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가 사라진다] < 7·끝> 자문단이 제시하는 '사다리 복원 해법'
사다리에서 미끄러지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시 끌어올릴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13년 동안 정부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정부가 2000년 도입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소득이 최저생계비 밑으로 떨어진 사람을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해 자녀 급식비, 본인 의료비 등 80여 가지 혜택을 주는 제도다. 현재 전체 복지 예산 30%가 기초생활 수급자 153만 가구 지원에 쓰인다.그러나 사다리 붕괴 현상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중산층은 "내 집 마련하랴, 자식 가르치랴 빠듯하게 살면서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데 정작 우리 집이 가난해지지 않게 막아주는 장치는 없다"고 한다. 빈곤층은 빈곤층대로 "겨우 연명만 할 뿐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한다.
해법은 무얼까. '사다리가 사라진다' 기획에 참여한 전문가 자문단은 "지금까지 복지가 국가 예산으로 빈곤층 의식주만 해결해주는 '소비형 복지'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자문단은 "이제 빈곤층 스스로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투자형 복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취업·내 집 마련 등 삶의 모든 국면에서 '투자형 복지'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국가 재정에 부담 주지 않으면서 상승의 사다리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 '상승의 대안 통로'로
大入 전형·편입학 문호 확대하고 '대학 대안'으로 전문계高 등 키워야
대한민국 교육은 모든 고교생이 대학 입시에 '올인'하는 구조다. 교육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학생은 적고 떨어지는 학생은 많을 수밖에 없다. 역대 정권이 획일적인 '가짜 평준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들이 한 반에서 공부하는 시스템을 고집해 오히려 학력 양극화를 부추겼다. 정부가 '사교육을 없앤다' '입시 경쟁을 줄인다'고 내세울수록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자문단은 "대학에서 각종 기회균형선발 전형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경근 고려대 교수는 "단순히 문호를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파격적인 장학제도를 마련해 '입학 이후'까지 책임져야 한다"며 "기여입학제 등 다양한 재원 확충 방안을 놓고 지금 당장에라도 금기 없는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문계고가 '사다리' 역할을 되찾으려면 전문계고 졸업생들이 대입과 취업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국가가 확실히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재학 중에는 최고의 직업 교육이, 졸업 후에는 '평생 커리어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용… '다양한 출세루트'로
대기업·정부, 中企 출신 적극 채용 '유연근로제'로 노동시장 진입 쉽게
모두가 단 하나의 상승 통로에 '올인'하는 현상은 대입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 졸업 후에는 모든 사람이 한정된 '좋은 일자리'를 놓고 무한 경쟁을 벌인다. 취업과 출세의 루트가 단일 경로로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김세종 선임연구위원은 "지방대·비명문대 출신과 고졸 출신이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편입학 규모를 늘리고, 중소기업에서 출발한 사람이 대기업으로 뛰어오를 수 있도록 대기업 인력 충원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소기업 출신 인재를 자격시험 출제위원, 대학 겸임교수, 정부 개방직 공무원 등에 중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문단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 산업을 '고용 사다리'의 돌파구로 삼기를 기대했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훈련된 전문인력을 양성해 해외 고객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쓰도록 하거나, 우리 인력을 해외에 진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명수 고용정보원 연구개발본부장은 "기존 일자리에 대해서도 탄력근무제·선택시간근무제·재택근무제 등 다양한 형태의 유연 근로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래야 여성·중년 이상 근로자·노인·이주 노동자 등이 노동시장에 뛰어들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복지… '투자형 복지지원'으로
집집마다 '투자형 복지시스템'을… 복잡한 복지체계도 '원스톱'으로
국가가 모든 비용을 감당하는 복지는 실현 가능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자문단은 현행 복지 시스템의 한계를 두 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빈곤 탈출 효과가 작다. 정부가 수급자를 집중 지원하는 대신 수급자가 조금 형편이 나아지면 한꺼번에 모든 혜택을 끊는다. 깁스를 푼 환자에게 재활훈련 없이 목발부터 빼앗는 식이다. 그래서 한번 수급자가 되면 좀처럼 자활할 엄두를 못 낸다.
둘째, 수급자를 뺀 다른 사람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몰린다. 정부가 수급자 선정 기준을 까다롭게 유지해 형편이 절박한데도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이 많다. 중산층과 차상위계층이 밑으로 추락하지 않게 받쳐주는 보호 장치도 없다. 차상위계층 A씨는 "지금 제도는 '바닥까지 떨어지면 국가가 책임지겠다. 그전까지는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식"이라고 했다.
노대명 사회통합위원회 전문위원은 "전체적으로 복지 예산을 늘리되,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교육비가 모자라는 가정, 재취업 서비스가 절실한 가정, 병원비 할인을 원하는 가정 등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다. 따라서 단순히 기존 제도를 확대하는 차원이 아니라, 개별 가정의 소득과 욕구에 맞춰 중산층까지 다양한 혜택을 주는 '맞춤형 복지 사다리'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초생활 수급비는 주민센터에서, 취업 정보는 고용지원센터에서, 공공임대주택 신청은 토지주택공사에서 담당하는 복잡한 전달체계도 소비자 중심으로 한 곳에서 서비스받을 수 있도록 가다듬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가 관공서를 뱅뱅 돌 필요 없이 한 곳에서 '원스톱 탈빈곤 지원'을 받도록, 주민센터에 복지·고용·주택 정보에 정통한 전문인을 배치하자고 자문단은 제안했다.
주택… 일자리 대책과 함께 가야
값싼 주택 공급은 빈곤 대책 핵심 '고용+주택' 영국식 복지 모델 주목
자문단은 일자리와 주택 대책이 손잡고 가는 시스템을 짜야 한다고 제언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일자리가 가장 중요하지만, 일자리를 구해도 주거비 부담이 크면 중산층·빈곤층의 경계선을 맴돌 뿐 안정을 찾지 못한다. 따라서 장기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해 저렴하고 안전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빈곤 대책의 핵심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박신영 토지주택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①주택공급 ②직업교육 ③고용 지원을 하나로 묶어 진행하는 영국 모델을 참고할 만하다"고 했다.
‘사다리가 사라지는 사회’ 자문단
김경근 고려대 교수(교육학)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정책학)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경제학)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노대명 사회통합위원회 전문위원(정치사회학)
박명수 고용정보원 연구개발본부장(노동경제학)
박신영 토지주택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시행정학)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회학)
서병수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장(사회복지학)
석상훈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경제학)
이민규 중앙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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