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이다.
어른들은 우는데 애들은 입이 찢어져라 웃는다. 엄마들은 울어서 눈이 부었고, 아버지들도 눈시울이 불그스레하다. 애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함박웃음을 터트리느라 여념이 없는데...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17세 이하(U-17) 여자 월드컵 얘기다. 우리 앳된 딸들이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사상 첫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일궈냈다.
우리 소녀들은 우리의 조국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그것도 여성 축구의 전통적 강호인 일본을 결승에서 꺾고, 대한민국을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 그 기쁨을, 주인공들은 웃음으로, 부모들은 눈물로 만끽했다. 감동의 표출이 애들과 어른이 그렇게 달랐다. 아무래도 세대차이(世代差異)가 있는 듯하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급하게 만들어진 우리 여자 축구 대표팀은 일본과 첫 A매치 평가전에서 1대13으로 대패했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처절한 참패였다. 특히 일본에게 진 것이 더욱 마음 아팠다.
이웃한 나라는 워낙 사이가 좋지 않은 법. 그 가운데서도 한국과 일본은 좀 더 유별나다. 우리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껄끄러운 역사가 양국 사이에 가로 놓여 있기 때문이리라. 어느 한일전(韓日戰)이 편안했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 선수들은 일본과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했다. 어느 종목에서든 예외가 없었다.
실제로 크고 작은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는 일본을 대부분 이겨 왔다. 역사의 설움을, 그들보다 못사는 아픔을 그렇게 달래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였다.
양국의 경제적 격차가 워낙 커 일본을 앞지른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일본은 한국전을 계기로 일찌감치 고성장을 달성했다. 폐허에서 출발한 한국경제가 일본을 앞지른다는 것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기대였다. 일본은 경제규모 세계 2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8.8%(2009년)를 차지하는 경제대국 아닌가.
그런데, 일본경제신문이 2018년에는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더 잘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하는 각국의 PPP(purchasing power parity, 구매력평가) 기준 GDP(국내총생산)상 그렇게 될 것이란 얘기다. PPP기준 GDP란 각국의 물가상승률의 차이, 환율 영향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구매력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을 산출한 통계를 말한다.
GDP가 각국의 경제력 규모를 반영하는 데 비해 PPP기준 GDP는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반영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8년 뒤에는 우리 국민 개개인이 일본인들보다 사실상 더 잘 살 것이란 얘기다.
IMF의 자료를 보면 올해 예상되는 한국의 PPP기준 1인당 GDP는 2만9351달러로 일본(3만3478달러) 턱밑까지 추격했다. 명목 GDP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2만265달러와 4만1366달러로 두 배 차이지만, 일본의 높은 물가를 감안하면 실질적 풍요로움은 비슷하다는 얘기다.
PPP기준 1인당 GDP에 있어서 한국은 괄목한 성장세를 보였다. 최근 10년간 일본과의 격차를 절반으로 줄였는데, 이 같은 성장속도를 유지한다면 2018년에는 일본을 제칠 것이란 게 일본경제신문의 예상이다.
일본은 아시아에 있으면서 아시아국가가 아니라는, ‘이상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에 진입하자는 주장)를 19세기 후반부터 외쳐 왔다.
영국의 입헌군주제를 본 따고 있는 것도 서구에 대한 흠모에서 비롯됐음을 일본인 스스로 부인하지 않는다. 심지어 성적(性的)으로 개방된 일본 문화도 ‘서구 추종 의지의 산물’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시아 유일의 서구적 국가를 꿈꿔왔던 일본은 지난 1990년대 중반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쇠락을 거듭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망가졌던 경제는 미국발 경제위기로 더욱 힘들어졌다. 경제성장률 -5.2%(2009년), 0.1%의 정책금리, 최근의 무리한 외환시장 개입 같은 것들이 일본 경제의 현주소를 설명해 주고 있다.
지난 1966년 일본을 방문했던 프랑스 철학자 시몬느 드 보봐르는 이렇게 지적했다. “일본은 나라는 풍요하지만 국민은 빈곤하다”고. 그러나 이제 일본은 나라마저 빈곤해지고 있다. 국가채무가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총생산의 2배를 훌쩍 넘어섰다.
1인당 명목 GDP개념으로도 우리나라가 일본을 능가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실제로 대형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는 우리나라가 40년 후에는 1인당 국민소득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부국(富國)이 될 것으로 2007년 예상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2025년에 경제규모(GDP) 세계 9위가 되고, 1인당 소득은 미국, 일본에 이어 3위 수준으로 급부상한다. 그러다 2050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8만1462달러에 달해 마침내 일본을 따돌린다는 것이 골드만 삭스의 전망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 눈물을 글썽인 어른들은 많이 생존해 있지 않을 듯하다. 2050년에는 현재의 U-17세대가 중장년층이 돼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모두들 웃음으로 우리의 부(富)를 만끽할 것이다. 우리가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말이다.
◆ 박용하는?
산은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장. 연구소 내 국제경제팀장을 거쳐 구미(歐美) 경제파트를 이끌었다. 한때 국내 일간지에서 경제부·국제부 기자로 다양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에선 국제금융부, 국제업무부, 외화자금부, 자금거래실, 런던지점 등에서 근무하며 국제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와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KAIST 금융공학과정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