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고령화에 대한 준비

美도 베이비붐 세대 은퇴 시작… 노후 문제 '폭탄'으로

화이트보스 2011. 1. 15. 13:40

美도 베이비붐 세대 은퇴 시작… 노후 문제 '폭탄'으로

입력 : 2011.01.04 02:56 / 수정 : 2011.01.04 07:05

우리가 가야 할 '복지의 길'은… 3개국 비교

현재 살아 있는 한국인 절반 가까이가 100세에 근접하는 장수를 누린다는 ‘100세 쇼크’는 결국 노인복지 시스템이 얼마나 잘 갖춰졌느냐에 따라 빛도, 어둠도 될 수 있다. 많이 내고 많이 받는 스웨덴, 중간 정도 내고 중간 정도 혜택받는 일본, 계층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차이 나는 미국의 세 갈래 길 중에서 한국이 나가야 할 길은 어느 것일까.

[적게 내고 적게 받는 미국]
소득 7.6% 세금 내고 은퇴후 月 최대 2300달러 연금받아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모닝사이드미니스트리 요양원은 휴양지 호텔 같았다. 로비에는 따뜻한 색깔의 소파와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고, 은발 노인들이 말끔한 옷차림으로 소규모 극장·운동시설·식당을 이용했다.

이곳은 정정한 중산층 이상 노인들이 월평균 2500달러(300만원)를 내고 빨래·취사·청소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비영리 사립(私立)시설이다. 침실 1~2개에 거실·부엌·욕실이 딸린 개인 아파트 184개와 단독주택 39채가 있다.

31년간 공군에 복무하고 전역한 C A 스텁스(Stubbs·88)씨는 부인이 신장병으로 별세한 뒤 2008년 살던 집을 정리하고 이곳에 입주했다. 하루 6시간씩 인터넷으로 뉴스를 꼼꼼히 읽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짬짬이 요양원 로비에서 그랜드피아노를 치며 소일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모닝사이드미니스트리 요양원에서 크리스마스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 노인들. 호텔에 버금가는 시설이지만 사설(私設)이어서 중·상류층 노인들이나 입주할 수 있다. /이재호 기자 superjh@chosun.com

미국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사회보장제도(OASDI)는 소득의 7.65%를 세금으로 내고, 66세에 은퇴해서 매달 최대 2366달러를 연금으로 타는 시스템이다. 이와 별도로 주(州)별로, 직업별로 수많은 공적·사적 연금과 저소득층 보조 프로그램이 운용되고 있다. 유럽에 비해 세금을 적게 내는 대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여러 가지 연금 상품을 이용해 든든한 노후소득을 올릴 수 있다.

단점은 계층별 격차다. 노인 복지 전문가인 시몬 미첼-피터슨(Mitchelle-Peterson)씨는 "미국 노인 7명 중 1명이 빈곤층 혹은 차상위계층"이라며 "중산층 이상 노인들은 시설 좋은 사립 요양원에 가지만, 가난한 노인은 빠듯한 사회보장 급여로 간신히 살림을 꾸리다 주(州)정부가 운영하는 값싼 시설에 들어간다"고 했다.

문제는 수명 연장이다. 질 어터백(Utterback) 모닝사이드미니스트리 요양원장은 "예상보다 오래 사는 바람에 은퇴 전에 마련해둔 저축이 동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즘은 80대에 입주해 3년 정도 지내다 의료진과 간병인이 딸린 다음 단계 요양원으로 옮겨가는 사람이 많은데, 이 경우 비용이 월 3470~ 6600달러(416만~790만원)로 뛴다. 저축이 고갈되거나 연금이 모자라면 보다 저렴한 시설로 옮기지 않을 수 없다.

사회보장 급여에 의존하는 저소득층 노인들은 더 불안하다. 미국 사회보장제도는 '최대 수급자 2500만명'을 전제로 설계됐는데, 아직은 괜찮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면 수급자가 7000만명까지 늘어나 재정파탄 위험이 짙어지기 때문이다.

[많이 내고 많이 받는 스웨덴]
소득 80% 연금 받지만… 현역때 소득 절반 세금낸 대가

지난해 12월 10일 오전 7시, 튀레 유테리드(Jutelid·81)씨는 부인 울라(79)씨와 함께 빵과 야채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그는 38년간 사회보장국 공무원으로 일하다 15년 전 정년퇴직해 20년째 서민동네 임대주택(66㎡·22평)에 살고 있다.

유테리드씨 부부는 남편 연금(월 1만6000크로나·270만원)과 부인 연금(월 1만1000크로나·180만원)을 합쳐 한 달 살림을 꾸린다. 한국보다 비싼 물가를 생각하면 넉넉한 액수는 아니지만, 부부의 살림은 윤택했다.

취미인 베틀 짜기를 즐기고 있는 스웨덴의 유테리드씨.“ 젊었을 땐 세금 내느라 사치도 못 하고 살았다”는 그는 지금 많이 낸 만큼 많이 돌려받는 연금 덕에 넉넉한 노후를 즐기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비결은 잘 짜여진 사회보장제도다. 스웨덴에서는 65세 이상 절대다수(99.2%)가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국가연금'을 받는다. 소득이 낮은 하위 43.2%는 '기초생활 보장' 명목으로 자기가 낸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간다. 국민 10명 중 8명(83.2%)이 국가연금과 별도로 직업연금도 탄다. 두 연금을 합쳐서 노인 1인당 연평균 16만7100크로나(2790만원)를 받는다.

의료비 부담도 적다.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약값과 병원비가 각각 1800크로나(30만원), 900크로나(약 15만원)를 넘어갈 수 없도록 한 '의료비 상한제' 덕분이다.

이 모든 혜택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유테리드씨는 은퇴 전까지 소득의 절반을 꼬박꼬박 세금으로 내 평생 '돈 쓰는 재미'는 모르고 살았다. 그 대신 은퇴 이후 현역 때 월급의 80%를 연금으로 받고 있다. 유테리드씨는 "부자는 아니지만 매년 한 번씩 해외여행 다닐 정도는 된다"고 했다.

스웨덴의 한 한국 교민은 "복지가 잘 되어 있으니까 오히려 자녀가 부모를 덜 챙기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유테리드씨는 외동딸(42)과 매주 한 번 통화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자녀와 함께 사는 65세 이상 스웨덴 노인은 4% 미만이다(스웨덴 통계청). 노인 다섯 명 중 두 명(37%)이 자녀들과 교류 없이 산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자식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취미 생활과 노인 자치 활동이다. 유테리드씨가 사는 단지에는 당구장·체육관·카드놀이방 같은 공용(公用) 취미생활 공간과 저렴한 문화강좌가 많았다.

유테리드씨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세금이 무겁지만 '국가가 나를 책임져준다'는 생각에 한 번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고 했다.

[적당히 내고 적당히 받는 일본]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 연금… 고령화로 비용 크게 늘어

가지 겐지(鍛治謙治·65)씨는 오사카 도심에서 전철로 40분 떨어진 교외의 2층짜리 아담한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다. 그는 30년간 교육공무원으로 일하다 2004년 조기 퇴직했다. 매달 국민연금과 공제조합연금(한국의 공무원연금)을 합쳐 20만엔(280만원)씩 받고 있으며, 부인 지요에(千代惠·60)씨, 무역회사에 다니는 큰딸과 셋이 산다.

부인은 새벽 5시에 일어나 NHK 텔레비전 영어회화 강좌를 듣는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얼마 전부터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가지씨는 매일 오전엔 집 앞에 딸린 작은 정원을 손질하고, 점심식사 후에는 작업복 차림으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텃밭에 나간다. 가지씨는 "공무원 시절 농사짓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3~4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유일한 사치다.

자택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가지씨. 그는“지금은 비교적 넉넉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고령화가 계속 진행돼)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민봉기 기자 bongs85@chosun.com

일본 시스템의 특징은 '중간 정도의 부담, 중간 정도의 혜택'이다. 스웨덴에 비해 세금이 적은 대신 혜택도 적다. 반면 한국보다는 세금이 많은 대신 혜택도 많다. 가령 일본은 전업주부와 외국인을 포함해 일본에 사는 65세 이상 노인 전원에게 연금을 준다.

문제는 고령화다. 노인이 급증하면 사회적 비용도 따라서 늘어난다. 가령 부인 지요에씨의 어머니는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좌반신이 마비된 뒤 자택에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개호(介護·노인 간호)보험 덕분에 간병인 월급 16만5800엔(232만원) 중에서 10%만 본인이 부담한다.

개인 입장에선 안심이 되지만 국가 차원에서 보면 부담이 크다. 지요에씨 어머니처럼 개호보험 혜택을 보는 사람이 450만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2004년 국민의 반대를 뚫고 연금 혜택을 하향 조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가지씨가 "국민연금만 받았으면 빠듯했을 테지만 공제조합연금까지 나와 그런대로 살 만하니 나는 좋은데 자꾸 '연금 재정 고갈된다'는 기사가 나와 앞날이 불안하다"고 했다. 부인은 "지금은 괜찮지만 미래에 대비해서 전기요금·난방비도 최대한 아끼고, 밭에서 나는 채소로 식비를 아끼며 절약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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