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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오는 젊은이 대부분 천안함 발표 안믿어… 이런 판에 정의 논할 수 있

화이트보스 2010. 9. 6. 10:12

내게 오는 젊은이 대부분 천안함 발표 안믿어… 이런 판에 정의 논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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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05 23:30 / 수정 : 2010.09.06 07:40

이명박 대통령과 휴가 함께한 이문열씨
保守, 정권뿐만 아니라 국회권력까지 넘겨줘야 정신 차릴 텐가?
장관 제의 받은 바 없다… 그런 말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한심하다
분단 60년 삶 녹아있는 황장엽씨, 가장 소설적 인물… 다음 작품에 담을 것

최근 작가는 이명박 대통령 휴가 동반에 이은 문화관광부 장관 내정설로 구설에 올랐다. 연초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 '불멸'(민음사)을 출간한 직후 한 인터뷰에서 "정치적 발언은 더 이상 않겠다"고 선언한 그였지만, 또 정치와 관련된 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주말 경기도 이천에 있는 자택 '부악문원'에서 만난 작가 이문열(李文烈·62)은 화가 많이 나있었다. 그래선지 처음 인터뷰 요청 때만 해도 "아무 할말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던 작가는 막상 자택을 찾아간 기자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간 쌓인 속내를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황석영씨나 이문열씨 모두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있으니 장관설이 나온 것 아니겠나?

"황석영씨에 대해서는 내가 이야기할 게 없고. 참 얼척(어처구니의 방언)없는 일이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 원추라는 새는 남해에서 출발하면 북해까지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단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원추가 하늘을 날 때 그 아래 솔개가 썩은 쥐를 쥐고 있다가 원추를 향해 끽 소리를 내며 노려보았다. 내가 장관을 한다 안 한다를 떠나 그런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한심하다."

이문열씨는“작가는 작품으로 독자와 소통해야 한다. 트위터를 통한 직접 소통은 한 인간으로는 모르지만 작가로서는 곤란하다. 작가의 권위를 버려 단기적으로는 환영을 받겠지만 길게 보면 땅에 떨어진 작가의 권위가 문학을 버림받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임명권자가 원한다면 굳이 안 할 것도 없지 않은가?

"먼저 두 가지는 분명히 한 다음 답을 하겠다. 첫째 청와대로부터 그와 관련된 아무런 제의도 받은 바 없고 둘째 그런 제의가 와도 안 한다. 다만 문화부장관은 이어령 선생 같은 분이 했으면 좋겠다. 사실 문화부장관이라는 게 원래는 한직(閑職)에 청직(淸職)이었는데 김대중정부 때부터 실세들이 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실세 정치인이 차지하는 요직(要職)이 돼버렸다."

―문화 본래의 영역을 되찾도록 힘을 실어준다면 장관 맡을 생각도 있다는 뜻인가?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대통령 휴가 때의 동반은 어땠나?

"유인촌 장관의 권유가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대통령은 테니스를 쳤고 나는 배를 내줘서 낚시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과 다음날 아침을 함께 하면서 많은 시간 같이했다. 민감한 이야기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쓴소리 좀 했을 것 같은데.

"안 했다. 그냥 내가 대통령을 생각했던 것보다 대통령이 나를 잘 기억하고 좋은 인상을 갖고 계셔서 미안했다.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

―알았다. 청문회, 유명환 장관 파동 등으로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어느 때보다 차갑다. 여당의 내분사태는 우파나 보수 쪽의 사람들도 걱정을 하고 있다.

"(한참 말이 없다가) 나도 걱정스럽다. 정말 험한 꼴을 아직 못 봐서 그렇다. 이 담에 좌파에 정권뿐만 아니라 국회권력까지 다 넘겨줘 봐야 정신 차릴까? 한심하다. 물론 우리의 보수는 과거로부터 좋은 유산은 별로 물려받지 못하고 부정적인 유산만 덤탱이(덤터기의 방언)로 물려받아 덜어내야 할 것이 많다. 한국 보수는 너무 많은 짐을 실은 배와 같다.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하버드大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수십만부가 팔려나간 것은 한국사회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보는데.

"책은 못 봤고 기사는 읽었다. 그 책을 특히 좌파들이 좋아한다고. 아마도 우리 사회를 향해 '정의가 있는가?'라고 묻고 싶어서겠지. 그런데 지금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이다. 즉, 대한민국은 있는가 하고 묻고 싶다. 내 생각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없거나 있다 해도 절명 직전에 놓여 있다. 대한민국을 나서서 지키려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그 나라가 온전히 존속될 수 있겠는가? 플라톤의 '공화국'도 정의의 문제가 핵심이다. 정의와 국가는 함께 가는 사안인데 국가는 없이 정의만을 물어서 뭘 하겠는가?"

―만일 좌파들이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그런다고 반박한다면?

"좌파에게는 이념만 있다. 정의도 없고 대한민국은 더더욱 없다. 천안함사건에 대한 좌파나 젊은이들의 견해를 보라. 내가 지원하는 이 '부악문원'에 오는 작가 지망생이나 신진작가 10명 중 9명은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 그런 판에 무슨 정의요 대한민국인가? 대한민국 반대세력이 너무나도 많다."

―좌파들의 잦은 공격대상이 되다 보니 조금은 피해의식에서 나온 극단적 주장 같은데. 요즘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긍정적으로 인식하려는 움직임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런 흐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같은 인식이 생겨나는 속도가 너무 느리고 그 범위도 너무 제한적이다. 그래 가지고는 댓글 하나에 삐딱한 노선을 쉽게 받아들이는 젊은 층이나 좌파 진영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내 분야를 예로 들어보겠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독자와 만난다. 그런데 작품을 내면 인터넷서점에 '난 이 책 안 읽어봤는데…'로 시작하는 댓글이 달린다. 정상적인 대화에 과연 책도 안 읽은 사람이 말을 하겠다면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통한다. 책의 내용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이 작가와 관련된 일방적인 비난성 댓글들이 도배된다. 그리고 그것이 그 작품에 대한 의견인 양 확산해 간다. 당연히 토론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불통(不通) 불통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불통이다."

―독자를 상대해야 하는 작가로서 많이 힘들겠다.

"솔직히 태생이 좌파거나 골수 진보인사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집안 내력상으로 혹은 보험 들듯이 좌파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화가 나는 사람들은 좌파도 아니면서 부화뇌동하는 '덩달이'들이다. 읽고서 욕하는 사람이야 어쨌거나 그의 의견이요 견해지만 읽지도 않은 구경꾼들이 앞장서서 욕을 해댈 때는 참담함을 느낀다. '저게 전부는 아닐거다'라며 우리 사회의 양식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절망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은 그걸 이겨내 보려고 애쓰고 있다."

―잠깐 열기를 식혀야겠다. 요즘 관심 깊게 읽은 책은 뭔가?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꼼꼼하게 다시 읽었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은 없는지,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가 여전히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론이나 진지론의 차원에서 분석될 수 있는지. 전교조를 비롯한 상당한 좌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진지를 확보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또 다른 책은 중국학자 왕건문이 쓴 '공자, 최후의 20년'(글항아리)이다. 방랑 방황하는 공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책인데 마음 아프게 읽었다."

―세상과 소통이 단절된 듯한 공자의 모습에서 본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가?

"나야 독자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으니 공자와는 다르지. 다만 인터넷을 대하다 보면 솔직히 공자의 처지나 내 처지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특히 어떤 점에서 그런가?

"한쪽에서는 부지런히 선동해대는 사람들이 있다. 또 그쪽은 재밌다. 나는 재미는 없지만 진실을 말하고 싶다. 그런데 내가 하는 말은 어느새 인터넷상에서는 '공자 말씀'이 돼버렸다.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 말을 공자 말씀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나 자신보다는 이런 세상을 보고 있자니 마음 아프다."

―후배작가들이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인터넷상의 틀로 보는가? 선배작가로서의 존경심은 갖고 있는가?

"존경심? 그런 것은 있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 때만 해도 10년 차이도 안 나는 선배였지만 이청준 최인훈 이호철 김승옥 등 전후(戰後)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하고 숭배하면서 문학의 세계를 배웠다. 그런데 요즘 후배작가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다수는 '보수 꼴통이다'며 슬슬 피해버리고 그나마 소수들도 그저 자기 학급의 우등생 대하는 정도다. 아마도 선배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탐독하고 숭배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문학 전통을 가진 작가는 신경숙씨가 마지막일 것이다."

―그런 전통의 단절이 한국문학의 부진(不振)과 직결돼 있는가?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난 이렇게 본다. 이야기라는 것이 그리스시대에는 연극이나 서사시가 대표적인 표현수단이었다. 소설이 이야기의 대표적 표현기관이 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매체가 다양화되면서 이야기 전파메커니즘이 완전히 바뀌었다. 인터넷이 소설을 덮쳤다고나 할까? 그래도 소설은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살아남을 것이라고 낙관했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소설가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앞이 안 보인다."

―요즘은 다음 작품을 위해 무슨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나?

"지난 10여년을 돌이켜 볼 때 가장 소설적인 인물이 누구라고 보나? 황장엽 선생이다. 그분의 삶을 들여다보면 남북 분단 60여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그 삶에 비극과 결단, 권력과 배신 등이 다 녹아들어 있다. 얼마나 문제적이고 소설적인가?"

―구상단계인가 준비도 하고 있나?

"자서전이나 저서들을 다 읽었고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분이 막 한국에 왔을 때 10여 차례 면담을 했다. 이후 김대중정부 초기에 딱 한 번 만나고 더 이상 만나지는 못했다. 그분의 삶을 보면 중국 진나라 때 진시황의 재상 이사(李斯)가 떠오른다. 이사는 천하통일의 책략가이자 진시황의 아들 호해(胡亥)를 가르친 스승이다. 사실 황장엽 선생은 원칙대로 하자면 세습을 반대해야 했고, 설사 김정일 세습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그를 바른 지도자로 키워야 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원칙을 버리고 선택한 김정일로부터 버림을 받고 남쪽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그런데 이쪽에서 정권이 바뀌어버렸다.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사실 최근에 소설작업을 위해 다시 한 번 만남을 청했더니 부정적이었다. 생각해 보니 자꾸 만나다 보면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이 될 것 같아 더 이상 안 만나는 게 좋을 듯 싶기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정리되는 대로 소설 황장엽을 쓰겠다."

●이문열씨는…

이문열씨는 경상북도 영양 생(生)으로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중퇴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중 1978년 중편소설 '새하곡'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늦은 등단이었지만 탄탄한 구성과 유려한 문장, 강한 자전적 요소들을 바탕으로 종교 예술 이념 근대사 민족 등 묵직한 주제들을 작품화해 8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1987년 발표한 종교 예술 이념 근대사 민족 옹호자를 자임하는 발언으로 잦은 논쟁의 대상과 당사자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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