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경술국치… 100년전 신문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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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8-29 10: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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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22일 강제병합 조약이 체결된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 자락에 있는 통감관저 자리.
1910년 8월 29일.
한국과 일본의 강제병합 칙령이 공포된 지 오늘로 꼭 100년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권리를 빼앗긴 '국가적 치욕을 당한 날'입니다.
이에 앞선 8월 22일 오후 창덕궁 대조전 흥복전에서는 대한제국 황제 순종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고 합니다. 안건은 '한·일 강제병합'에 관한 것으로, 강제합병 조약을 체결하는 전권을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위임하는 문제를 논의한 자리였습니다.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탁지부대신 고영희, 법부대신 이재곤, 궁내대신 민병석, 시종원경 윤덕영과 왕족 대표 이재면, 중추원 의장 김윤식 그리고 순종 황제가 참석했다고 합니다.
이완용은 강제병합의 필요성과 함께 일본과 합의한 내용을 설명했자 각료들은 일제히 "옳소"라고 읇조렸다고 합니다. 이에 순종 황제도 전권을 이완용에게 위하는 문서에 국새를 꾹 눌렸습니다.
위임자을 손에 넣은 이완용은 곧바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기저하던 남산 아래 통감관저로 달려가 조약을 체결한 후 샴페인을 퍼뜨렸습니다.
1910년 8월 22일 오후 5시였다고 합니다. 월요일이었던 이날 저녁 서울에 있던 외신기자들은 일본 헌병사령관 아카시가 주최한 연회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 8월 29일 통감부 칙령이 공포되면서 '대한제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공식문서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름을 빼앗긴 것은 나라 뿐이 아닙니다.
대한매일신보 1910년 8월 16일자 1면. [출처=한국언론진흥재단 통합기사검색]
대한매일신보 1910년 8월 16일자 1면. [출처=한국언론진흥재단 통합기사검색]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을사조약을 체결하기 한 해 전인 1904년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었습니다.
영국 데일리 뉴스의 특파원으로 대한제국에 왔던 베델(Ernest Bethell, 배설)이 사장을 맡았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한때 국한문혼용, 국문, 영문판 3종류 1만여부가 발행되는 등 당시로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신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강제병합 의욕이 노골화되고, 1909년 베델이 타계한 후 사세는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강제합병조약을 몰래 체결한 지 6일이 지난 8월 28일 대한매일신보가 이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이날 2면에 '시국문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데라우치 총리와 이완용 총리가 지난 16일부터 합병을 위한 정식교섭을 시작해 22일 정식으로 조인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같은 면에 '29일에 발표' '총독부제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매일신보'로 이름이 바뀐 후 발간된 8월 30일자 1면. [출처=한국언론진흥재단 통합기사검색]
이렇게 대한제국을 일본에 강제병합시키는 조약이 정식으로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전한 대한매일신보도 이름을 빼앗기는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다음날인 30일(화요일) 나온 대한매일신보의 제호는 '대한' 두 글자가 빠진 매일신보였습니다. 발행인 겸 편집인은 이장훈 그대로였지만 발행소는 대한매일신보사가 아닌 매일신보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름이 바뀌었다기 보다 이름을 빼앗긴 것이죠.
황성신문 8월 27일자 1면, 한성신문 8월 30일자 1면. [출처=한국언론진흥재단 통합기사검색]
이름을 빼앗긴 신문은 대한매일신보 말고 또 있습니다.
장지연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유명한 황성신문(皇城新聞)은 1898년 9월 5일 국한문혼용의 일간지로 창간되었습니다.
1910년 8월 27일(토요일) 제3456호를 발간한 황성신문은 사흘 뒤인 30일(화요일) 제3457호를 냈지만 이름은 '황성신문'이 아닌 '한성신문(漢城新聞)'이었습니다. 제왕이 군림하는 '황성'을 '한성'으로 바꾼 것이죠.
이름을 빼앗긴 '황성신문'은 다음달인 9월 14일 제3470호를 끝으로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8월 29일은 나라를 빼앗긴 '국가치욕일'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까지 빼앗긴 '언론치욕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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