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최초 취조한 러시아 기록, 일본어로 옮긴 문서 공개
체포 당시 상황 등 자세히 드러나
"한국 국적 인정할만한 증거 충분 러시아 재판에 부칠 성질 아니다"
러, 12시간 넘게 조사후 日에 넘겨
하얼빈 의거 직후 안중근(安重根·1879 ~1910) 의사를 최초로 신문한 러시아의 취조기록을 당시 일제가 일본어로 번역한 자료가 공개됐다.러시아어 원본의 소재를 알 수 없는 가운데 그 내용이 담긴 자료라는 점에서 안중근 의사의 체포 당시 상황, 러시아가 일제에 안 의사를 넘긴 이유 등을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안중근 연구자인 신운용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책임연구원은 일본 외교사료관에서 '노국(露國·러시아)관헌 취조번역문'(332쪽 분량)을 찾아내고, 이를 분석한 논문을 최근 간행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3호에 발표했다.
- ▲ 하얼빈 의거 당시 러시아의 안중근 의사 취조 내용을 일제가 일본어로 번역한‘노국관헌 취조 번역문’. /신운용 책임연구원 제공
러시아 당국은 안 의사를 취조한 후 오후 10시 10분 안 의사의 신병과 취조기록 원본을 일본 하얼빈 총영사관으로 넘겼다. 러시아 한국학자인 박 보리스는 1999년 출간한 책 '하얼빈역의 보복'에서 "안중근과 그의 동지들, 그리고 모든 예심 서류들을 복사본도 남겨두지 않고 일본측에 넘긴 이유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노국관헌 취조번역문'은 안중근 의사 등의 신문 및 구류 결정서, 안중근·우덕순·조도선 등을 일본에 넘긴다는 결정서와 통지문, 의거 현장에 있던 러시아인에 대한 신문 조서, 관계자 진술서 및 보고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 뤼순 감옥에 수감돼 있을 때의 안중근 의사.
신운용 연구원은 "일제는 사건 당일 러시아 사법당국에 안중근의 신병 인도를 요청하였다"면서 "러시아는 안중근이 한국 국적자라는 사실을 근거로 재판 관할권이 일제에 있다고 판단하여 신속히 넘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연구원은 "1907년 일어난 한국인의 일본인 살해사건을 계기로 하얼빈 지역에서 한국인에 대한 사법권을 일제가 행사하기 시작했다"며 "안중근이 러시아 국적이었다면 적어도 사형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취조번역문'에는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 관헌에게 체포될 당시 상황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검사 밀레르의 진술에 따르면 안 의사는 하얼빈 역에서 2~3회 총격을 발사한 직후 철도경찰서장 대리 니키포르포 기병대위의 제지를 받았으나 이를 물리치고 총격을 계속했다. "니키포르포는 흉행자(凶行者)에게 돌진하였으나 흉행자의 완력이 강하여 그를 진압할 수 없었다. 다른 러시아 장교의 도움을 받아 흉행자의 권총을 빼앗아 더는 발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영웅을 넘어 영원히 기억될 존재 '안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