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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속는 문제국민 1000만 명 때문에 ‘평화적 적화통일’도 불가능하지 않다. 2010년 6월25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趙甲濟 기자의 한국 現代史 강좌’ 녹취록 全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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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토는 한 평도 싸우지 않고 지켜낸 땅이 없다” 오늘은 6·25 南侵(남침) 전쟁 60주년을 기념하는 강연이 되었습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參戰(참전)하신 용사들 계십니까? 손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많으시네요. 이 분들을 위해서 박수 한번 보내드립시다. (청중 박수) 다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두 분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閔炳敦(민병돈) 전 육사 교장선생님이 육사 15기인데, 사실은 그 전에 6·25 때 사병으로 참전을 하셨습니다. 그 手記(수기)가 이번 월간조선 7월호 부록에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정말 소설 같은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민병돈 장군님 한번 일어나셔서 박수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마침 오신 분이 계십니다. 육사 2기이신 박남표 장군님인데 지금 시애틀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어제 풍선 보내는 데 참여하셨다가 여기도 오셨습니다. 육사 2기면 박정희 대통령하고 동기십니다. 박대통령이 지금 살아계셨으면 1917년생이니까 93세입니다. 요새 白善燁(백선엽) 대장이 많은 조명을 새로 받고 있습니다만 그분이 1920년생입니다. 만 90세이죠. 아직도 초롱초롱하시고 어제 청와대에서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강연한 내용 중에서 이런 말이 나와요. “우리 대한민국 국토는 한 평도 싸우지 않고 지켜낸 땅이 없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한국의 국토라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한 평도,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피를 흘린 땅이다. 피를 머금은 상태에 있다,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6·25 60주년 기념사를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했는데 내용이 아주 좋았습니다. 과거에 노무현, 김대중 시절에 듣기 어려운 아주 명확한 연설을 했습니다. 그 연설대로만 정책을 펴고 하면 우리가 별로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입니다. 요새 6·25 60주년 행사와 관련해서 다방면으로 문화행사, 영화, 연극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 권해드리고 싶은 영화가 ‘포화 속으로’인데 지금 상영하고 있습니다. 포항 전선에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사람들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나온 영화와 뭐가 다르냐? 敵(적)과 동지를 분명하게 구별을 했다. 지금까지 나온 영화를 보면 히트한 영화일수록 敵과 동지가 없고 오히려 한국군과 인민군이 손잡고 미군에 對抗(대항)하는 이런 유의, 말하자면 평화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사실은 애국심을 망가뜨리는 영화가 주를 이뤘는데, 이 영화는 적과 동지를 분명히 한 영화입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보고 권장해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로 만들어야 우리 애국세력이 좌익들로부터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주변에 많이 권하셔서 ‘포화 속으로’를 많이, 돈을 주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웃음) 얼마 전에 기파랑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데, ‘6·25와 이승만-프란체스카의 亂中일기’를 읽었습니다.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이 6·25 때 어떤 행동과 감정을 드러냈느냐 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프란체스카 여사가 쓴 회고록입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李대통령이 가장 어려웠을 때가 언제냐 하면 6·25 남침을 당했을 때보다도 오히려 1950년 12월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950년 12월하면 생각나시는 게 있죠? 中共軍(중공군)이 10월에 개입을 해서 11월 말부터 일대 공세를 펴고, 유엔軍(군)은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에 의해서 거의 싸우지도 않고 총퇴각을 하고, 평양을 내주고. 또 얼마나 추웠습니까? 피난민들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고, 서울 사람들도 6·25 때처럼 당하지는 않겠다고 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보따리를 싸가지고 강을 건너가기 시작하는, 이런 상황애서 경무대를 지키고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트루먼 대통령이 과연 끝까지 한국을 지킬 것이냐, 아니면 한국을 포기할 것이냐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작전 지휘권이 없으니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시킬 수도 없고…. 70대 후반의 이승만 대통령의 이런 갑갑했던 상황에 대한 내용 중에 하나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부역자를 석방한 이승만, 대한민국의 중추 인력을 말살한 김일성 이승만 대통령이 9·28 수복한 다음에 서울에 와서 보니까, 6·25 때 한강을 넘지 않았던 사람을 ‘殘留派(잔류파)’라고 해서 한강을 넘어서 남쪽으로 피난을 갔던 ‘渡江派(도강파)’ 사람들이 잔류파를 附逆(부역)했다고 조사를 하고 때로는 죽이기도 하는, 이런 정보를 많이 보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김창룡 합동수사본부장이죠, 특무부대장을 불러서 ‘이런 일 제발 하지 말라’고 아주 엄중하게 경고하고 ‘앞으로는 반드시 適法(적법)절차를 통해서 하도록 하라’ 이렇게 지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 12월 중공군이 막 내려오고 있을 때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가요. 왜 찾아갔느냐 하면, 거기에 부역자들이 많이 갇혀 있는데 이 사람들이 과연 인간적인,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자기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갔습니다. 가니까 감방에 있던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 만세도 부르고 그랬대요. 돌아와서 프란체스카 여사가 보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그처럼 고민을 많이 하는 걸 본 적이 없답니다. 이승만 대통령 또한 하나의 정치범으로서 조선조 감옥에서 5년 6개월여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감방 생활이라고 하면 이 분도 아주 선배죠. 그러니까 그 경황이 없는 중에도 서대문 형무소를 찾은 게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다 1·4 후퇴 때 형무소를 유지할 수가 없으니까 부역자들을 대부분 다 석방했다고 합니다. 그걸 보면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김일성은 어떻게 했느냐? 6·25 때 죽은 민간인의 확정된 정부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문서로서 명단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월간조선에서 두 권짜리 책으로 낸 명부가 있습니다. 거기에 실려 있는 명단은 6만 명에서 4명이 빠진 숫자죠. 5만9996명. 그 뒤에 문서로는 확보하지 못했는데 12만 명으로 나와 있는 통계가 있어요. 아마 12만 명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납북자 통계는 8만5000명의 이름이 실려 있는 통계가 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납북자는 15만 명, 남로당․인민군에 의해서 피살된 사람은 약 12만 명 이렇게 계산을 합니다. 피살된 사람, 납북된 사람들은 아주 직업이 좋습니다. 전문 직업인이 많습니다. 地主(지주), 군인-경찰가족, 의사, 기술자, 공무원, 종교인들, 주로 목사들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북한에서 내려올 때 대한민국에서 중추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골라내 요새 흔히 말하는 ‘인종 청소’ 차원에서 반동분자로 몰아서 말살을 하라는 명령을 가지고 내려와서 조직적인 학살을 했다는 것이죠. 유태인 학살과 거의 맞먹는, 그것도 同族(동족)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체제 유지에 도움이 될 만한 중요 인력들을 말살하라는, 미리 계획된 범죄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김일성과 억울한 부역자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던 이승만의 차이, 이것이 오늘날 남북한의 차이로 대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수치로 이야기하면 6·25 南侵(남침) 전쟁으로 보통 300만이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수치로 보면 가장 많이 전사한 사람들은 아마 중공군일 것입니다. 중공군 전사자에 대해서 여러 가지 통계가 있는데 약 100만 명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다음은 아마 북한군일 것입니다. 거의 중공군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또 누가 많이 죽었느냐? 북한 주민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주로 폭격에 의해서. 남한의 우리 국군이 사망․전사․병사․포로․실종까지 다 합치면 약 30만 정도 인명피해를 봤습니다. 민간인들 피해는 얼마냐? 아까 말씀드린 12만 명 피살, 15만 명 납북되었고 誤爆(오폭)이라든지 이런 걸로 죽은 남한 민간인, 군인을 다 합치면 100만 명 정도 됩니다. 유엔군이 (주로 미군입니다) 참전해서 전투 중에 전사한 사람이 3만 명, 병사․사고사를 합치면 5만4000명. 영국군, 터키군대, 캐나다 이런 쪽에서 많은 전사자를 냈습니다. 그래서 민간인과 군인을 다 합치면 300만이 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6·25 전쟁 아닌 6·25 南侵(남침) 전쟁 이 전쟁의 책임자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김일성인 것입니다. 6·25 남침의 책임자에 대해서 김일성이라고 항상 6·25 기념식 때 분명히 밝히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전쟁의 명칭 문제가 있어요. 요새 ‘한국전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원래 우리가 6·25 事變(사변)이라고 했죠. 6·25 動亂(동란)이라고도 했습니다. 전쟁이란 말은 우리가 쓴 적이 없어요. 미국에서 ‘Korean War’라고 하니까 학자들이 그걸 그냥 번역해서 요새 한국전쟁이라고 합니다. 저도 편리에 따라서 한국전쟁, 한국戰(전) 이렇게 부르기는 합니다마는 이게 정확한 명칭이라고 볼 수 없는 게 ‘한국戰’이라고 하면 제3자가 부르는 전쟁처럼 돼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전쟁을 한국전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미국이 남북전쟁을 뭐라고 부르냐 하면 ‘시빌 워(Civil War)’라고 합니다. ‘Civil War’는 內戰(내전)이라는 뜻입니다. 링컨은 남북전쟁 때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와 국가가 싸우는 것인데, 北軍(북군)과 南軍(남군) 사이는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가 아니다. 미합중국이라는 국가가 있고, 남부에서 반란군이 일어나서 그것을 진압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다. 진압작전이다. 남부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라고 해서 ‘인서렉션(insurrection․반란)’이라는 말을 쓰고, 남부를 그 사람들이 불러달라는 대로 불러주지 않고 ‘반란 집단(rebel)’이라고 불렀어요. 링컨은 법률가이기 때문에 그런 명칭에 대해서 아주 예민했습니다. 우리 선배들도 마찬가지였어요. ‘6·25 는 전쟁이 아니다’고 해서 6·25 동란, 6·25 사변이라고 했습니다. 즉 사변을 일으킨 자들이다, 반란 집단이라는 뜻이죠. 그러다가 한국전쟁으로 되었는데 정부의 공식명칭은 ‘6·25 전쟁’으로 되어있습니다. 6·25 전쟁이라고 하면 이게 원인 불명입니다. 6·25 는 반드시 ‘南侵(남침) 전쟁’이라고 해야 돼요. 그런데 방송이나 이런 걸 들어보면 전부 6·25 전쟁으로만 나와요. 6·25 남침 전쟁이라는 말이 계속 반복적으로 사용되면 상당한 교육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침은 싹 빼버리고 6·25 전쟁이라고만 한다? 그게 참 아쉽고, 우리는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한 피하고, 6·25 전쟁은 원인 불명, 범인 없는 이야기니까 항상 6·25 남침 전쟁이라고 불러야 되겠습니다. 10년 전에, 2000년 6월25일 남침 50주년 기념식이 전쟁기념관에서 있었습니다. 그때도 일요일이었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고 온 열흘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념사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주 묘한 논법을 썼어요. 뭐라고 했느냐? 6·25 전쟁을 누가 일으켰느냐, 원인을 이야기하면서 스탈린이 일으킨 것처럼 이야기를 했어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분단의 책임, 더 올라가면 우리가 식민 지배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6·25 전쟁을 김일성이가 남침을 했다는 말을 싹 빼버리고 스탈린, 그리고 우리의 분단체제, 못난 조상들 이쪽으로 책임을 넘기는 것을 봤습니다. 그 뒤에 좌파정권 하에서 6·25 기념식이 어떤 식으로 치러졌는지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입니다. 老兵(노병)들이 행진을 하려고 해도 막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국립 현충원에서 기념식을 하면 대통령이 와서 다른 사람하고는 다 악수하고 가면서 백선엽 대장이나 이런 사람들은 외면하고 가버리고. 이런 못된 짓을 하다가 그나마 이번 6·25 60주년 행사는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각 언론사들이 자발적으로 보도하고 영화도 만들고, KBS에서 드라마도 만들고 하는데 재밌더라고요. 어느 방향으로 갈지 우리가 잘 감시를 하면서 봐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잘되는 것이 미국과 유엔군의 은혜를 갚는 가장 좋은 방법 6·25 전쟁의 의미에 대해서는 미국 사람들이 제대로 기리는 것 같아요. 2000년에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6·25 기념사를 했는데 너무나 잘 했습니다. 이렇게 기억을 합니다. “우리가 6·25 때 왜 아무 관계없는 한국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냈느냐?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보냈다. 그 선택이 지금도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으로 해서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수 있었고 공산주의가 망할 수 있었다. 그 시작은 6·25 때 우리가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6·25 전쟁은 미국에서 별명이 있습니다. ‘잊혀진 전쟁’ 입니다. 왜 잊혀진 전쟁이냐? 6·25 나고 나서 조금 있다가 越南戰(월남전)이 났습니다. 월남전에서는 미국이 졌어요. 6·25는 제2차 세계대전과 월남전 사이에 끼어서 별 각광을 받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참전한 사람이 150만 명이나 되는데 본국으로 돌아와서 이겼다고 하기도 그렇고 진 것도 아니고 무승부로 끝나 놓으니까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冷戰(냉전)이 끝나고 점점 6·25 참전 용사들이 미국에서 대접을 받기 시작해서 요새는 상당히 행복한 老後(노후)를 보내고 있어요. 왜냐? 한국이 잘 됐기 때문에. 한국이 이렇게 잘 되고, 올림픽도 하고 발전된 모습이 전해지니까 미국 참전자들도 ‘우리가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구나’ 하고 자랑스럽게 참전 용사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私費(사비)를 들여 한국에 와가지고 낙동강 전투라든지, 인천상륙작전이라든지 이런 곳을 돌아보고, 와서 보니 한국이 이렇게 발전을 했으니까 돌아가서 동지들에게 이야기해서 또 데리고 오고. 미국 참전 용사들의 한국 관광이 상당히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이야기입니까? 미국이 흘린 피로 월남처럼 된 게 아니고, 우리가 지켜내고 번영하게 만들었으니까 참전한 외국 사람들에게까지 일종의 報恩(보은)을 하는 거죠. 우리가 잘되는 것이 은혜를 갚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성공했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 유엔군 이런 분들한테 다 좋은 보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6·25 60주년을 맞는 오늘, 꼭 걱정할 일만은 아니다. 우리가 이룩한 성과에 대해서 자부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참전 16개국 戰死者(전사자) 통계를 보면 ‘이런 작은 나라까지도 한국에 와서 피를 많이 흘렸구나’ 하는 것을 실감합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다 알 것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전사자를 낸 나라가 영국입니다. 영국이 많을 때는 1만 명 정도를 보내놓고 있었습니다. 1078명이 전사를 했습니다. 그 다음이 터키입니다. 741명. 캐나다가 312명인데 호주가 339명입니다. 파병 인원 대비로는 참 많은 편입니다. 프랑스가 262명, 이번에 우리한테 축구를 져 준 그리스도 192명이 전사했습니다. 타일랜드 129명.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참전국인지 잘 모르시죠? 공군이 참전했습니다. 34명이 전사했어요. 남미에서도 왔습니다. 콜롬비아 163명. 심지어 에티오피아에서도 왔습니다. 121명이 전사를 했습니다. 뉴질랜드 23명. 필리핀 112명, 네덜란드 120명.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많은 세계 사람들의 피에 의해서 지켜졌느냐 하는 걸 생각하면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의료 지원국이 있습니다.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특히 스칸디나비아 3국은 병원도 지어주고, 또 戰後(전후)에 아기를 낳으면 키울 수가 없으니까 길바닥에 버린 기아, 미아 중에서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 세 나라가 합쳐서 약 3만 명을 데리고 갔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15만 명을 데려갔습니다. 아직도 우리들은 기아, 미아들을 자체적으로 수용할 수 없어서 연간 약 2000명 정도를 외국으로 보내고, 그 대부분을 미국 사람들이 받아 주고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共産(공산)통일 무산되었다’고 아쉬워하는 1000만 명 이렇다면 우리는 이 감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되느냐? 표현할 방법이 없는 거죠. 우리가 잘 되는 것밖에 없죠. 목숨을 다른 방법으로 보상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2010.6.25) 조선일보에 나온 ‘6·25를 한국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인식하고 있느냐’라는 여론조사 통계가 있었습니다. 이 통계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하나하나 짚어보면 매우 충격적입니다. 조선일보하고 한국정당학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내용입니다. 첫째 6·25 남침의 가장 큰 책임자는 누구냐? 김일성 정권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한 사람은 57%입니다. 成人인구 중에 57%만이 책임자가 ‘김일성이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20代는 정답을 내놓은 비율이 42%, 40代는 50% 정도입니다. 20대, 40대가 문제예요. 40대는 누구냐? 19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니면서 좌익 이념에 노출되어 가지고 소위 386세대라고 불렸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서 40대가 되었기 때문에 요새는 486세대라고 부릅니다. 20대는 누구냐? 전교조 교육을 받았던 세대가 20대로 진입을 해서 유권자가 되고 군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 20대와 40대가 ‘6·25 남침이 김일성 정권 때문이다’는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것과 같은 진리에 대해서 ‘맞다’라는 정답을 내놓은 비율이 50점도 안 된다는 겁니다. ‘1 더하기 1은 2’라는 명백한 문제에 대해서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 그런 멍청한 사람들이 全(전) 국민의 어른 중에 약 30~40%라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이름을 한글로도 쓸 수 없는 사람이 全 국민의 30~40%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이 깜짝 놀래가지고 ‘야 이거 큰일났다, 대통령부터 나서가지고 학교를 더 짓자’ 뭐 이렇게 나올 것인데, ‘6·25를 누가 책임져야 되는지 모르는 사람이 30~40% 있다’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별로 없다는 건 좀 어폐가 있고, 특히 지금 정권에서 별로 없다는 겁니다. 더 각론적으로 물어봤어요. ‘인천상륙작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을 ‘대한민국 공산화를 저지한 작전이다’라고 옳게 대답한 사람은 국민의 54.7%. 그런데 26.2%는 뭐라고 대답했느냐? ‘통일을 무산시키고 分斷(분단)체제를 고착시켰다’고 대답했습니다. 26.2%입니다. 이 통일은 뭔지 아시겠죠? 공산통일이죠. ‘공산통일을 무산시키고 분단을 고착시켰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1000만 명이다. 全 국민의 네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에도 있을 것이고 가정에도 있을 것이고, 친척, 직장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숫자만 들여다보면 한국은 反亂(반란)이 일어났어요. 우리가 敵(적)과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敵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敵이 우리를 먹어 치워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맥아더라는 사람이 나와서 인천상륙작전을 해가지고 赤化통일을 막았다’라고 원통해하는 사람이 우리 체제 안에 26%, 1000만 명이 살고 있다. 이거 반란 상태 아닙니까? 제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하세요? 內亂(내란)입니다. 다만 한국은 형식상 자유민주주의, 法治(법치) 국가이니까 말로 하는 內戰(내전)입니다. 말로 하는 반란이 일어났어요. 총을 ‘아직’ 안 들었습니다. 이것이 오래 지속되고 다른 요소가 여기에 끼어들고 하면 총을 드는 내란 내지 反亂 상태로 안 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우선 여러분들이 실생활을 하시다가 동창회나 이런 데 갔다가 이런 주제로 말싸움이 붙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거기서 누군가가 일어나서 맥아더가 와서 괜히 인천상륙작전을 하는 바람에 통일이 안됐다고 흥분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판이 완전히 깨지겠죠. 멱살잡이를 하든지 주먹다짐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게 일종의 내전, 폭력사태로 가는 거죠. 그만큼 한국은 時限(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겁니다. 利敵的(이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26%다. 그런데 이 26%는 누구냐? 힘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20대, 30대, 40대 그리고 대학생, 화이트칼라다 이겁니다. 배운 사람들, 젊은 사람들입니다.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됐습니다. 여기에 또 문제가 여성들이에요. 이렇게 높게 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 여성들이 6·25에 대해서 아주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여성들의 6·25 인식이 잘못된 경우가 많은 것은 군대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20대 남성의 93%는 남침 사실은 인정합니다. 북한이 남침했다. 그러면서도 반 정도는 책임을 그들에게 돌릴 수 없다고 하는데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남침했다는 것은 20대 남성 93%가 인정을 하는데 20대 여성은 78%만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20대 남성의 51%는 전쟁 책임이 김일성 정권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군대 안 간 20대 여성은 33%만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하여 남성의 70%가 공산화를 저지하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여성들은 40%만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여성들 잘 챙겨봐야 됩니다. 우리가 여성人力(인력) 때문에 여성이 사회 곳곳에 들어가서 우수한 실적을 남기는 것을 보고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여성들이 애국심이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해야 됩니다. 한국인의 민족주의적 열정은 非이성적 미신 요새 거리응원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보이죠. 새벽까지 에너지가 충만해요. 그런데 우리 거리응원에 나오는 10대, 20대, 30대 이 사람들하고 같은 또래의 천안함 근무자 마흔 여섯 명이 죽었는데도 김정일 규탄하는 시위는 단 한 번도 안했습니다. 그런데 월드컵에 열광해서 수백만 명이 바깥으로 나옵니다. 미국 장갑차에 치여서 두 여중생이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도 나옵니다. 유독 북한 정권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더구나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마흔 여섯 명이나 죽은 데 대해서는 화가 나지 않는다, 시위 한 번 하지 않는다. 그런데 월드컵 응원은 왜 저리 열광적으로 하느냐? 그럼 저 월드컵 열광을 애국심이라고 볼 수 있느냐? 월드컵 응원을 애국심으로 봐주려고 우리가 많이 노력합니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계속 추켜올립니다. ‘대한민국’이라고 부르짖는다 해서 애국적인 감정의 발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는 먼, 美化(미화)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가슴에 단 ‘비더레즈(Be the Reds)’ 빨갱이가 되자는 이야기 아닙니까? ‘빨갱이가 되자’는 말을 가슴에 쓴 사람이 대한민국을 부르짖는다? 그 대한민국이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이 대한민국이 맞느냐? 맞지 않죠. 한국 사회의 큰 바람 중에서 민족주의적 열정이라고 부르는 바람이 하나 있어요. 그게 월드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촛불시위로 나타나기도 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광우병 亂動(난동) 사태로 나타나기도 하는, 뭔가 거대한 에너지가 하나 있기는 있어요. 이 에너지는 종잡을 수가 없어요. 종잡을 수 없다는 건 뭐냐? 논리가 없다, 이성이 없다는 겁니다. 그럼 이게 뭐냐 하는 것을 부산의 동서대학교에서 한국 학생을 가르치는 브라이언 마이어즈라는 미국 학자가 뉴욕타임즈에 쓴 기고문에 아주 정확하게 외국인의 입장에서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 동창생 중에서 천안함에서 근무하다가 한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그 동료학생들이 아무런 弔意(조의)를 표하지 않고 조용하더라. 학생들이 두 여중생이 죽었을 때는 촛불시위를 했다. 왜 동료가 김정일 손에 죽었는데 침묵하느냐? 분노를 느끼지 않느냐? 그것 참 이상하다. 이게 과연 애국심이냐? 아니다. 미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애국심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 사람의 애국심은 국가와 헌법을 향한 충성심이고, 그게 애국심인데 한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민족주의)’이라는 것은 미국식의 애국심이 아니더라. 가만 보니 이런 내용이더라. 즉 이 사람들(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순결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나쁜 짓을 할 수 없는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북한은 親日派(친일파)를 청산했기 때문에 (이건 잘못된 정보이지만) 남한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합쳐져서 천안함 사건도 김정일이 저질렀다는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고 남북한 긴장상태에서 일어난, 있을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이것은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종의 人種主義(인종주의)에 가깝다.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인종주의라는 말은 아주 나쁜 말입니다. 인종주의란 것은 뭐냐? 아리안 민족 우월주의, 히틀러가 독일민족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하면서 유태인들은 아주 나쁜 짓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게 인종주의입니다. 그래서 유태인들을 죽이고 수용소로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문명국가에서 어떤 사람이 레이시즘(racism․인종주의)의 소유자라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은 사회에서 매장당합니다. 그런데 그게 정확한 지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우리 언론이 아직도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이라고 해가면서 존칭을 써주느냐?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저 놈이 300만 이상을 죽인 흉악무도한 자라는 것은 무시해버리고, 그래도 같은 민족이니까 나쁜 짓 해도 덮어주자. 같은 민족이니까 우리를 괴롭혀도 용서해주자. 같은 민족이니까. 미국 사람보다는 낫지 않느냐. ‘같은 민족이니까’ 뭐 하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인종주의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 열정은 理性(이성)이 없고 하나의 미신이다. 그 미신의 근거는 뭐냐? 韓民族(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도덕적이고 최고다. 非(비)이성적인 발로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으니까 우리가 월드컵 응원을 하긴 하면서도 찜찜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지금 제가 불러드린 이런 여론조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분단 고착의 비겁한 통일관은 對南 적화 공작의 밥이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 다음에 어떤 식으로 생각이 흘러가느냐? ‘6·25에 대해서 김일성이가 저지른 것이니까 저놈을 반드시 응징해가지고 우리가 흘린 피에 대한 원수를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50%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어떻게 되느냐? 그 다음 단계가 문제죠.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 ‘비용 부담이 있더라도 반드시 통일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른들 중에서 몇 퍼센트 되겠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은 아마 90% 넘을 것 같은데, 어떤 비용이 생기더라도 우선 통일의 찬스가 오면 통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건전한 국민 정신과 건전한 헌법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한국 사회에서 몇 퍼센트 되겠어요? 22%만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다섯 명에 한 명. 22%만이 정상적이고, 合憲的(합헌적)이며, 正義(정의)로운 통일관을 갖고 있습니다. 22%밖에 안돼요. 잘못하면 희귀동물처럼 될지도 모르겠어요. 5%까지 내려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머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천천히 하자’, ‘손해 안 볼 정도로 하자’ 아니면 ‘지금처럼 사는 게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분단 고착 문제죠. 아주 비겁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의 밥이 되느냐? 반드시 북한의 對南(대남) 적화 공작의 밥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안 넘어가는 사람,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비용부담이 있더라도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는 이 22%입니다. 이 사람들이 진짜 애국세력이에요.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 더러 봅니다. ‘지금처럼 사는 게 좋겠다, 통일 하면 혼란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보수적인 사람도 많이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한 그 사람은 진정한 보수라고 볼 수가 없어요. 왜냐? 그것은 자유의 원칙, 正義의 원칙, 인도주의의 원칙, 그리고 무엇보다도 헌법 정신에 위반되기 때문입니다. 헌법을 위반하면 보수 세력이 아니에요. 민주화 시대가 한 30년이 흘러갔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애국심, 반공정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하면 공산주의 문제도 해결될 줄로 알았습니다. 1980년대에 재판소에 가보면 좌경적인 학생 재판을 할 때 그 변호인으로 나온 사람들이 ‘독재에 반발해서 왼쪽으로 갔다.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정권이 들어서면 이 학생들도 좌경 이념을 버릴 것이니까 민주화만이 공산주의 침투를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다’라고 변론을 냈습니다. 저도 그 의견을 들으면서 ‘참 근사한 이야기다, 맞는 이야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순진한 이야기였죠. 북한이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김일성은 어떤 판단을 하고 있었느냐? 1977년에 호네커 東獨(동독) 서기장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이가 호네커한테 자랑을 해요. “지금까지 남조선에서는 한 번도 대학생들이 북한 정권을 반대하는 시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국이 민주화가 되는 것을 지지합니다. 설사 반공 민주주의자가 집권하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한테 유리하니까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반공세력이 집권을 해도 민주주의만 되면 북한한테 유리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1980년대의 그 순진한 변호사보다는 김일성이가 한국의 민주화가 가져올 취약점을 정확하게 보고 바로 거기에 초점을 맞춰 對南공작을 편 끝에 드디어 한국사람 중에서 40% 정도를 이런 문제국민으로 만들어놓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만병통치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공산주의 문제까지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민주주의가 잘못 실천되면 깽판꾼들하고 반역, 간첩세력들한테 합법적인 활동무대를 제공해준다. 法治(법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해버리면 정치가, 공산주의자, 선동꾼들의 노리개로 전락해서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하는 것을 바로 한국이 사례연구로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풍요와의 전쟁 李承晩 대통령은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그래서 자유를 지켰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과의 전쟁에서 이겨서 풍요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렇게 해놓으니까 그 뒤에 국민들은 풍요와의 전쟁에서 졌습니다. 풍요와의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망가져버렸어요. 풍요와의 전쟁이 뭐냐? 잘 살고 자유롭게 살게 되면 용기가 사라진다. 희생정신이 사라진다. 애국심도 사라진다. 군대도 가기 싫어한다. 軍(군) 복무기간을 계속 단축하자고 한다. 군대에 있으면서도 핸드폰을 쓰려고 한다. 군대에서 기합도 받기 싫어하고, 자기 부모한테 전화해서 전쟁날지 모르겠다고 겁을 준다. 이게 다 잘살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이 말했던 대로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100명이면 풍요와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인간 본성입니다. 잘살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 때문에 우리가 통일이 못되어서 아쉽다’는 이런 소리를 합니다. 왜냐? 이런 소리를 해도 감옥에 안 간다, 나라가 안 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교한 말장난이죠. 그럼 ‘인천상륙작전 때문에 통일이 안 되어서 아쉽다’는 26.2% 중에 북한에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나오겠습니까? 그건 뭐냐? 자기를 속이는 거죠. 僞善(위선)입니다. 제일 나쁜 게 위선입니다. 위선은 뭐냐? 말 그대로입니다. 속에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선한 척하는 것을 위선이라고 합니다. 위선의 반대말이 있죠, 僞惡(위악).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겉으로는 엄격하게 악당처럼 행세해서 많은 사람을 교육시키고 하는 사람, 박정희 같은 사람이 僞惡者(위악자)죠. 김대중, 노무현, 참여연대 이런 자들 다 위선자죠. (박수) 우리는 지금 풍요와의 전쟁이라는 굉장히 이기기 어려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발전되면 민주주의가 된다는 것은 증명되었어요. 그러나 경제가 발전되면 자동적으로 법치가 이뤄지느냐? 경제가 발전되면 자동적으로 공산주의를 타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구나 하는 것을 지난 30년 동안에 한국 사회를 보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조선일보에 나오는 여론조사를 다시 보면 이렇습니다. 미국에 대한 인식은 요새 또 상당히 좋아지고 있어요. 한때 ‘미국을 좋아한다’는 대답이 50% 이하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 그런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고 나서는 굉장히 늘어가지고 요사이 조사에 따르면 70~80%가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親美(친미) 감정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어버렸어요. 反美(반미) 감정으로 1등을 달리더니 갑자기 親美 감정이 세계에서 제일 높아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의 여론을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일단 이것은 긍정적입니다. 여기에 또 허점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전에 주한美軍(주한)이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퍼센트냐? 20대의 28%, 30대의 29%, 40대의 34%입니다. 이게 높은 親美 감정하고는 맞지가 않아요. 세계 각국의 여론조사 종합한 것을 보니까 이런 통계가 나와 있어요. 자기 나라가 되어가는 방향에 대해서 만족하느냐 불만족하느냐 이렇게 물으니까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중국 사람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80%가 지금 자기 나라가 잘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얼마냐? 20%가 안돼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축에 들어가고 있어요. 심지어 내전하고 있는 나라하고 비슷해요.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경제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많아요. 그런데 경제 관리는 李明博 대통령이 잘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정부가 잘 하는 것, 좋은 거는 다 잊어버리고 그 나라의 상황에 대해서 가장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여기에 또한 비밀이 있죠.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장래에 대해서, 체제 문제나 이런 걸 생각하면 비관적이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그래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최소한 50%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적으냐하는 것은 이번 선거에서도 반영이 되었지만 정부가 아무리 잘해도 홍보가 부족해서 잘했다는 것을 잘했다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적다는 겁니다. 한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좀처럼 꺼지지 않는 어떤 생각 하나가 있어요. 이른바 저항의식이라는 겁니다. 잘되는 사람, 부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 이게 선거 때만 되면 나옵니다. 40년 전 유권자와 오늘날 유권자는 비슷한 수준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에 박정희, 김대중이 붙었어요.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일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또 그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 받았습니까? 46% 정도 받았어요. 김대중 후보가 약 40% 받았습니다. 6%밖에 차이가 안 났어요. 그때 박정희 정권은 金權(금권), 官權(관권) 동원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진 선거예요. 예비군을 없애겠다고 한 김대중씨를 그렇게 많이 찍어줬습니다. 그때의 국민 수준이나 이번 선거에 나타난 국민 수준이나 큰 차이가 없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왜 維新(유신)으로 갔느냐 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1971년 선거예요. 1971년 선거에서 개표를 하고 보니까 90만 표 차이로 이겼다, 화가 났어요. 김종필씨가 찾아왔을 때 朴대통령이 이렇게 이야기했대요. “아니 내가 이 정도 표밖에 못 받을 사람이냐? 이런 국민들한테는 앞으로 더 이상 표를 구걸하지 않겠다.” 국민들에 대한 섭섭한 감정과 어떻게 보면 내가 욕을 먹더라도 이런 국민들한테 표를 구걸하는 직접 선거를 앞으로 더는 안한다. 선거기간 중, 4월 하순에 장충단 공원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거기서 朴대통령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앞으로 여러분들한테 표를 더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을 때 많은 기자들이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앞으론 출마 않는다’라고 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어요. 그러나 박정희가 정확한 표현을 썼어요. ‘나는 여러분들한테 표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지 ‘내가 이걸로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얘기 안 했어요. (웃음) 나중에 훑어보니까 문장이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朴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는 국민들한테 민주주의를 해가지고 선거를 하기 시작하면 江(강)도 없는데 다리 놓겠다는 사람이 나오니까 도저히 불가능하다. 경제적인 발전이 안 된다. 정치로 낭비되는 요소를 줄여야겠다. 그래서 행정효율을 극대화시키고 그걸 가지고 경제를 건설해야 되겠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각성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게 유신체제의 출발이죠. 그랬는데도 그게 벌써 몇 년 전입니까? 약 40년 전의 유권자나 오늘날의 유권자나 수준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民意(민의)는 무조건 존중해야 된다고 하는데, 그 말은 맞죠. 그러나 그 民意가 정확한 것이냐 아니냐는 것은 다른 차원에서 따져보면 이런 문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게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 풍요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 번영을 공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내부 사정은 일종의 內亂的(내란적)인 구조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난 30년에 걸쳐서 남한의 親北(친북)세력들과 북한의 對南(대남) 공작 부서가 합세를 해서 세상을 바꿔놓은 결과인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30년에 걸친 민주주의 시대를 잘 惡用(악용)한 對南 공작의 결과로서 한국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망가뜨려 놓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이것은 구조적, 세대적, 문화적인 것입니다. 거대한 흐름이 있습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直視(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구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천안함 爆沈 사건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국민의 30%는 아직도 북한 소행인 것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국민의 40%, 1500만 명은 북한이 다시 도발했을 때 우리가 自衛權(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조차도 반대합니다. 국민이 말이죠, 북한이 천안함 같은 사태를 또 일으키면 이번에는 잠수함 기지를 폭격하든지 평양을 폭격하자고 화를 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화내는 사람들이 90%는 돼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아까 제가 말씀드린 통계와 연계시키면 납득이 가실 겁니다. 바로 ‘6·25는 김일성 책임이라고 볼 수 없다’, ‘인천상륙작전은 통일을 저지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는 북한소행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은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믿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이 더 많은 거죠. 민주당+민노당 공동정권은 南美化(남미화)-赤化(적화)를 부른다 이런 문제국민들을 세력의 기반으로 해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민주당과 민노당이죠. 민주당과 민노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화를 통해서 후보를 몇 군데 냈어요. 그러면 거기 뽑힌 지사나 시장이 앞으로 행정을 할 때는 민노당의 협조를 받을 거예요. 민주당-민노당 연합 지방정부가 들어서는 거죠. 그러면 어떤 행동을 할 거냐? 벌써 인천에서는 對北(대북) 지원을 별도로 하겠다고 합니다. 강원도에서는 이광재라는, 손가락 자른 그 사람은 당선이 되어도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인이 나왔고 민주당은 그걸 알고 공천을 했는데 선거과정에서 그게 쟁점이 되지 않았어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그런 사실을 유권자들한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나라당 후보가 그 사실을 강원도민들한테 알려주지 않았어요. 왜 그랬냐고 하니까 그렇게 하면 네거티브(negative․부정적인)라고 욕먹을까 싶어서 안했다고 합니다. 국민들한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 왜 네거티브입니까? 그런 것은 네거티브라고 변명하기 전에 반드시 정치인으로서 알려줄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걸 안 해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생각을 했겠죠. 드디어 2심에서 또 유죄선고를 받았어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오면 (다른 판결이 나올 수가 없어요) 도지사 선거 다시 해야 돼요. 취임해도 직무를 행사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광재라는 사람은 뭐라고 하느냐? 그래도 자기는 하겠다는 겁니다. 뭡니까 이게? 징역 5년 받은 범죄자가 ‘그래도 나는 감옥에 안가겠다’ 하는 거하고 마찬가지에요. 어떤 회사에서 사장을 잘라버렸는데 이 사장이 ‘나는 그래도 사장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계속 출근하겠다고 하는 꼴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도처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당연히 국가에서, 중앙정부에서 개입해서 國法(국법)에 도전하는 자를 처벌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이렇게 해야 하는데 李明博 정부가 과연 그런 걸 할 수 있느냐? 이것은 잘못하면 反亂(반란)이 되는 것입니다. 지방정부에 의한 중앙정부에 대한 반란이 되는 거예요. 예컨대 경찰이 도지사 당선자 눈치를 보면서 不法(불법)행위를 방치해버린다, 그런 기회를 틈타 자기 패거리를 몰고 들어가서 도청을 점거해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하면 그것은 반란입니다. 인천시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 모르겠는데, 정부가 천안함 폭침에 대한 對北 제제로서 북한에 대한 일체의 지원을 금지시켜놨는데 ‘우리는 보내겠다’고 해서 배에 쌀 잔뜩 실어서 북한으로 출항하면 어떻게 합니까? 격침시킵니까, 어떻게 합니까? 그건 당연히 나포를 해야죠. 인천시장 눈치를 보는 사람이 거기에 대한 공권력 행사를 하지 않는다, 그 배는 공해상으로 나가서 북한으로 간다. 군대도 막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반란이 성공하는 거죠. 2012년에 이런 민주당과 이런 민노당이 지금의 이런 노선을 버리지 않고 집권당이 된다고 하면 이것은 좋은 말로, 최저 수준의 욕을 하면 ‘南美化(남미화)’로 가는 거죠. 南美化라는 것은 그 개념정리가 이렇습니다. 南美에서 주로 일어나는 것인데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이런 데서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거기는 노동조합이 세고 군대가 셉니다. 그래서 군대가 쿠데타를 하여 집권해도 정권 유지를 오래 못해요. 그 다음에 민중혁명이 일어나요. 그랬다가 또 쿠데타가 납니다. 左右(좌우)가 실력이 비슷해서 왼쪽, 오른쪽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法治(법치)가 붕괴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남미화예요. 한국의 민주당-민노당이 정권을 잡으면 全 국민의 50%를 대변할 수는 없을 거예요. 아무리 한국이 엉망이라 하더라도. 그러면 오른쪽에서 들고일어날 것이고 이런 식으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 남미화로 갑니다. 그런데 남미에는 북한이 없어요. 한국에는 북한이 있습니다. 북한이 있는 상태에서의 南美化는 뭐냐? 남한의 左(좌)와 북한 김정일 정권이 손잡는 것이다. 그러면 남미화 다음 단계는 赤化(적화)예요. 이 적화는 굳이 전쟁을 안 하더라도 선거를 통해서도 할 수도 있겠다, 선거를 통해서 간첩 비슷한 사람이 청와대에 들어가면 赤化를 이루는 길이 아니냐. 이렇게 분별력이 없는 유권자들이 많은데 간첩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 그러면 ‘평화적 赤化통일’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反亂(반란) 상태에 있는 한국 최후의 보루는 國軍(국군) 이런 일들이 기반이 약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몇 차례 있었어요. 독일에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체제가 있었는데, 유권자들이 히틀러한테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줬습니다. 히틀러가 쿠데타를 해서 정권을 잡은 게 아닙니다. 독일 사람들이 미쳐가지고 히틀러를 뽑아줬더니 히틀러가 전체주의를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이 그 경험을 가지고 아데나워 이후에 나라를 꾸려가면서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는 절대로 줘서는 안 된다’는 소위 방어적 민주주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나치 칭송하는 자들, 공산주의 추종하는 자들은 공무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제도적 장치 여러 개를 가지고 체제를 수호하면서, 통일 된 이후에도 독일에서는 공산당이 불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통일된 이후에도 독일에서는 복무기간은 비록 6개월 정도로 단축되었지만 국민 皆兵制(개병제)를 유지해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뭐냐? 민주주의가 될수록 정당은 어떤 특정한 집단을 대변하게 되고, NGO라는 자들은 가만히 보면 이해관계를 초월한다고 하지만 다 다른 꿍꿍이속이 있고, 환경단체는 무조건적인 개발 반대를 하고 이러다 보니 국가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 국가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느 집단이냐? 군대밖에 없다. 국군밖에 없다. 그러니까 국민 개병제를 통해서 37만 명 정도 되는 병력을 유지하면서 국가 정체성을 국군이 이어가도록 해야 되겠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유럽에서 여러 나라가 아직도 국민 개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이유가 군대로 하여금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이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말로 하는 반란 상태가 총을 드는 內戰(내전)으로 갈지도 모르는 한국에서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할 때, 우리가 마지막 보루로서 생각해야 될 조직은 국군입니다. 우리 체제를 지키는 데 우리가 가장 아끼고 보호해야 될 조직이 있다면 國軍(국군)입니다. 물론 국군의 구성원에 문제가 많죠. 지난 햇볕정책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동조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우리 한국 사회에서 군대만이 햇볕정책에, 좌익선동에 가장 적게 오염되었습니다. 오염 안됐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가장 적게 오염되었습니다. 우리 군대는 지난 60년 역사에서 네 가지 역할을 했어요. 대한민국이 건설되기 전에 이미 국방 경비대가 있었습니다. 군대가 먼저 생기고 그 뒤에 대한민국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주춧돌이 된 거죠. 건국의 礎石(초석)이 됐습니다. 전쟁 때는 호국의 干城(간성) 역할을 했어요. 박정희 등장 이후에 근대화의 기관차 역할을 했습니다. 민주화가 진행되니까 사회가 혼란스러워졌어요. 이럴 때는 군대가 울타리가 되어가지고 민주화가 內戰으로 가는 것, 북한을 불러들이는 것을 막았습니다. 建國(건국)의 초석, 護國(호국)의 간성, 근대화의 기관차, 민주화의 울타리 역할을 했어요. 이게 우리 군대가 한 역할입니다. 지금 남아있는 게 통일을 뒷받침하는 통일 武力(무력)으로서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一流(일류)국가가 되었을 때 강대국 사이에서 國益(국익)을 수호하고 국민정신을 계속 이어가는 국가 정체성의 계승자 내지 국가 정체성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이 국군에 있습니다. 아까 여론조사에도 나왔듯이 군대에 갔다 오면 일단 생각이 좋아집니다. 애국적으로 됩니다. 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사실은 전쟁하지 않는 군대가, 특히 한국과 같은 곳에서 주력해야 할 것은 政訓(정훈)과 교육이죠. 왜냐? 70만 재학생을 가진 군대에서 매년 30만이 졸업하고, 30만이 들어옵니다. 이 사람들을 잘 교육하면 전교조가 망쳐놓은, 민노당과 민주당이, 참여연대, MBC가 망쳐놓은 젊은 사람들을 다소나마 바꿔놓을 수 있다. 그 바꿔놓는 역할을 군대가 할 수 있다. 이 군대의 가치가 과거와 다른 차원에서 아주 중요해진 것입니다. 백마고지 전투를 감사원이 監査(감사)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군대는 용병이 아니므로 사회와 같이 엮이어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가 바뀌면 그 바람이 군대로 들어가요. 그래서 군대를 바꿔놓습니다. 핸드폰을 들고 들어간 사병이 작전 중에도 애인한테 전화를 하고, 사병들끼리는 ‘김상병, 이병장님’ 이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저씨 군대, 핸드폰 군대가 되었습니다. 천안함 爆沈(폭침) 사건이 나니까 언론, 정치권이 그 군인을 무자비하게 비판하더니 드디어 감사원이 군 작전을 監査(감사)했습니다. 감사원은 행정을 감사하는 기관이에요. 감사원이 국회 안에서 이뤄지는 의사 진행을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원이 천안함 폭침 前後(전후)에 일어났던 군 작전을 감사했어요. 이것은 越權(월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는 중간발표라는 걸 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이 그것을 인용해서 군이 허위보고를 하고 북한의 半(반)잠수정을 새떼라고 엉터리로 보고하게 했고 합참의장은 그날 술을 많이 마셨고 등등 아주 자극적인 것을 가지고 군을 난도질하고, 감사원은 몇 사람은 형사 처벌 해야 된다는 이야기도 흘려보내고 조선일보 같은 데에서도 군법회의에 넘겨야 된다는 이런 사설, 칼럼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한번 따져봤더니 제 눈에는 조작, 허위보고라고 볼 부분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떼라고 한 것은 새떼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새떼라고 한 것이고, 발생시간의 착오는 행정적인 실수고, 김태영 국방장관이 ‘발생시간을 30분 늦춰가지고 우리가 득 될 게 뭐가 있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실수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합참의장이 술을 마신 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데 합참의장이 그날 술을 마신 것은 술집에 가서 마신 것도 아니고 군과 관계된 어떤 집회에 참석해가지고 격려 차원에서 술을 마셨다. 그때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이다. 이 사람이 사건 발생 보고를 40분 늦게 받은 잘못은 있죠. 그러나 복귀해서 자기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사건 발생하고 나서 술을 마시면 그건 처벌을 해야 되겠죠. 사건 발생 전에 술을 마셨는데 그걸 어떻게 합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 군이 취할 조치는 다 했다는 것입니다. 對潛(대잠) 헬기를 20분 만에 출동시키고, 비상 걸고, 무엇보다 구조할 사람을 다 구조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 시점에서, 그것도 우리 民軍(민군)합동조사단이 유엔에 가서 안보리 이사국들한테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보고를 하고 있는 그 마당에 한국의 감사원은 ‘이 군대는 이런 나쁜 짓을 했습니다’라고 폭로하는 對(대)국민 발표를 꼭 해야 됩니까? 그것도 중간발표죠. 중간발표는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최종발표만 하면 되지. 그 시점에 또 참여연대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참여연대는 편지 보내고, 감사원은 여기서 군대를 그런 식으로 작살을 내고…. 이렇게 하면 군인들이 싸울 마음이 나겠습니까? 합참의장을 감옥에 보내라는 사설까지 나오는데. 제가 이렇게 변호를 하면 저한테 반론을 펼 사람도 많을 거예요. 좌익이 아니라 보수 안에서도. 그러나 軍 작전이라는 것은 비상상황에서 벌어지는 거예요. 백마고지 전투를 감사원이 감사할 수 있습니까? 백마고지 전투에서 왜 그때 기관총을 안 쏘고 M1을 쏴서 사람 많이 죽였느냐고 감사합니까? 전쟁이라는 것은 맨 정신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돌발 사태고 거기에 대한 긴급 조치는 ‘1 더하기 1은 2다’라는 식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에요. 혼란 상태에서 이뤄지는 거죠. 그것을 행정 감사하듯이 감사해서 군대를 이렇게 난도질한다, 이게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군대를 폄하하는 생각이 조선조 몇 백 년에 걸쳐서 있기 때문에, 학자들이나 언론 비판은 조심하면서 군인들에 대해선 마음대로 해요.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 군인들은 총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군인들은 武力(무력) 집단이다, 권총을 차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탱크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폭격기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절대로 명예심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군인의 명예심에 상처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군인들은 뭘 가지고 삽니까? 명예심을 가지고 삽니다. 명예심이 있기 때문에 돌격을 하는 것 아닙니까? 명예심을 높여주기 위해서 죽었을 때도 끝까지 유해를 발굴하고 그 장례식은 엄숙하게 하고 국가가 그 사람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하는 것을 우리가 6·25 60주년 행사나 이런 것을 통해서 항상 깨우쳐 주어야 지금 총 들고 있는 사람이 비상시에는 ‘내 목숨을 버리더라도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내 가족들이 그만한 영광을 얻고 산다’는 생각으로 용기가 생기는 겁니다. 명예심이 왜 필요하느냐? 명예심이 있기 때문에 용기가 생기는 거예요. 우리가 6·25 때 나라를 세운 지 2년밖에 안되었는데도 열넷에서 열여덟 살밖에 안 되는 소년병이 왜 그렇게 많이 자원 입대를 했느냐? 애국심 때문에 한 것 아닙니까? 오랜만에 만든 이 나라를 지키는 것, 그것이 가장 고귀한 일이다. 인간으로서 가장 고귀한 것은 성경에 의하면 ‘네 이웃 사랑하는 것을 네 몸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벗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 이것이 가장 고귀한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가장 고귀한 것이다, 하는 생각을 놓쳐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전쟁나면 도망간다, 군대 안 간다, 천안함 폭침이 생겨도 전쟁 날까 두려워서 북한에 보복하는 것은 안 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의 소용돌이가 군대를 바꿔놓지 않도록 잘 지켜주어야 합니다. 군대가 사회화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군대가 국가를 만들고, 우리 군대가 사회를 바꿔놨어요. 그래서 이 사회가 잘 되고 있는 겁니다. 즉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해가지고, 그때는 軍장교단이 아주 우수한 사람들이니까 이 사람들이 서장도 되고 장관도 되고…. 군대에서 가졌던 노하우를 관료집단한테 가르쳐주고 기업인들을 밀어주고 해서 군대가 사회를 바꿔놓은 결과가 경제발전입니다. 군대가 사회를 바꿨기 때문에 한국이 발달되었어요. 핸드폰 군대, 아저씨 군대는 사회가 군대를 바꿔놓은 결과입니다. 그 흐름을 막고, 군대가 지금까지 가졌던 위대한 업적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좌익이 석권하고 있는 사회로부터 국가를 지켜내고, 헌법정신에 충실한 집단으로서 존재하고, 그것을 국민들이 밀어주면 대한민국은 현재 말로서 진행되고 있는 이 內戰(내전), 이것이 설사 총을 드는, 피를 부르는 內戰으로 가더라도 우리는 이 체제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 출발점은 국군이다 하는 점을 오늘 강조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래도 질 수 없는 게임이고 희망이 있어요. 왜냐? 그래도 6·25 책임은 김일성한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60% 있기 때문입니다.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한 표라도 많으면 이기는 것 아닙니까? 이 60%는 어떤 사람이냐? 군인, 연세 드신 분들, 돈 많은 사람들이죠. 이 60%가 가지고 있는 게 뭐냐? 그 무기를 한번 점검해보자 이거예요. 첫째 국군이 있으니까 강력한 무기가 있어요. 돈이 많습니다. 세상을 살아온 경험, 지혜가 있어요. 헌법이 우리 손에 있어요. 헌법을 뒷받침하는 진실이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무기를 점검해 보면 많습니다. 문제 집단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아요. 하지만 이 무기들은 다 용기가 있어야 써먹을 수 있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용기가 없으면 고철이 되어버립니다. 용기를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대통령과 여당한테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 기대하기 전에 우선 나는 뭘 할 것이냐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지켜야 될 陣地(진지)는 뭐냐. 참모총장이 됐으면 전쟁을 시원하게 해치우겠는데 여러분은 다 소대장입니다. 대통령이 아니에요. 그럼 소대장이 지켜야 될 陣地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걸 찾아야죠. 그 진지 하나하나를 지키다 보면 어떻게 되느냐? 문자로 쓰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守一隅 照千里(수일우 조천리).’ 한 모퉁이를 굳건히 지키면 천리를 비춘다. 한 모퉁이를 굳건히 지키면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결국은 이 세상을 비출 수 있다. 내가 지켜야 될 진지를 찾아내고 그 진지를 나부터 지키자. 지키는 방법은 뭐냐? 범법자들에 대하여 고소장 쓰고 고발장 쓰는 것도 陣地 지키는 일입니다. 신문을 보면 죄지은 좌익들 기사들이 많아요. 그자들을 고소하는 것, 고소장을 많이 써야 되요. 다음으로 6·25 참전 용사들이 요새 많은 일을 하시는데 특히 手記(수기)를 많이 쓰시더라고요. 저한테도 많이 부쳐오세요. ‘우리 집안에서 나눴던 이야기입니다’ 하면서 아주 두꺼운 종이에 어떻게 보면 조잡하고 순박하게 쓴 책을 저한테 보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읽어보면 다 소설처럼 재미가 있어요.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것, 회고록 쓰고 고소장 쓰는 것이 陣地를 지키는 일 중에 중요한 것이라는 말씀드리며 오늘 이야기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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