의장을 비롯한 장성급 13명(대장 1명, 중장 4명, 소장 3명, 준장 5명)과 영관급 10명(대령 9명, 중령 1명), 국방부 고위공무원 2명 등 25명이다. 구체적인 징계 수위는 국방부가 정하게 되나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중징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감사는 지난 4월 20일 김태영 국방부장관의 직무감찰 요청에 따라 국방부, 합참, 해군 작전사령부 등 8개 기관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감사원 감사 결과 천안함 사건 발생으로 우리 군 당국의 전투준비태세와 상황보고, 위기대응조치, 군사기밀관리 시스템에서 중대한 허점이 드러났다.
우선 사건 발생 넉달여 전인 작년 11월10일 합참과 해군 작전사령부, 2함대사령부가 가진 전술토의에서 대청해전에서 패전 이후 북한이 잠수함(정)을 이용, 서북해역에서 우리 함정을 은밀히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고도 아무런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해군2함대사령부는 잠수함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천안함을 백령도 근해에 배치하고도 대잠(對潛) 능력 강화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를 감독할 합참과 해작사도 아무런 확인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2함대사령부는 사건 발생 수일 전 ‘북 잠수정 관련 이상동향’ 정보를 전달받고도 적정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발생 이후 상황 보고 과정에서도 늑장 보고와 임의적인 내용 삭제 등이 있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우선 2함대사령부는 사건이 발생한 3월26일 밤 9시22분으로부터 6분여 만인 9시28분 사건 발생 상황을 보고받고서도 해작사에는 3분 후 보고하고 함참에는 17분이나 늦은 9시45분에 보고했다. 2함대사령부는 이 과정에서 천안함 함장 등을 통해 침몰 원인이 “어뢰 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를 받고서도 이런 사실을 합참과 해작사 등 상급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보고를 늦게 받은 합참도 늑장대응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합참은 지휘통제실에서 2함대사령부로부터 이날 밤 9시45분 천안함 침몰을 보고받고서도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에겐 각각 밤 10시11분과 10시14분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긴급상황 전파 시 포함해야 하는 상당수 유관기관에 사건 발생 사실을 전파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합참은 이 과정에서 사건 발생 시각과 사고원인을 왜곡해 보고한 사실도 적발됐다.
사건 당일 해작사로부터 사건 발생 시각이 밤 9시15분으로 추정되며 침몰 당시 폭발음을 들었다는 보고를 받고서도 합참은 사건 발생 시각을 밤 9시45분으로 임의 수정하고 폭발음 청취 사실을 삭제한 채 국방장관에게 보고하고 언론에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또 사건 발생 후 1시간30여분이 지난밤 11시쯤 인근에 있던 속초함이 미상의 목표물을 향해 함포 사격을 한 것과 관련, “KNTDS(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과 TOD(열상감지장비), 레이더사이트 영상 등을 전문가에게 자문해 조사했으나 사격 대상의 실체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그러나 “속초함은 보고 과정에서 사격 대상이 북한의 신형 반잠수정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으나 2함대사령부는 상부에 이를 새떼로 보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상황을 늑장 보고받은 국방부와 합참이 위기대응 등 후속조치를 취하는 과정도 엉망이었다. 국방부는 상황 보고 접수 뒤 즉각 위기관리반을 소집해야 하지만 소집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국방장관에겐 위기관리반을 소집한 것으로 허위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합참 등 일부 관계부대도 역시 위기관리반을 소집하지 않았고 비상시 의무적으로 조치해야 하는 전투대응태세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군 당국의 언론 발표도 부실투성이로 사건 발생 후 국민적 혼란 가중을 부추겼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3월30일 사건 직후 침몰 상황을 찍은 TOD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동영상이 밤9시23분58초부터 녹화된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밤9시33분28초 이후 영상만 편집해 공개, 국민적 불신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또 국방부와 합참은 사건 발생 이튿날인 3월27일 오전 7시40분 청와대 위기상황센터로부터 사건 발생 당시 관측된 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 자료를 받고서도 사건 발생 시각에 대한 적극적인 수정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군 당국이 부실한 초동 대응으로 국민적 의혹을 키웠을 뿐 아니라 합참 합동지휘통제체계(KICCS) 등 상당수 군사기밀을 보안조치를 소홀히 해 외부에 유출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런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다음 주 있을 장성급 인사에서 이상의 의장 등을 경질하는 등 대대적인 쇄신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