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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산화제의 진실게임

화이트보스 2011. 3. 6. 19:24

항산화제의 진실게임

[중앙일보] 입력 2011.03.06 15:58 / 수정 2011.03.06 17:29

노화부터 심장병, 암까지 예방한다고 알려진 보조제가
효과 없거나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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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항산화제(antioxidants)를 충분히 복용하지 않아 죄책감에 시달려 왔다면 이제 그 대가를 치를 날이 다가오지 않았을까? 지난 수년 동안 언론과 식품 업체, 영양사, 심지어 누구보다 더 잘 알아야 하는 과학자도 항산화제를 자주 복용하라고 귀가 따갑도록 되뇌었다. 농산물 제조업체는 특히 ‘항산화제!’를 강조한다. 주로 과일과 채소에 많이 들어 있으며 유리기(遊離基: free radical)를 흡수해 없애버리는 화합물이다. 유리기란 활성산소로도 불리며 세포의 대사 과정에서 생성되는 산소화합물로 노화만이 아니라 암, 심장병 등 여러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일지 모른다. 우선 항산화제를 보조제로 복용해도 건강에 이롭지 않으며,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그 흔하고 무해한 듯한 베타 카로틴(수용성 비타민 A)이나 비타민 C와 D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위험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누구나 “전반적인 사망률을 높이는 듯하다”는 말로 끝나는 연구 결과를 보면 눈이 번쩍 떠지게 마련이다). 이제 항산화제 열풍의 더욱 근본적인 가설을 반박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항산화제가 무력하게 만드는 유리기 중 다수는 우리 몸에서 소중한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독소에 맞서고(백혈구는 박테리아 감염을 막으려고 유리기를 대량으로 만들어낸다) 암세포와 싸운다. 이런 면역체계의 ‘전사’를 무력하게 만드는 물질로 우리 몸을 채운다면 그다지 좋은 생각이 분명 아니다. 영국의 화학자 데이비드 브래들리는 자신의 블로그 ‘Reactive Reports’에서 이렇게 썼다. “산화제가 병원균과 암세포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면역체제의 최전선을 책임지는데 사람들은 왜 항산화제를 추가로 섭취하려 할까? 그 점이 늘 의아했다. 항산화 보조제의 복용은 이미 암이나 감염 등의 문제가 있는 사람의 건강에 반드시 좋지는 않다고만 말해 두겠다.”

항산화제 열풍이 근거가 빈약하다는 첫 조짐은 항산화 보조제의 건강 효과를 평가한 연구 수백 건에서 드러났다. 결과가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의학연구 결과를 평가하는 비영리 국제단체인 코크레인 협의회(Cochrane Collaboration)는 2008년 67건(전체 대상자 약 40만 명)의 연구 결과를 검토했다. 건강한 사람 또는 심혈관 질병, 신경계 질병, 류머티스성 질환, 신장계 질병, 내분비성 질환 등을 가진 환자에게서 항산화 보조제가 사망률을 낮춰주는지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결론은 이랬다. “항산화 보조제가 1차 또는 2차 예방제 역할을 수행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비타민 A, 베타 카로틴, 비타민 E는 오히려 사망률을 높이는 듯하다.” 루게릭병, 알츠하이머병, 가벼운 인지 손상, 폐암 등의 질병과 항산화 보조제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코크레인 협의회의 결론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각 분석 결과는 전반적인 사망률 증가를 경고했다.

보조제 형태의 항산화제가 왜 그처럼 위험할 수 있을까? 확실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항산화 보조제는 다량 복용할 경우 원래 막아야 할 유해한 DNA 반응과 세포손상 반응을 오히려 자극하는 산화촉진제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항산화제가 감염과 암세포를 격퇴하는 면역체계 세포의 활동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이 더 유력하다. 실험실 동물을 대상으로 해서 얻은 그런 결과가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지 모른다.

보조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유리기는 정상적인 신진대사에서 생성된다(물론 붉은 살코기처럼 지방과 철분이 많은 식품은 유리기를 더 많이 생성한다). 유리기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그리고 DNA를 손상한다. 혈관 내부의 벽을 보호하는 세포도 손상한다. 그래서 종양세포가 혈류로 침투해 전이하게 된다. 터프츠 대학 항산화제 연구소의 제프리 블룸버그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손상이 노화만이 아니라 심장병과 암 같은 여러 만성 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거나 자극한다고 믿어진다. 그래서 그런 손상을 막으면 만성질병의 예방이 가능하다는 가설이 세워졌다.”

식품 가공업체로서는 더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특히 특정 유리기의 제압에 몇몇 항산화제가 다른 항산화제보다 효과가 크다는 점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까지 발표됐다. 예를 들어 베타 카로틴은 과산화물제거효소(SOD)의 제거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지만 비타민 E는 SOD에 별로 힘을 못쓴다. 다른 한편으로 비타민 E는 나쁜 콜레스테롤 LDL의 산화를 막아준다.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산화 LDL은 동맥 혈관 내부의 벽에 들러붙는 플라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항산화제 종류마다 특기가 다르다는 사실은 각각에 효과가 있는 보조제를 판매할 길을 열어주었다. 원래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알려진 식품에 여러 항산화제를 섞어 강화한 제품도 새롭게 판매된다(예를 들면 섬유질과 항산화제를 강화한 초컬릿 땅콩버터 등이다).

항산화 보조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런 사실이 놀랍긴 하지만 최근의 새로운 연구 결과는 항산화 보조제의 혜택에 더욱 직접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 국립과학원 회보 다음호에 실릴 한 논문에 따르면 항산화제는 생식력을 저하할지 모른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의 발생생물학자 나바 데켈 박사 팀은 암컷 생쥐의 난소에 항산화제를 투여한 결과 배란이 억제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난자가 거의 생성되지 않았다. 항산화제가 무력화하는 유리기가 배란에는 필요할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추가 실험에서 그런 사실이 확인됐다. 배란을 유도하는 황체형성호르몬 덕분에 암 전이를 촉진하는 유리기인 활성산소종(ROS)이 만들어졌다. 황체형성호르몬이 중간매체, 즉 활성산소종을 통해 배란을 유도한다는 의미다. 항산화제 때문에 활성산소종이 제거되면 배란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실험실 쥐를 대상으로 한 2010년 연구에 따르면 잘 알려진 항산화제 케르세틴(녹차와 홍차, 양파에 많이 들어 있다)과 페룰산(사과, 국화과 식물 아티초크, 밀 등에 함유돼 있다)은 신장암을 일으키고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미 화학회(ACS)의 농식품화학저널에 실린 그 논문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항산화제의 종양형성 억제 효과를 재평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험실 쥐를 대상으로 한 새 연구에 따르면 혈류의 항산화제 수치를 높여주는 자연 단백질이 아테롬성 동맥경화를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 동맥경화·혈전·혈관 생물학지 1월호에 실린 그 논문은 항산화 보조제의 복용이 심장 건강을 증진하지 않는 이유의 단서를 제공한다. Nrf2 단백질을 복용하면 혈류의 항산화제 수치가 높아진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혈중 콜레스테롤과 간의 콜레스테롤 수치도 동시에 높아진다. 아테롬성 동맥경화에 걸리기 쉽다는 뜻이다.

시장조사기관 민텔에 따르면 2009년 상표에 항산화 효과를 내세운 식품 108가지가 미국에서 새로 시판됐다. 새로 나온 항산화 식품이 2005년엔 16가지였고, 2007년엔 82가지였다. 대단한 성장이다. 그런데도 TV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은 그런 내용을 다룰 생각도 않는다. 결국 위험 부담은 구매자 몫일까?

번역·이원기

 


SHARON BEGLEY 기자   중앙일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