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서해전선 초계함 동승 취재
"조국은 우리를 믿고 있다" 함교에 표어 붙여놓고 근무
"실전! 총원 전투배치."지난 19일 오후 2시쯤 서해 연평도 남서쪽 20마일(약 37㎞) 해상을 항해하던 해군 제2함대사령부 소속 초계함 순천함에 비상이 걸렸다. 황해도 등산곶을 떠난 북한 경비정 5척이 NLL(북방한계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남하하는 모습이 레이더에 잡힌 것이다. 적 경비정들은 그대로 NLL을 넘을 듯 곧바로 직진해왔다.
순천함도 속도를 높여 NLL 근방으로 이동해 갔다. 전원 철모와 방탄복을 착용한 순천함 장병 얼굴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적과의 거리는 17마일(약 31.5㎞) 정도였다. 76㎜ 주포와 40㎜ 부포도 즉시 발사 가능한 상태로 대기했다. 같은 시각 서해 후방에 있던 한국형 구축함 2척도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전투태세를 갖췄고,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된 K-9 자주포도 사격준비를 마쳤다.
- ▲ 19일 오후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을 경비하는 순천함에서 견시병이 망원경을 들고 해상을 감시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순천함 함장 김승철(41·해사 46기) 중령은 "적 경비정들이 언제 NLL을 침범해 도발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적들이 남쪽으로 움직이면 우리는 완벽한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해당 수역으로 재빨리 기동(機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 경비정들은 NLL 북쪽 3000야드(약 2700m) 지점까지 내려왔다가 좌우로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돌아갔다. 순천함의 '실전 전투배치'는 30분 만에 해제됐다.
순천함은 지난 3월 26일 북한 잠수함 어뢰 공격에 침몰한 천안함과 같은 1200t급 전투함이다. 본지는 19~ 20일 1박2일 동안 국내 언론으론 처음으로 서해 경비 임무를 수행하는 초계함에 동승 취재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서해 경비를 맡은 전투함들에 큰 변화가 있었다. 낮에는 12~13노트 정도로 움직이다 밤에는 15노트(약 27.8㎞) 이상으로 빠르게 기동했다. 지그재그처럼 급격하게 우측,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적 잠수함(정)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야간 기동은 2~3m 높은 파도와 겹치면서 배를 위아래나 좌우로 흔들어댔다. 기자는 물론이고 적잖은 장병도 뱃멀미에 시달렸다.
순천함 주요 장병은 자기 임무를 적은 '임무카드'를 목에 걸고 다녔다. 이날 밤 11시에는 적 잠수함 어뢰공격을 가정한 훈련을 했고, 두 시간 뒤엔 폭뢰 투하 훈련도 했다. 해군 관계자는 "지난 5월 이후 적 도발을 잠수함, 유도탄, 해안포 등 9가지 유형으로 나눠 다양한 위협에 대응하는 훈련을 하루에도 최소 2~3회씩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철 함장은 "훈련이 반복되면서 비상 때 대응하는 속도가 단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적 잠수함을 더 빨리 찾아내고 격퇴하기 위해 일부 해역에서는 초계함과 구축함(또는 호위함)을 한 팀으로 묶어 경비하고 있다. 초계함이 매일 밤 소형 폭뢰와 수류탄을 바다 속에 터뜨려 혹시 있을지 모를 적 잠수함에 경고를 보내는 점도 전과 달랐다.
한번 출항하면 약 2주일을 배에서 보내야 하는 장병의 평균 수면 시간은 5시간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야간 훈련과 실제 상황이 반복되면 잠자는 시간은 5시간도 되지 않을 때가 잦다. 이재성(40) 주임상사는 "꽃게잡이 철에는 훈련과 실제 상황을 합쳐 하루에 10번 이상 비상이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순천함 함내는 근무지와 침실, 식당 말고는 마땅히 갈 곳도 앉을 곳도 없어 답답함마저 느끼게 했다. 한 수병은 "후타실에 간단한 운동기구가 있지만 천안함 사태 이후 왠지 찜찜해서인지 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승철 함장은 "서해는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하루 24시간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곳"이라며 "오직 군인정신으로 팽팽한 긴장감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이겨내는 장병이야말로 우리의 영웅들"이라고 말했다.
함장의 말을 듣고 올려다본 함교의 벽에는 "조국은 우리를 믿고 있다"는 큰 글씨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