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서 6·25참전 60돌 기념식
네셋 아드규젤(79)은 60년 전인 1950년 9월 말 터키의 이스탄불항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는 군함에 올랐다. 한국전에 참전하는 유엔군의 일원이었다. 배는 한 달 후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 뒤 20일간 대구에서 미군이 지급한 M1 소총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받았다.터키군은 훈련을 마친 뒤 북으로 올라가 최전방에 배치됐다. 당시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이 남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그해 11월 말 평양 북쪽에 있는 군우리 협곡에서 중공군과 맞딱뜨렸다. 혈투는 4일 밤낮을 이어졌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시 큐축 슈 궁전 마당에서 열린 ‘터키군 6·25전쟁 참전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참전 용사들. 뒤로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보인다. 터키는 미국영국에 이어 셋째로 많은 군인을 파병했다. [정철근 기자] | |
네셋은 당시 전투에서 가장 친한 전우를 잃었다. 친구는 그의 품 안에서 숨졌다. 근접거리에선 총검으로 백병전을 벌이기도 했다. 네셋도 골반을 칼에 찔리는 부상을 당했다. 일부 소대는 전멸했고 중공군에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스탄불시 큐축 슈 궁전. 오스만 투르크 황제의 별궁이었던 이곳에서 터키의 한국전쟁 참전 6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터키군 참전용사 300명과 그 가족들이 나왔고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참전용사 슐레이만 딜 빌리히(84)는 이날 김은자(65·여)씨를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것은 60년 전, 김씨가 다섯 살이던 때였다.
군우리 전투 후 후퇴 중이던 슐레이만은 길에서 부모를 잃고 울고 있는 김씨를 발견했다. 그는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추위에 떨고 있던 아이를 부대로 데리고 갔다. 음식을 먹이고 새 옷을 입혔다. 아이에게 ‘아일라’란 터키 이름을 붙여줬다. ‘아름다운 달’이란 뜻이었다. 아일라는 1년간 부대에서 자신을 딸처럼 키우던 슐레이만을 ‘바바’(아버지)라고 불렀다. 하지만 슐레이만이 일본으로 전출되면서 두 사람은 헤어져야 했다. 슐레이만은 터키로 돌아온 뒤에도 아일라에 대한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해 김씨와 감격의 재회를 했던 슐레이만은 “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에 기쁘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홍종경 주이스탄불 총영사는 “터키군의 희생으로 오늘날 한국의 번영이 가능했다”면서 “한국과 터키는 칸 카르데시(피를 나눈 형제)”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축하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이 상영됐다. 또 의료·건강기기 업체인 (주)세라젬은 대당 350달러의 온열치료기 50대를 터키 참전용사협회와 이스탄불시에 기증했다.
이스탄불=정철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