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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영향력 있는 중국 10대 경제학자' 천즈우 예일대 교수
이 중국계 금융학자는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었다. 미디어의 주목받는 몇몇 경제학자들처럼, 멋진 비유를 들거나 말할 때 현란한 제스처를 쓰지도 않았다.그럼에도 천즈우(陳志武·48) 예일대 교수는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경제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작년 8월 그가 펴낸 《자본의 전략》(중국어판 제목은 '금융의 논리')은 중국 주요 인터넷서점에서 경제·경영서 1위에 올랐고, 국영방송인 CCTV부터 포털사이트인 시나닷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매체에서 2009년 최고의 도서에 꼽혔다.
그는 시카고옵션거래소 연구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받았고 2006년 '가장 영향력 있는 중국 10대 경제학자'(월스트리트와이어)에 꼽히기도 했다.
지난 6일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 건물 2층에 있는 연구실 문을 열자 화이트 보드에 빼곡히 적혀 있는 수학 공식들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산운용사의 파트너이기도 한 그는 금융자산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기자와 마주앉은 천 교수는 중국 경제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예측했다. 2009년 이후 2년간 지방정부와 국영기업으로 대출된 4조 위안의 상당수가 부실채권이 될 가능성이 크며, 이들 채무의 만기가 돌아오는 4~5년 후쯤 중국이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경제가 발전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로 정치 개혁을 꼽았다. 또 은행을 포함해 상당수의 국영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식 발전 모델은 없다
―최근 경제위기 동안 중국 경제는 서구와 달리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갔습니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국가 주도 발전모델을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라고 부르며 칭찬합니다.
"저는 정반대라고 봅니다. 지난 30년간 중국이 보여준 경제적 성공은 베이징 컨센서스가 주장하는 것들을 정확히 반대로 했기 때문에 이뤄진 겁니다. 다시 말해 중국 경제의 역동성은 금융·무역 분야의 개방, 제조·서비스 분야의 민영화에서 나온 겁니다."
최근 2년새 4조 위안 이상의 돈이
지방정부와 국영기업에 대출돼…
이중 상당수는 부실채권이 될 것
―판웨이(潘維) 베이징대 교수(국제정치학)는 "서양의 탐욕스러운 민영 금융업이 아니라 중국의 국유 금융업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모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분은 경제학자가 아니에요. 그분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경제를 공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따르다가는 세계는 또 한 번 2차 세계대전 직후 각국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고 말 겁니다. 역사를 보죠. 1930년대 세계 경제를 지켜봤던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대비를 목격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대공황의 혼란에 빠져 있었고, 소련은 10년 넘게 10%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가 소련의 국영기업 모델을 따랐습니다. 심지어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같은 서유럽 국가도 에너지,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국영기업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국영 은행, 기업들이 대부분 막대한 손실을 냈고, 각국 정부를 재정 위기로 몰고 갔습니다. 이런 위기는 19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세계화와 경쟁에 직면한 국영기업들이 강제로 민영화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불과 수십년 전에 있었던 이런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중국 경제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민영화나 제도 개혁 없이도 경제를 어느 정도 발전시키고, 소득 수준을 올릴 수 있습니다. 중국은 막대한 노동력과 낮은 임금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좋은 제도를 갖추게 된다면 사람들은 적게 일하면서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제 계산에 따르면 중국 사람들은 출근해서 매일 3시간을 질 나쁜 제도를 상쇄하는 데 소모하고 있습니다."
―중국 경제가 계속 발전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첫째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정치권력이 경제와 무관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 정부는 강력한 징세 권한을 가지고 있고, 어떤 지역에 어떤 산업을 육성할지 결정하는 자원 분배 권한이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올해 8조 위안의 세금을 거둬들였습니다. 제 계산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세금 등으로 거둬들인 부(富)의 규모는 지난 14년간 10배 성장했습니다. 같은 기간 도시 인구의 가처분 소득은 2.2배, 농민은 1.5~1.6배 정도 늘었습니다. 정치 개혁을 통해 정부가 너무 많은 부를 가계나 기업으로부터 가져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둘째, 민간 부문의 사유재산을 정부 기관으로부터 확실히 보호해야 합니다. 셋째, 정부가 보유한 국영기업과 국영기업의 보유 자산을 민영화해야 합니다."
―향후 중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제 예측으로는 4~5년 내에 중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겁니다. 경기 부양책으로 최근 2년 사이 4조 위안 이상의 돈이 풀렸습니다. 이중 절반 이상이 지방 정부로, 나머지의 대부분은 국영기업에 대출됐습니다. 이런 대출은 3~5년 뒤 만기가 돌아오는데, 제가 보기에 그중 상당수는 부실채권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충격을 분산시켜 소프트랜딩(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앞서 말씀 드린 세 가지 개혁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중국 정부는 정치적인 의지가 없습니다. 30년 전에는 모두가 가난했고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개혁도 가능했겠지만, 지금 중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 체제 속에서 이득을 얻는 이익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중국 정부가 가까운 미래에 자발적으로 나서서 근본적인 개혁을 할 가능성은 아주 낮아요."
은행 등 상당수 국영기업 민영화해야
위안화는 오히려 평가절상돼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화 가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안화가 평가절하돼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가절상돼 있다고 봅니다. 제 딸 이야기를 해 드리지요. 지난 여름 저는 17살인 제 딸에게 베이징 등 중국의 주요 도시와 이곳 코네티컷의 주요 생필품 물가를 비교하라는 과제를 내줬습니다. 그 결과 많은 생필품이 코네티컷보다 중국에서 비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폴로 셔츠를 베이징에서 사려면 400~500위안을 줘야 합니다. 지금 환율로 치면 70~80달러죠. 하지만 코네티컷에서는 메이시(백화점 체인)에서 25~35달러면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서비스 가격은 중국이 훨씬 낮지요. 하지만 서비스는 국경을 넘을 수 없습니다. 전자제품 등 교역이 가능한 물품은 중국이 오히려 비쌉니다. 저는 위안화의 가치가 1달러당 7.5~8위안(20일 현재 6.65위안)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중국 왕조들은 왜 막대한 금·은을 보유하고도 망했나
―작년 출간한 《자본의 전략》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입니까?
"저는 중국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밭에 채소를 기르거나 돼지를 치는 일처럼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반면 금융은 다른 사람의 노력과 부를 빼앗는 착취처럼 여겨졌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전통적인 인식은 과거 제 고향에서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도 중국, 일본, 한국 같은 아시아 사회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서로 다른 개인과 집단이, 서로 다른 시간에 걸쳐 가치와 위험을 상호 교환하는 일인 금융의 발전이 사회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경제위기 이후 금융산업에 대한 여론이 나쁩니다. 금융 개방을 서구의 음모로 보는 시각도 대중적 인기를 끌었지요.
"저는 그 사람들(음모론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부와 안녕을 증진시키는 수단이라 믿는다면, 금융시장의 발전을 지지해야 한다'고요. 자본주의 아래서 금융시장의 발전 없이 경제 발전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최소한 6세기에 걸쳐 구축된 주류 관점입니다.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사이드쇼(sideshow·서커스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벌이는 쇼로 부차적인 일)'에 불과합니다."
―요즘은 정부든 개인이든 어떻게 하면 빚을 줄일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교수님 책에서는 "과도한 빚이 위험한 만큼, 빚이 없는 것도 위험하고, 개인이든 국가든 미래의 돈을 빌려 지금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지금부터 400년 전 세계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부채가 쌓여 있던 나라들입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여기 속합니다. 두 번째는 국고에 금과 은이 풍부한 나라였습니다. 중국 명나라, 인도, 투르크 제국, 일본 등이 그들이죠. 첫 번째 그룹은 빚이 많았지만, 이를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 선진국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반면 일본을 제외한 두 번째 그룹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비교가 우리에게 분명한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규제 완화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셨는데, 금융 규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선 중국은 규제를 푸는 게 급선무입니다. 물론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이번 위기로 드러난 제도상의 허점은 고쳐가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게 과도한 방향으로 가지 않길 바랍니다."
그는 1시간 반가량의 인터뷰를 마치며 "저녁이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보충수업 때문에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대만에서 힘 있는(powerful) 기업인들을 만나는 출장이 잡혀 갑자기 강의를 앞당겨 하게 됐다며 연방 양해를 구한 뒤 기자를 큰길까지 배웅했다.
천즈우 교수는
작년에 쓴 '자본의 전략' 중국에서 최고 도서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중국계 경제학자로 1962년 중국 후난(湖南)성 차링(茶陵)현에서 태어났다. 중국 국방과기대에서 시스템공학을 전공했지만 1986년 예일대에 입학해 1990년 금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 교수로 재직 하고 있다. 베이징대·칭화대 방문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저서로는 《중국인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왜 부유하지 않은가》, 《비이성적 흥분》, 《중국모델론은 없다》(이상 국내 미번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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