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실질심사 법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심사 대상자는 파출소에서 불을 지르며 난동을 벌여 경찰이 영장을 신청한 A씨였다. 노숙을 오래 한 듯한 모습이었다. 판사가 왜 그랬느냐고 묻자 그는 "추운 날씨에 생계도 어려워 감옥에 가려고 그랬다"고 했다. 판사가 "유치장 생활을 해 보니 어떠냐"고 물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그는 "밥 세 끼 챙겨주고 조금 춥기는 해도 견딜 만했지만, 이런 생활을 앞으로 계속 해야 한다니 캄캄했다"고 했다. 그는 노숙자 쉼터 같은 곳에 가서 새 삶을 살아보겠다고도 했다. 막상 감방 생활을 해보니 생각이 달라졌던 것이다. 판사가 경찰관에게 "쉼터를 소개해줄 수 있겠느냐"고 하자 경찰관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래 보겠다"고 했다. 판사가 영장을 기각해 석방하자 A씨는 판사에게 여러 번 고개를 숙이고 법정을 나갔다.
지난해 말엔 상습절도범 B씨가 같은 법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전과(前科)가 10개 이상에 감방에 산 기간만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대부분 먹을거리나 생활용품 같은 소액의 물품을 훔쳐서 감방에 간 경우였다. 판사는 "그동안 훔친 액수를 다 합쳐도 100만원이 안 될 것 같은데 맞느냐"고 물었다. B씨는 "그 정도밖에 안 될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판사는 "수천만원, 수억원 훔친 사람도 있는데 억울하겠다"고 말하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B씨는 석방돼도 또 비슷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컸다. 판사는 "사정은 딱하지만 법은 법이니까 처벌받아야 한다"며 "앞으로 수사와 재판을 성실히 받으라"고 말하며 영장을 발부했다. 그래도 B씨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예, 고맙습니다"고 말하며 법정을 나갔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어렵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영장재판을 받는 일이 부쩍 늘었다. 그때마다 영장전담 판사들은 인간적인 고뇌를 한다. 수사기록만 보면 영장을 발부해야 할 사람인데 막상 법정에서 얼굴을 보고 그의 말을 들어보면 기록에 없는 딱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석방하면 새 삶을 살 것 같은 사람도 있고, 석방해줘 봤자 또 범죄를 저질러 영장재판을 받으러 올 가능성이 큰 사람도 있다.
요즘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3명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영장은 되도록 기각하거나 어쩔 수 없이 영장을 발부하는 경우에도 가능한 한 피의자의 사정을 들어보고 결정 이유를 자상하게 설명해주려고 애쓴다. 판사들은 피의자가 법정을 나갈 때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주자는 뜻에서 자신들의 노력을 '출정식(出廷式)'이라고 부르며 계속하고 있다.
피의자들은 이런 판사들에게서 '따뜻한 법원'을 느꼈을 것이다. 그동안 위압적인 태도로 윽박지르는 판사들을 많이 경험했던 사람들은 이런 판사들을 보고 법원을 달리 봤을 수도 있다. 이런 판사들이 많을수록 법원은 더 믿음이 가고 그런 법원이야말로 사법부가 표방하는 '국민을 섬기는 법원'의 참모습일 것이다.
영장 판사들의 '출정식'
입력 : 2011.02.2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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