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대사 영정
진묵대사와 모친의 영정을 모신 진묵전
봉서사에 모셔져 있으며 6.25전쟁이후 일년에 몇cm씩 커지는 신비로운 진묵대사 부도이다
불국정토를 구현하고 일체중생을 저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의 주문을 설하시는 진묵스님에 氣가 느껴지는 자리다.
언제 이땅에 오시어 일체중생에 불국토을 이루실 것인가?
진묵대사는 동방의 석가모니라고 일컬음을 받는 한국 불교사의 가장 큰 스님이시다.
크신 원력과 꾾임없는 대정진으로 숱한 일화을 우리에게 남겨주신 현세의 부처님이시다.
서방세계로 가신다는 큰스님에 원력이 이제 대한민국에 현생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세계만방 남조선 활계!!! 강증산선생을 통해 예지해주신 대한민국에 번영을 통하여 세계인류에 사랑과 봉사의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여 나가는 대한민국에 국력신장과 함께 굶주림과 폭정에 시달리는 북녁의 동포에게도 번영에 새시대를 간절하게 염원하여 보는 마음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새로운 10년의 시작입니다. 통일의 원년이 되게하소서. 부디 이겨레 하나되어 잘살게 하옵소서. 엎드려 비는 마음!
진묵대사가 심었다는 두그루에 팽나무 . 종각에 종소리가 석양빛에 울릴때 바로 망해암은 서방정토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경포구에 어선들과 지평선 수평선이 맞닫은 대장관에 나그네의 탄성이......
좌측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하늘과 땅과 바다가 맛닫는다는 바로 김만경평야이다. 2011년 1월 21일 촬영. 지평선 넘어 하얀눈 덛인 김만경평야의 장관에.....
往來三界之賓 왕래삼계지빈
出歿爲他作卽 출몰위다 작즉
왕래함에 삼계의 손님이요
출몰함에 타인의 귀감이 된다.
생사을 반복하여 왕래함에 있어 길손이 되고 또 다른 이를 위해 좋은 본보기가 되는 생애야 말로 보살의 생애이다.
종각옆 백일홍이 너무나도 운치가 있어 보였다. 붉은 백일홍 꽃 필때 푸른바다와 하늘이 어울려진 그날이 오면 다시 찾아오리.....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彰空兮要我以無垢 (창공햬요아이무구)
聊無愛而無憎兮 (요무애이무증혜)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진묵대사님이 건축을 하셨다는 樂西殿
往來三界之賓 왕래삼계지빈
出歿爲他作卽 출몰위다 작즉
왕래함에 삼계의 손님이요
출몰함에 타인의 귀감이 된다.
생사을 반복하여 왕래함에 있어 길손이 되고 또 다른 이를 위해 좋은 본보기가 되는 생애야 말로 보살의 생애이다.
평일인데도 마음이 울적하여 홀로 이곳 망해사를 찾았습니다. 법당에 엎드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마음에 평온을 구하였습니다. 전생에 와본듯한 이곳에서 평온한 마음에 안식을 얻었습니다.
진묵대사님의 효성을 엿볼 수 있는 어머니 49제 제문
열달 동안 태중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오
슬하에 삼년동안 길러주신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만세에 다시 만세를 더해도 자식의 마음은 오히려 부족한데
백면 미처 백년도 안되는 어머니의 수명은 어찌 그리 짧습니까?
외로이 표주박을 들고 걸식하는 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녀을 꽂지 못하고 시집 못간 누이동생도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49제단을 올리고 단을 내리니 스님들은 방을 찾아 돌아가는데
앞산 뒤산 첩첩한데 어머니의 혼은 어디로 돌아갈꼬?
오 오!오! 슬프도다
진묵 대사 어머니 묘소는 무자손 천년 향화지기의 명당이다.
진묵의 나이 어언 72세가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목욕을 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차 한 잔 마시고 나서 시자를 거느리고 산책을 나섰다. 이윽고 개울물을 건너는 다리에 이른 진묵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맑은 시냇물에 비추이는 자신의 모습을 굽어보다가 시자에게 말했다.
“저기 물속의 모습이 보이느냐? 바로 석가불이니라.”
“아닌데요? 큰스님 모습인데요?”
“너는 나의 거짓 모습만 볼 줄 알고 석가의 참 모습은 모르는구나.”
“어떤 것이 석가의 참 모습인지요?”
진묵은 손으로 물속의 그림자를 가리면서 말했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낙엽은 뿌리로 돌아가느니라.”
방장으로 돌아온 진묵은 대중을 불렀다.
“나 오늘은 갈란다. 모두들 부지런히 닦아라. 혹 물어 볼 말이 있거든 죄다 물어 보아라.”
첫 상좌인 청안이 여쭈었다.
“스님 백 세 후에는 어느 스님 법맥을 이으리까?”
“법맥은 다 무어냐? 공부나 잘하면 되는 거지.”
“그래도 종승의 계통이 없으면 남들이 외도의 무리라고 비웃을 것입니다.”
진묵은 한참 말이 없다가 마지못한 듯 입을 뗀다.
“너희가 굳이 조르니 내 이른다. 서산정로가 비록 명리승이긴 하나 우리나라 불법의 정통을 이은 스님이니 이으려면 그리로나 붙여 잇도록 하라.”
뒷줄에 앉은 한 제가가 여쭈었다.
“스님, 열반 송을 들려주십시오.”
진묵은 얼굴에 노기마저 띄우고 꾸짖듯이 말했다.
“입으로 열반 송을 지껄이는 자는 말쟁이에 불과하고 붓끝으로 긋는 자는 글쟁이기 아니겠느냐? 내 일찍이 온갖 얽매임을 멀리 하였는데, 너는 여태껏 내 뜻조차도 짐작하지 못하였느냐?”
진묵은 가부좌 한 채 고요히 입적하였다. 세수 72세이며 법랍은 52년으로 癸酉년 10월 28일이었다.
진묵의 열반에 대한 또 다른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진묵은 열반에 들면서 제자에게 일렀다.
“내가 서천 서역국으로 대장경을 가지러 가니, 누가 와서 물어도 내 몸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진묵은 그로부터 누워서 자는 사람처럼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어느 날 봉곡은 하도 진묵의 소식이 없어서 봉서사로 진묵을 찾아왔다.
“스님 어디 가셨는가?”
“출타하셨습니다.”
“출타를 하면 반드시 내 집을 들러서 가곤 했었는데, 그럴 리가 없다.”
봉곡은 억지로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진묵은 반듯이 누운 채 잠자는 것처럼 꼼짝 않고 있었다.
“누우신지 얼마나 되었는가?”
“백 일 째입니다.”
“이 사람들아. 스님은 죽으면 화장하는 것이니, 그만 불살라 버리게.”
그리하여 진묵의 육신을 화장하여버렸다. 그런데 진묵이 팔만대장경을 다 외워 돌아와 보니 자기의 육신이 없어져버렸다. 제자들에게 경전만 읽어 외우게 하고 도로 돌아가면서 봉곡 가족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이 내 육신에 이렇게 피해를 입혔으니, 자네 자손들은 대대로 내려가면서 물 때문에 고생할 것일세.”
과연 그 뒤로 산의 물줄기가 바뀌어 논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했다고 한다.
진묵이 진산 태고사에서 지었다고 하는 시가 남아있는데, 진묵의 도량을 짐작케 하고 있다.
천금지석산위침(天衾地席山爲枕)
월촉운병해작준(月燭雲屛海作樽)
대취거연잉기무(大醉居然仍起舞)
각혐장수괘곤륜(却嫌長袖掛崑崙)
하늘을 이불삼고 땅으로 자리하고 산으로 베개 하고
달빛으로 촛불 켜고 구름으로 병풍치고 바다를 술통삼아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신나게 춤을 추니
긴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저어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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