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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몸살 기운에 시달리다 모처럼 깊은 산 속에서 잠을 잤습니다. 환절기 때문인지 별로 무리한 일을 하지 않아도 이따금 몸이 개운치 않고 흐려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웬만하면 약을 먹는 것보다 가벼운 산행으로 몸을 풀지요. 다행히 큰 병을 앓은 적이 없어 가능한 일이겠지만 내 몸의 자연치유력을 믿으며 살아 온 셈입니다.
어쨌든 몸이 아프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반성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몸이 가뿐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생겨야만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요. 그래서 ‘병은 곧 약’이라는 말도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먼저 내 몸을 돌아보게 되는 동시에 또한 아픈 만큼 아내 등 주변사람들을 더 간절히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요. 조금 간사한 듯하지만 그 정도야 용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제는 모처럼 지리산 형제봉에 올랐다가 그곳에서 자고 왔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산행에 나섰다가도 산이 날 받아주는 날이다 싶으면 그냥 자고 오는 날들이 언젠가부터 조금씩 생겨났지요. 밤의 지리산이 주는 선물은 추위와 허기와 외로움뿐이지만 어느새 조금씩 그것들을 달게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 ▲ 형제봉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악양의 황금들판에 핀 코스모스가 가을을 알리고 있고, 그 중심에 부부소나무가 평사리들판을 지키듯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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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에서 자기로 작심을 해놓고 추위와 허기와 외로움이라는 정규교과서를 외면하고 피해 가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포기가 아니라 내 몸 자체가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바로 그것이지요.
조금이라도 답답하거나 우울한 날이면 지리산 형제봉에 올라갑니다. 지난봄 하동군 화개면으로 이사 온 뒤에는 마을 뒷산인 셈이니 더 자주 찾게 되었지요. 걸어서 올라가면 한나절 길이지만 늘 그럴 수만은 없어 이따금 모터사이클을 타고 올라갑니다. 형제봉에는 패러글라이더 활공장이 있어 임도를 타고 오프로드 바이크로 오르면 20분이면 되기 때문이지요. 일단 활공장 주차장까지 올라간 뒤에 바이크를 세워두고는 걷게 되지요.
지리산 주능선·섬진강 보여 천하제일 전망
해발 1,200m 정도의 산이지만 전망 하나는 천하 제일경이라 할 만합니다. 바로 앞에는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보이고, 유장한 섬진강 물굽이와 강 건너 백운산이 코앞에 다가서고, 멀리 광양과 남해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대로 360도가 파노라마 사진처럼 펼쳐지니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지요.
활공장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걷다 보면 어느새 형제봉(성제봉) 정상이 나오고, 오뉴월이면 철쭉꽃이 만발하는 곳까지 천천히 걸어가 섬진강을 내려다보다 다시 돌아오는 데 두어 시간이면 족합니다. 그리 힘들지 않은 능선길인 데다, 그대로 고소성과 한산사 쪽으로 내려가 평사리 최참판댁으로 가는 데도 조금 가파른 내리막길이긴 하지만 세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특히 여름이면 슬그머니 야영을 하기도 하는데(국립공원지역이 아니니 불법 아님), 해발이 적당히 높다 보니 모기도 없는 여름밤이 가을처럼 시원한 데다 밤하늘에선 몽골초원에서 보는 듯한 별밭에서 쉬익 쉬이익 별똥별들이 떨어지니 참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전설 속의 청학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요.
- ▲ 평사리 무딤이들판의 허수아비들이 가을 들판을 지키고 있다.
- 그렇다면 전설 속의 지리산 청학동은 어디일까요. 고운 최치원 선생도 끝끝내 신선들이 산다는 청학동을 찾지 못했으니 지금까지도 논란이 분분합니다. 옛 문헌을 뒤져도 추정되는 곳만 여럿 있을 뿐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지요. 무릉도원처럼 하나의 이상향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지리산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지금의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의 청학동은 전설 속의 청학동과는 거리가 조금 더 있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굳이 청학동으로 추정되는 곳을 들라면 고운 최치원 선생의 글씨가 곳곳에 남아 있는 하동군 화개면의 불일폭포 근처, 혹은 선유동 골짜기나 내원골과 대성골이 있고, 하동군 악양면의 매계마을 등이 있지요.
쌍계사 십리 벚꽃길과 녹차로 유명한 화개면 골짜기와 드넓은 무딤이들이 펼쳐져 있는 악양면은 둘 다 옛부터 ‘화개동천’ ‘악양동천’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청학동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동천의 뜻이 ‘신선들이 사는 마을 또는 신선의 경지에 오른 인간들이 머무는 마을’이기 때문이지요.
풍수지리로 보나 현재의 생태적인 삶터로 보나 악양동천은 무릉도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화개골의 봄도 참으로 멋진 봄이지만 삼십 리쯤 먼저 오는 악양의 봄을 보지 않고는 섬진강과 지리산의 봄을 온전히 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없지요.
봄은 남해에서 섬진강을 타고 오르며 악양의 무딤이들을 휘돌아 화개와 구례, 남원으로 북상하면서 비로소 지리산 아랫도리에 화르르 불을 지피기 때문입니다. 먼저 매화꽃이 피면 황어떼가 오르고, 산수유꽃이 피고 매화나무 발 아래 양푼쟁이꽃, 개불알풀꽃, 별꽃이 낮게 낮게 피어나면 목련꽃, 개나리꽃, 벚꽃, 진달래꽃, 배꽃, 복사꽃도 뒤질세라 피어납니다.
마침내 자운영꽃이 지고 보리가 팰 즈음이면 수박냄새가 나는, 식물성 고기인 은어떼가 오르면서 비로소 섬진강과 지리산의 봄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악양은 북으로는 지리산을 등에 업고 그 지맥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으며, 악양천이 섬진강으로 유입되는 드넓은 곡창지대 평사리의 무딤이들이 있으니 그야말로 산고수장하고 지평한 승지의 고장이지요. 예로부터 중국의 악양과 지명이 같고 강산승세가 흡사하다 하여 흔히 ‘악양 소상팔경’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형제봉(성제봉)의 신선대나 고소산성, 한산사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물굽이와 무딤이들은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사시사철 밤낮 없이 풍광이 변해 그 감동 또한 새롭지요. 더욱이 섬진강 물안개라도 자욱이 오르면 마치 온몸이 공중부양하는 듯한 착각에서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 불일폭포 근처·선유동 골짜기·악양 매계마을 등으로 청학동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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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권에서 섬진강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억새꽃 필 무렵의 왕시루봉이나 구례의 오산 사성암, 그리고 바로 철쭉꽃 피는 형제봉입니다. 모두 토지들녘이나 구례들녘, 무딤이들과 같은 너른 평야와 큰산과 큰강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악양은 지금도 그 풍광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잘 보전돼 있어 지리산권의 그 어느 지역보다 농촌정서가 잘 남아 있으며, 지금도 마을 마을들을 잔잔한 감동의 물결에 떠밀리듯 둘러볼 만한 곳입니다.
- ▲ 상사화라 불리는 가을의 꽃무릇이 녹차밭과 감나무 사이에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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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관광개발의 광풍이 덜 미치기 때문에 오히려 슬로시티로 지정될 정도로 차분한 여행자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기도 하지요. 지리산학교 사랑방이 있는 평사리 마을의 돌담길과 그 돌담을 타고 오르는 사철 푸른 마삭줄(담쟁이와는 다르다)과 호박덩굴은 또 얼마나 정겨운지요.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은 집집마다 밭마다 대봉감과 배가 익어가고, 벚꽃과 비슷하지만 일주일 정도 먼저 꽃을 피웠다가 마침내 오월이면 붉디붉은 열매를 수없이 매다는 물앵두는 보기만 해도 입 속에 상큼한 신물이 돌게 합니다. 특히 술을 많이 마신 아침에는 물앵두를 따먹어야 비로소 숙취가 없어질 정도이지요.
악양의 꽃도 꽃이지만 늦가을과 겨울 무딤이들에 이따금씩 내려앉는 수백 마리의 갈가마귀 떼들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처음엔 까마귀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으로 문득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어느새 가슴속에 묘한 흥분의 회오리바람이 이는 것을 감출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내면 속에 숨겨진 비상의 꿈 때문이지요. 결국 무장해제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갈가마귀 떼가 느닷없이 머릿속을 휘저으며 날아오릅니다. 순간 아득해지는 정신을 차리고 보면 무딤이들에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슬그머니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이 부부소나무는 백년 세월을 지내오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아스라한 그리움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지요.
봄볕 좋은 오월에 그 소나무 그늘 아래 누워 30분 정도라도 낮잠을 청하고 가는 여행자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언제라도 술 한 잔 청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 소나무 아래에선 누구나 세상의 온갖 시시비비를 잊거나 분별지를 넘어설 수 있는 동시에 풍류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악양동천엔 외지인들 귀향 많아
악양동천의 원주민들도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지만, 근래에 이곳으로 찾아들어 둥지를 틀기 시작한 외지인들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모악산방으로 유명한 박남준 시인이 동매마을에 들어온 지 오래이며, 사진작가 이창수 선배 부부와 대학 친구이자 녹색대학원에 다니는 이상윤 가족, 차도구 목공예가인 청오산방의 김용회씨 가족과 귀농자들까지 이루 열거할 수 없는 이들이 몰려들어 지리산학교를 만드는 등, 악양동천이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제 지리산에서 생명평화의 베이스캠프는 실상사 주변만이 아닙니다. 실상사에서 불기 시작한 환경운동과 평화운동, 그리고 귀농운동과 대안학교 운동 등은 지리산을 넘어 섬진강변 평사리의 그 너른 무딤이들에 연착륙했습니다.
마치 토착 미생물들이 엄청나게 배양되듯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전염이자 자연농법 같은 무공해 운동인지요. 언제 어디서나 지리산은 지리산다워야 하고, 섬진강은 섬진강다워야 하고, 악양은 악양다워야 합니다.
두류산하 청학비지의 악양동천에 와서 잠시라도 신선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만 불쌍할 뿐입니다.
<한 편의 시>
잠든 나의 얼굴을 엿보다
음력 열엿새의 달이
지기도 전에
햇살 쏟아지는 섬진강의 아침
또 하나의 내가 일어나
곤하게 잠든 나의 얼굴을 엿본다
강 건너 오산의 사성암
어제 이맘때처럼 그대로이고
박새며 물까치 떼가 날아와
잠을 깨우는 것도 여전하지만
날개도 없이
노고단을 내려온
또 하나의 내가 있어
이 아침 햇살이 새롭다
달빛과 햇살이 만나는 지점에
다시 섬진강이 흐르고
차마 깨울 수 없는 나의 잠 속에
노고단의 구름이 따라와 머물고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삶은 때로 이렇게 순결하고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삶은 때로 이렇게 평화로운 것이다
잠든 나의 얼굴을 엿보는 이 아침
은행나무 환하게 유체이탈을 하고 있다
이원규(李元圭)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1984년 <월간문학>,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옛 애인의 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빨치산 편지>, 산문집 <지리산 편지>,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등 출간. 신동엽창작상, 평화인권문학상 수상. 순천대 문창과, 지리산학교, 실상사 작은학교 강사.
/ 글·사진 시인 이원규 jirisanpo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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