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선 전쟁에서 패하거나 정치 실패로 민심이 술렁이면 유대인들을 때려잡았다. 그러나 유대인보다 더 쉬운 속죄양이 바로 마녀였고, 지배층은 '마녀사냥'을 벌여 대중들의 분노를 가라앉혔다. 요즘 정부와 여당의 '대기업 때리기'를 보면 바로 이 마녀사냥이 생각난다.
마녀사냥은 대중들의 미움을 받고 있는 대상을 골라, 왜곡된 사실로 죄를 뒤집어씌우는 수법이 전형적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마녀의 후보로 오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태생이 정경유착이다 보니 글로벌 경제질서에 편입된 요즘에 와서도 '원죄(原罪)'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업과 빈부격차로 고민하는 경제구조 속에서 홀로 화려한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점도 질시를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마녀의 죄에는 실체가 없듯이, 지금 대기업들도 억울한 점이 많다. 대표적인 누명이 "정부의 고환율정책 때문에 큰 흑자를 보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전제부터가 빗나간 것이다. MB정부 들어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인위적인 정부정책이라기보다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더 큰 원인이었다. 2008년 중반 이후 환율이 갑자기 1400원대로 폭등한 것은 그해 9월 리먼사태가 결정적이었다. 올 연초만 해도 내려가던 환율은 남유럽재정위기를 맞으면서 6월부터 다시 불안해졌다. 시장은 환율하락이 대세라던 정부의 뜻과 반대로 움직인 것이었다.
고환율로 대기업들이 큰 흑자를 보았다는 주장도 정확하지 않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에 5조원의 이익을 냈지만 미국 달러로 거래한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하지만 가장 큰 시장인 유럽시장에서 유로화의 약세로 손실을 입어, 달러와 유로화 환율을 모두 감안하면 1000억원 이상의 환차손을 입었다는 것이다.
지금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다. 금융위기 와중이었던 2008년 4분기 환율은 1300원대로 높았으나, 삼성전자는 반도체가격의 폭락으로 1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요즘 LG화학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모바일 시대를 내다보고 2차전지 사업에 투자한 덕분이었다. 반면 LG전자는 스마트폰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했다가 올해 2분기 휴대폰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휴대폰의 황제였던 노키아도 저가품에 집착하다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애플과 비교할 때, 10년 전 14배였던 노키아의 시가총액은 스마트폰 등장 이후 8분의 1로 추락했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거대기업의 운명이 뒤바뀌는 살벌한 세상인 것이다.
노무현식 화법으로, 정부와 여당은 요즘 '마녀사냥'에 재미를 좀 본 것 같다. 대기업을 때리니 서민 대중들이 환호하고, 덕분에 재보선에서도 승리했는지 모른다. 한나라당도 '국가가 적정한 소득분배를 유지하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2항을 꺼내 들고 나왔다. 하지만 바로 앞의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1항이 2항보다 상위개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구리에 돌을 던지면 구경꾼들은 좋아하지만, 돌을 맞는 개구리에게는 목숨이 걸린 문제다. 무한경쟁의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민간기업이 혹시 잘못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며, 일자리와 봉급은 누가 마련할 것인지, 한국의 위정자들은 대기업을 비난하기 전에 꼭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新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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