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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매조도(梅鳥圖), 딸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 어려있네

화이트보스 2011. 2. 27. 08:35

정약용의 매조도(梅鳥圖), 딸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 어려있네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정민·김동준 외 지음|태학사|512쪽|3만2000원


방 한쪽 구석엔 주안상이 차려져 있지만 선비들의 시선은 온통 화분에 심겨진 매화에 쏠려 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달밤, 선비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흐뭇하다. 18세기의 화가 이유신이 그린 '가헌관매도(可軒觀梅圖)'다. 옛 선비들은 소중히 가꾼 분매(盆梅)가 꽃을 피우면 이렇게 모여서 감상하고 시를 지었다. 그림 속 선비들도 감상이 끝나면 술잔을 기울일 것이다.

학문적 통섭(統攝)이 강조되는 시대, 다양한 전공의 한국학 연구자 27명이 '그림'을 공통분모로 만나 토론하고 연구해 독특한 형식의 책을 만들었다. 이들이 다룬 그림은 정조의 화성 행차 기록을 담은 의궤, 한강 풍경을 그린 산수화, 박제가의 초상화, 퇴계의 성학십도 등 고려 불화에서 19세기 말 사진까지 다양하다. 필자의 전공도 역사학, 한문학, 군사학, 연극사, 복식사 등에 이른다. 그 덕에 이 책에서는 단순한 미술사(美術史)가 아니라 미술을 통해 동양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서술을 만날 수 있다.

가령 정민 교수(한양대)는 정약용이 1813년 여름에 불과 10여일 차이로 그린 2점의 '매조도(梅鳥圖)'를 파고든다. 한 점은 정약용이 부인의 치마폭을 잘라 그린 것으로 새 두 마리가 함께 매화 가지에 앉았다. 다른 한 점엔 새가 한 마리뿐이다. 정 교수는 그림에 실린 시와 각종 자료를 분석해 앞의 것은 딸을 시집보낸 마음을 담은 것이고, 두 번째 것은 딸 결혼 직후 강진의 소실에게서 태어난 딸의 운명을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을 담았다고 분석한다. 진준현 서울대박물관 학예관은 17세기 화가 이신흠의 '세년계회도(世年契會圖)'에 등장한 장소를 찾기 위해 고지도를 뒤지고 숙정문 일대를 답사했다. 저자들은 1997년부터 매주 금요일 '문헌과 해석'이란 공부모임을 통해 함께 공부해왔다. 그 모임이 '가헌관매도'나 '세년계회도'의 한 장면처럼 그려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