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배추 한 포기 1만원’ 일파만파
근본적으론 날씨 탓이 컸다. 수확기를 앞둔 9월 예년보다 훨씬 많은 비가 쏟아지자 속대가 썩어 주저앉은 것이다. 평소 25만1000t이던 고랭지 배추 생산이 올해엔 15만1000t으로 40%나 줄었다.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깨져 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게 가격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정치·사회적 쇼크로 번진 데엔 다른 이유가 더해졌다.
“심봤다.” 5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원시장에서 배추를 산 시민이 기뻐하고 있다. 서울시는 배추값 폭등세를 잡기 위해 시중가의 70%로 공급하기로 한 배추 30만 포기 중 2700포기를 이날 신원시장에 처음으로 공급했다. 서울시는 1인당 3포기(1만4000원)만 구입하도록 제한했다. 이날 500여 명의 시민이 배추를 사기 위해 5시간 전부터 줄을 섰다. 오전 11시 배추를 팔기 시작해 1시간20분 만에 동났다. 서울시는 이날 중랑구 망우동 우림시장에도 배추5000포기를 공급했다. 6일에는 종로구 통인시장, 양천구 신영시장에서 배추를 판매한다. [김도훈 인턴기자] | |
파장이 커지자 정치권이 끼어들었다. 야당은 4대 강 사업 탓에 배추 재배면적이 줄었다며 정치공세를 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4대 강 유역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면적은 전체 채소재배 면적의 1.4%다.
이어 인터넷에선 근거 없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중국산 배추를 인분에 뒤덮인 ‘똥배추’라고 비방하는 글이 돌고 있다.
한편 농식품부는 민관 합동의 ‘유통구조개선 TF’를 만들고 연내 근본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글=최현철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너무 다른 ‘시장과 정부’ 대책
“지금 이거 달라고 난립니다.” 5일 전남 화순군 쌍봉리의 한 비닐하우스. 배추를 수확하고 난 자리에서 농민 장웅기(50)씨가 배추 겉잎을 줍고 있었다. 끝이 누런 겉잎은 예년 같으면 인건비도 나오지 않아 그냥 버렸다. 요새는 도매시장에서 4㎏ 한 봉지가 6000원에 팔린다. 그는 “8월 초에 대형마트 바이어의 조언을 듣고 배추를 30% 늘려 심었는데 덕분에 재미를 봤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배추 파동을 7월부터 감을 잡았다. 바이어들이 발로 산지를 뛰며 파종 물량을 예측하고 작황을 체크했기 때문이다. 배추 한 포기가 1만5000원에 달한 지난달 말에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은 정부는 시장보다 대처가 두 달이나 늦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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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주동환(41) 바이어는 7월 초 배추씨를 파는 종자 회사와 이 씨를 키워 파는 육묘장을 조사했다. 그 결과 배추 파동을 예감했다. 그는 8월 초부터 전남 화순·장성군, 전북 고창군 등 산지를 돌며 “배추 더 심으시라”고 독려했다.
롯데마트는 6월부터 ‘시세 예측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주요 채소 작물 바이어가 매주 농가·도매상 등에 전화를 걸어 1~3개월 뒤 시세 전망치를 묻고 이를 지수화하는 것이다. 파종 단계부터 끊임없이 출하 예측 물량을 점검하는 것이다. 롯데마트가 이번 파동에서 가장 빨리 ‘중국 배추’라는 대안을 들고 나온 것도 이 덕분이었다. 롯데마트 우영문 채소팀장은 “여름 들어 뚜렷하게 배추 물량이 달리더니 모니터링 결과도 심상치 않게 나왔다”며 “7월부터 중국 상하이 사무소를 통해 산지 물량을 체크했고, 추석 연휴 전에 수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5일 서울 시내 3대 대형마트(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의 배추 값은 포기당 6000원대로 가락시장 경매가(특 배추 포기당 9060원)보다 쌌다.
정부의 ‘두 달 늦은 대책’은 이런 현장 정보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농촌경제연구소 등 정부기관의 재배면적 조사 통계는 한 달씩 늦게 나오는 데다 그나마 수치도 정확하지 않아 유통업계에선 참고치로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완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올여름 이상고온의 영향만 잘 따졌어도 고랭지 배추 공급 부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 텐데 정부가 물량 파악을 게을리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잡한 유통 과정도 이번 파동을 키운 요인으로 지적된다. 수확된 배추가 ‘중간 유통상인-경매시장-중도매인-재래시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값이 많게는 10배 가까이로 뛴다.
유통과정을 줄이기 위해 산지 직거래 방식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홈플러스 이충모 채소팀장은 “전체 배추의 90%를 산지에서 직접 사들여 판다”며 “최초 계약 가격에다 시세 변동을 반영하더라도 가격이 훨씬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채소특작과 김도범 사무관은 “중간 유통상인 대신 산지 생산자 단체가 물량을 바로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미진 기자, 전남 화순·장성군=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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