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다시 취재하게 된 6·25 참전 미군 용사의 알링턴 국립묘지 안장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취재진은 안장식 현장으로부터 30m 떨어진 곳까지만 갈 수 있었다. 'ㄷ 자(字)' 형태의 노란색 줄로 차단된 곳에서 행사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 장례의 엄숙성을 위해서였다. 미군이 취재진의 활동반경을 제한해 가면서 유지하려고 한 경건과 숙연함은 안장식에 그대로 적용됐다.
60년 만에 유해(遺骸)로 귀환한 로버트 랑웰(Langwell) 해군 소위는 추모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6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탄약 마차를 타고 도착했다. 30여 명의 의장대원들과 유족 및 양국 정부 관계자들이 뒤를 따랐다. 랑웰 소위는 1950년 동해바다에서 그가 탄 함정이 북한의 기뢰 공격으로 폭발하면서 실종됐었다. 2008년 그의 유해가 한국군에 의해 발굴돼 미군이 그의 신원을 확인한 끝에 영원한 안식처를 얻었다.
6명의 의장대원은 성조기가 덮인 랑웰 소위의 관을 발맞춰가며 운구(運柩)했다. 푸른 카펫이 깔린 묘역에 관이 놓이자 대각선 방향에 서 있던 7명의 의장대원이 세 발의 조포(弔咆)를 발사했다. 미군 군목이 그를 추모하는 기도를 이끌었다. 이어 관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던 의장대원들이 2m 길이의 성조기를 가슴 높이까지 치켜들었다. 절도 있는 손동작으로 접히기 시작한 성조기는 순식간에 밑변 50㎝ 모양의 삼각형이 됐다. 이를 미군 장교가 조문객의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랑웰 소위의 육촌 누이 카렌 스파라우어(Sprauer)에게 전달하면서 안장식은 끝났다. 장례식이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숱한 군(軍) 장례식에 참석했을 것이 분명한 한국군의 영관급 장교는 "말로만 듣던 알링턴 국립묘지 안장식이 이렇게 감동적일 줄 몰랐다"고 했다.
다음 날, 역시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1919년 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사망한 미 60보병연대 소속 토머스 코스텔로(Costello) 일병의 안장식이 열렸다. 프랑스의 사냥꾼이 숲 속에서 발견한 유해를 전달받은 미군은 치아감식 등을 통해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가족들을 수소문해 찾았다. 전사한 후 91년 만의 안장식은 워싱턴 포스트가 크게 다뤘다.
미군이 이렇게 적극적인 것은 군(軍)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군의 사기(士氣)는 물론 강군(强軍)을 유지하는 필수조건임을 알기 때문이다. 전사한 군인들을 예우하고, 실종된 미군은 끝까지 찾겠다는 강한 의지의 피력이 미국 국민의 믿음을 유지하는 기반이다.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새벽 4시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18명의 시신이 운송돼 올 때 델라웨어주의 공군기지를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들의 시신이 비행기에서 완전히 내려질 때까지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한 것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천안함 사태로 군에 대한 신뢰도는 급락했다. 우리 군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제2의 창군(創軍)' 필요성을 언급했다.
생존해 있는 6·25 참전 용사들을 예우하고, 전사자들을 명예롭게 기리며 실종 군인들을 끝까지 찾는 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벽 4시의 거수경례
입력 : 2010.08.0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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