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秘史> 북한군의 '거짓투항'
"국군 6사단에 투항한 척한 뒤 기습공격"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6.25전쟁 전사에는 북한군이 국군을 감쪽같이 속였던 기만전술이 기록되어 있다.
적을 속이는 기만전술은 소련군이 독일군과 싸우면서 구사했던 '치사한 교리'로 북한군이 소련군에서 배운 작전술의 일환으로 평가되고 있다.
17일 국방부 6.25전쟁 60주년사업단에 따르면 1950년 6월28일 국군 6사단 7연대가 강원도 춘천시 남방 원창현 고개에서 북한군의 기만전술에 당해 곤욕을 겪었다.
6사단 7연대는 전쟁 개전 초기 춘천방면으로 남침하는 북한군을 격퇴해 국군의 체면을 살려준 용맹스런 부대였지만 북한군 1개 중대의 기만술에 속아 뼈아픈 일격을 당한 것으로 전사는 기록하고 있다.
7연대는 6월28일 육군본부의 지시에 따라 남쪽으로 철수하면서 예하 2대대를 원창현 고개에 배치했다.
이 고개는 춘천 분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해발 600m의 고지였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잡목만 우거져 매복이 쉬웠고 고개로 올라오는 길이 구불구불해서 적을 기습하기 좋은 곳이었다.
6월28일 오후 2시께 2개 연대 규모의 북한군이 원창현 고개로 접근했고, 7연대 2대대는 적의 선두부대가 300m 전방까지 접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당시 7연대는 다른 연대들이 북한군과 격전을 치르는 동안 춘천 남쪽 석사리 인근에서 북한군 2사단을 견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느라 전투다운 전투를 치러보지 않은 상태였다. 부대원들 사이에서는 후퇴 명령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며 상당한 불만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2대대장의 입에서 드디어 사격 명령이 떨어졌다. 장병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 아래로 접근한 북한군 선두부대를 향해 화력을 쏟아부었다. 고개 지형상 도피로가 없었던 북한군은 속수무책 쓰러져 갔다. 2시간 가까이 화력을 퍼붓자 생존한 북한군들이 하나둘씩 백기를 흔들었다.
손수건이나 웃옷을 벗어 흔들었고 심지어 일부 북한군 병사는 주머니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어 투항 의사를 표시했다. 한 손에 따발총을, 다른 손에 태극기나 수건을 들고 투항 의사를 표명한 것. 투항한 북한군 병력은 1개 중대 규모였다.
대대장은 투항하는 병력 중에서 적의 대대장으로 보이는 인물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안내하도록 연락병을 보냈다. 만사 체념한 듯 얌전히 다가오던 북한군이 느닷없이 '괴성'을 지르며 따발총을 난사하며 기습공격을 가했다.
2대대는 다급하게 총을 들어 반격하려 했지만 이미 기만전술 각본대로 덤벼드는 북한군을 저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북한군 부대는 악랄하기로 소문난 최현(전후 민족보위상 임명)이 이끌었다.
비록 북한군은 기만전술을 이용해 사지(死地)에서 탈출했지만 6사단 7연대 2대대에게 큰 타격을 입고 원래 작전계획을 수정, 경기 가평 방면으로 이동로를 변경했다.
젊었던 국군이 북한군의 기만전술에 경험이 없어 급습을 당했던 전투사례였지만 6사단 7연대 2대대는 며칠 뒤 충북 진천의 동락리에서 북한군 1개 연대를 전멸시키는 전공을 세우게 된다. 전쟁 초기 6사단이 극과 극을 오갔던 '풍운의 사단'이란 별칭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threek@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
'아픈역사에서 배운다 > 6,25전쟁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산함 마스트 (0) | 2010.06.21 |
---|---|
6·25 참전용사들의 오늘] 국가를 위해 모든 걸 바쳤건만… 영웅들이 울고 (0) | 2010.06.21 |
戰艦 아이오와를 6·25 海戰 기념관으로 (0) | 2010.06.16 |
밴플리트 “3군단 해체, 육본 작전권 박탈” … 국군 치욕의 날 (0) | 2010.06.09 |
트뤼그베 리 초대 유엔총장 유품 기증한 손자 브라츠 씨 (0) | 2010.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