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우리 내부에 있다”중앙일보 | 2010.10.24 21:13 + 크게보기 - 작게보기
10년 전 일이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진 ‘마늘 파동’ 말이다. 정부가 중국산 마늘 수입을 막은 게 2000년 5월 말이었다. 중국이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 중단으로 보복했다. 잽 한 방 던지고 핵 펀치를 얻어 맞은 꼴이다. 우리의 마늘 수입액은 고작 10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중국의 보복 규모는 5억 달러가 넘었다. 특히 전략 상품이었던 휴대전화 수출에 치명타였다. 업계는 ‘이러다간 중국 시장 다 빼앗긴다’며 아우성이었다.
다급해진 정부, 그러나 중국은 급할 게 없었다. ‘할 말 있으면 와서 하라’는 식이었다. 베이징에서 협상이 시작됐다. 협상 칼자루를 상대가 쥐었으니 상황이야 뻔했다. 그들은 하나를 들어주면 또 다른 조건을 내거는 식으로 시간을 끌었다. 여론과 시간에 몰린 한국 협상단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협상은 20여 일 만에 타결됐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먹고 남을 만큼의 마늘을 사주기로 했고, ‘2003년부터는 민간의 (마늘)수입을 자유화한다’는 이면 합의도 해줘야 했다. 온 나라를 뒤집어 놓았던 마늘 파동은 그렇게 처참하게 끝났다.
당리당략의 결과였다. 당시 16대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표심 얻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보다 자극적인 정책이 필요했다. 여당이었던 지금의 민주당이 선택한 게 바로 중국산 마늘이었다. 정부는 ‘일단 선거는 이기고 봐야 한다’는 당의 압박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표를 얻겠다는 당의 탐욕(小貪)이 국가적 손실(大失)을 자초한 셈이다.
1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시진핑 부주석의 평화 훼방꾼’ 발언 파동을 보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당리당략으로밖에는 해석되기 어렵다. ‘현명한 시진핑 부주석이 그럴 리 없다’고 점잖게 일축했으면 그만인 일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여권에서도 전략적 사고를 발견하기 힘들다. 그게 어찌 중국 외교부의 논평에 올라갈 사안이란 말인가. 지난 주말 만난 주한 중국 대사관 관계자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설래 설래 젓는다.
지난 10년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고, 올림픽을 치렀고,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세계 정치경제는 ‘G2구도’로 짜이고 있다. 훌쩍 커버린 중국의 경제력은 ‘힘의 외교’로 표출되고 있어 주변 국가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을 보는 우리 정치인들의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 ‘훼방꾼 발언 파동’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나라 중국을 바라보는 정치권 시각에 ‘전략’이 없다. 게다가 일부 정치인들은 중국을 국내용 당리당략 대상으로 끌어들이고,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적 앞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하는 꼴이다. 우리가 천안함 사건 때 북한 감싸기로 일관했던 중국을 움직일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마늘 협상에 참여했던 한 외교 관리가 당시 한 말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외교건, 전쟁이건 승패를 가르는 요인은 적의 역량이 아닌 내부 결집 여부에 있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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