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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배신한 한나라당

화이트보스 2010. 11. 14. 19:36

보수를 배신한 한나라당

입력 : 2010.11.14 15:28

일러스트 이철원

'70% 복지'로 중도 붙잡겠다고?

<이 기사는 주간조선 2130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 모임 민본21은 지난 10월 28일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MB(이명박 대통령)정권의 재집권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61.6%가 ‘다른 정당으로 바뀌는 것이 좋다’고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한나라당이 다시 한번 집권하는 것이 좋다’는 재집권 응답률은 38.4%에 그쳤다.

‘정권교체 희망’ 여론을 연령대별로 보자. 20대 60.7%, 30대 65.6%, 40대는 69.6%였다. 이를 지역적으로 보면, 수도권(60.9%)과 영남(59.2%)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 계층별로는 중산층(63.6%), 저소득층(58.8%), 빈곤층(56.3%) 순이었다. 국민은 지금 연령·지역·계층에 관계 없이 집권여당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결과는 ‘보수가 싫다’는 응답이 70.8%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보수가 싫다’는 70.8%에는 보수 지지에서 이탈한 층이 13.9%에 달했다. MB정부 출범 직후 여론조사에서 ‘보수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60%를 넘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와 관련, “높은 정권교체 지수, 한나라당 지지층 지수, 보수 호감 지수, 보수 지지층 지수, 공정 지수, 친서민 지수, 경제상황 지수, MB국정운영 지수 등 7대 핵심 정권재창출 관련 지수가 지나치게 낮아 한나라당 정권 재창출의 대위기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형준 교수는 또 “한나라당 핵심 지지계층의 25% 정도가 거품”이라고 진단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지난 10월 2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한나라당은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는 70% 복지 시대를 여는 개혁적 중도보수 정당으로 다시 서겠다”면서 “당의 강령을 중도 개혁의 가치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개혁적 중도보수’를 기치로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개혁적 중도보수’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정책으로 ‘70% 복지’를 내세웠다. 내년부터 2015년까지 소득 하위 70% 가구의 보육료 전액 지원에 들어가는 예산만 25조원이다. 이로써 우파 정권인 한나라당은 좌파인 민주당과 사실상 정책적 차이가 없어져 버렸다.

‘개혁적 중도보수’는 갑자기 나온 말이 아니다. 동영상을 되돌려 지난해 6월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모습을 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좌다 우다, 진보다 보수다 하는 이념적 구분을 지나치게 하는 것 아니냐. 사회적 통합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중도강화론’이다. 집권 초기부터 ‘중도실용론’을 내세운 이 대통령은 다시 ‘중도강화론’을 이때 들고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 세력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으면서도 자신이 보수임을 부정했다. 이런 흐름은 일관되게 나타났다. 주간조선은 중도강화론이 나온 직후인 작년 6월 보수이론가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그때 이동복 대표는 이렇게 주장했다.

“정치의 기본은 피아(彼我) 식별이다. 자신을 지지한 1150만명을 대통령 지지세력으로 확보한 뒤에 좌우의 중간지대에서 방황하고 있는 기회주의 세력을 포섭해야 한다. 만약 보수·우파까지 완전히 돌아서버리면 이 정부는 누구를 의지해 정국을 이끌어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동복 대표는 “만약 보수·우파까지 완전히 돌아서버리면…”이라고 우려했다. 그런데 민본21의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희망’ 여론이 영남과 40대 이상과 중산층에서 모두 60%를 넘어섰다. 이는 이동복 대표가 예상한 대로 보수·우파가 상당수 돌아섰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한나라당이 ‘개혁적 중도보수’를 내세운 것은 대선의 승패를 결정하는 정치적 좌표의 중간지대에 모여 있는 표를 잡겠다는 뜻이다. ‘개혁적 중도보수’와 ‘70% 복지’로 보수 지지에서 이탈한 국민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당장 ‘개혁적 중도보수’론(論)은 보수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야당 민주당으로부터도 비아냥거리가 됐다.

좌파정권 10년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아스팔트 위에서 투쟁한 ‘행동하는 우파’의 입장에서는 혀를 찰 노릇이다. 어떻게 세운 정권인데 3년도 안되어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하고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어찌되었든 MB정부가 지지세력과 국민에게 뭔가 큰 상처를 주고 잘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불과 3년도 안되어 ‘정권교체가 되어야 한다’가 62%가 된 상황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숙명여대 강미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정치는 기본적으로 최대의 감동서비스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말한다. 강 교수는 “감동서비스라는 측면에서 집권세력은 그동안 국민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는가를 스스로 자문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동안 MB정부는 인사 등에서 보통 사람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를 보여줬기 때문에 어떤 서민정책을 내세워도 믿지 않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정권 초기 인선부터 ‘그들만의 리그’

대한민국 국민은 최근 ‘슈스케’(케이블채널 Mnet·tvN이 방영한 슈퍼스타K2의 약칭)에 열광했고 신인가수 허각의 스타 탄생에 환호했다. 결손가정에서 자란 중학교 중퇴학력이 전부인 환풍기 수리공 허각. 잘생기지도 않았고 키도 매우 작다. 그는 오직 노래실력 하나로 134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우승했다. 정치가 주지 못하는 감동을 국민은 ‘슈스케’와 허각을 통해 만끽했던 것이다. 

여기서 ‘그들만의 리그’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MB정부는 정권 초 장관 인선에서 처음으로 ‘그들만의 리그’의 전조(前眺)를 선보였다. ‘교수 부부가 재산 30억원이면 양반 아니냐’(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오피스텔은 암이 아니라서 남편이 선물로 사준 것이다’(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 등. 이후 한동안 사람들은 “집사람에게 신체검사 받으란 소리를 못한다. 혹시 암이 걸린 게 아니면 오피스텔 사줘야 하니까”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던지곤 했다. 이후 MB정부의 인사는 ‘국민 감동 서비스’와는 전혀 다른 트랙을 달렸다. ‘강부자 인사’ ‘고소영 인사’ ‘회전문 인사’ 등의 비아냥이 끊이질 않았다. 국민을 실망시킨 정도로 보면 노무현 정권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8·8개각은 MB정부가 일반 국민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에서 놀고 있음을 가장 결정적으로 보여준 초대형 참사였다. 6·2지방선거에서 결정타를 맞아 휘청대던 MB정부가 국지전(戰)인 7·28 재보궐선거의 승리에 도취해 결행한 인사가 8·8개각이었다.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후보자들의 도덕성은 MB정부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였던 이재훈의 경우를 보자. 이씨는 부인의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쪽방촌 투기가 드러나자 “쪽방촌 투기는 노후대비용”이었다고 대답했다. 이씨의 신고 재산은 20억4000여만원. 실제 재산은 이보다 더 많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다. ‘이재훈 쪽방촌 사건’은 서민의 뇌리에 다음과 같은 한 줄로 각인되었다. ‘수십억 재산가가 쪽방촌에 노후대비로 투기를 했고, MB는 그런 사람을 장관에 앉히려 했다.’
 
대통령·총리·당대표… ‘병역면제’ 정권

김황식 국무총리와 이명박 대통령·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왼쪽부터)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딸 특채 사건도 MB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겨줬다. 유 장관 딸 특채 사건은 MB정부가 공정사회를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왔음이 드러났다. 물론 이후 친인척 특채가 외교부와 여권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이 드러났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MB의 신임을 받던 유 장관 딸 특채 사건은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파가 컸다. 

MB정부의 ‘그들만의 리그’에 화룡점정(畵龍點睛)한 것은 안상수 대표(7월 14일)와 김황식 국무총리(10월 1일)의 등장이었다. 안상수 대표는 고령, 김황식 총리는 고도(高度) 부동시(不同視)를 이유로 각각 군 면제를 받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두 사람이 병역을 기피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로써 MB정부는 이명박 대통령-김황식 국무총리-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원세훈 국정원장-윤증현 재정부 장관-정종환 국토부 장관-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모두 병역 면제를 받게 되었다.  

물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각료 중에 군 면제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국민 평균 군 면제비율 범위 안에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국무총리-집권당 대표-집권당 사무총장-국정원장이 모조리 군 면제를 받은 인물로 채워진 정권은 한번도 없었다. 적어도 청와대 핵심에서 집권당 대표와 국무총리에 모두 병역 면제자가 앉게 될 경우 국민 눈에 정부 여당이 어떻게 비쳐질지를 한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런 구도를 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홍준표 의원(한나라당)은 전당대회 직후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우리가 10년간 병역비리당으로 야당생활까지 했는데 이제는 병역기피당이 되지 않았느냐. 앞으로 변화와 쇄신을 하지 않고 이대로 가게 되면 한나라당은 정말로 어려운 당이 될 것이다. 10년 만에 잡은 정권을 5년 만에 내주게 될 것이다.” 

이재훈 전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왼쪽부터)

주요 신문들도 ‘병역면제 정부’라는 오명이 갖는 폭발성을 감지했다. 조선일보 양상훈 부국장은 지난 9월 28일자 칼럼 ‘고모와 조카가 대장된 다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김 후보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선 군대 갔다 온 사람 중엔 정말 이렇게 사람이 없느냐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 와중에 ‘병역면제 내각’이라고 그토록 싫은 소리를 듣고서도 또 총리를 연속 두 명째 군 미필자를 시켜야만 할 정도로 군필자 중에는 사람이 없느냐는 것이다. 생이빨과 생어깨, 생무릎을 뽑아가면서까지 병역을 기피하려는 풍조가 있는 나라에서 고위공직자 인사까지 만날 이런다면, 그런 나라가 정말 위험하고 결정적인 통일의 순간을 맞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민심은 내년 총선을 기다리고 있다”

‘병역기피 의혹’이 어떤 파괴력을 불러오는지를 MB정부의 핵심에서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양상훈 부국장은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이와 달리 문화일보 윤창중 논설위원은 이것의 폭발력을 사실적으로 적시해 눈길을 끌었다. 윤창중 위원은 지난 10월 6일자 칼럼의 첫문장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국가정의(正義)의 타락!-이명박 정권의 최고 지도부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신발 한 벌 바꿔 신듯이 가볍게 넘긴 인물들로 꽉꽉 채워진 현실에 대한 20·30대 젊은층과 의식 있는 중산층, 인생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국민의 분노는 국가정의의 타락이란 말도 모자란다. 대한민국 민심은 쉽게 폭발하지 않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 기다릴 대로 기다려본다. 분노가 활화산처럼 다이내믹하게 폭발할 시점을 앞으로 1년6개월 후 치러질 국회의원 총선이라고 한나라당이 예견하지 못한다면 정치적 상상력의 무능함 때문이다.…”

민본21 회원은 권영진·권택기·김선동·김성식·김성태·김세연·김영우·박민식·신성범·윤석용·정태근·주광덕·현기환·황영철 의원이다. 민본21 회원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김성식 의원(서울 관악갑)은 7·4전당대회에 출마했지만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지 못했다. 김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가 한나라당이 경계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지 위기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김성식 의원은 ‘정권교체 희망’이 62%가 넘은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국정운영 방식에서 MB가 타협과 토론 없이 밀어붙인다고 국민은 받아들이고 있다. 경제가 성장을 해도 이중구조로 되어 있어 서민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이런 양극화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강화에 책임있는 노력이 절실하다. 인사에 있어서도 도덕성 있는 인물을 능력 위주로 골고루 등용하여 잘 쓴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   

김선동 의원(서울 도봉을) 역시 비슷한 이유로 ‘정권교체 희망’ 62%의 배경을 설명한다. 김 의원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거론한 것은 지도층의 도덕성이다. 김 의원은 “처음 인사할 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면서 “이후 인사에서도 재산 의혹과 병역 관련 도덕성 문제가 제기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친이와 친박의 갈등으로 야기된 보수 분열상, 4대강 등 국책사업 추진과정에서 보여준 일방통행식 속도전 모습도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고 지적했다.
 
상처받은 국민감정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10월 29일 대구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한나라당이 변화와 개혁을 통해 국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정권재창출은 어렵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또 “보수일수록 도덕적으로 깨끗해지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자기 것을 기부하며 같이 잘사는 나라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안상수 대표의 발언에 보수 지지자들은 어이없어 한다. 안 대표는 자신이 ‘군복무를 기피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일까. 보수의 정체성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제일의 덕목이다.

한나라당의 위기를 방증하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11월 4일 발표된 SBS·한국갤럽 여론조사는 ‘한국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연줄과 인맥을 통해서’라고 대답한 사람이 79.1%였다. 이는 한국사회가 공정한 게임룰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이 80%에 육박한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유력 여론조사기관의 임원은 민본21 조사와 관련해 이렇게 분석했다.

“경제적 요인이 됐건 사회적 요인이 됐건 자신이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G20정상회의 개최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자신의 삶이 개선되었다고 느끼진 못한다. 더군다나 MB정부는 가진 자의 정부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중산층 이하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병역 문제도 그렇다. 우리들은 다 군대 가는데 너희들은 다 면제 받고 장관까지 하네, 하고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선거는 유권자의 집단심리가 투표로 분출되는 행위다.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에 따르면 집단심리는 충동, 습관,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 두 문장을 압축하면 유권자의 집단심리는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는 결론이 나온다. MB정부는 상처받은 국민 감정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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