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박정희 전대통령의 각별한 KDI 사랑

화이트보스 2011. 3. 10. 16:28

박정희 전대통령의 각별한 KDI 사랑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개발 과정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는 일화가 소개됐다.

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10일 KDI 개원 40주년 기념 강연에서 KDI 설립 과정과 이후 역할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김 전 비서실장에 따르면 1960년대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이었던 이희일 전 동력자원부 장관이 당시 김학렬 경제기획원 차관의 동의를 구해 KDI 설립안을 작성했다.

1962년 첫 발표된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경제연구소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부총리가 된 김 전 차관의 건의를 받은 뒤 설립기금으로 사재 100만원을 출연하면서 KDI 설립을 지시했다. 단, 필요자금은 정부가 지원하되 경제기획원 산하가 아니라 인사, 자금운용, 사업계획을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독립적 재단법인으로 하도록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홍릉 KDI 본관 건물 공사 기간 두 번이나 현장을 시찰할 만큼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 김 전 비서실장의 전언이다.

박 전 대통령은 또 해외에서 11명의 선임 연구원들이 귀국하자 KDI를 몇 차례 방문했다. 당시만 해도 박사가 귀한 시절이라 1971년초 37세의 김만제 KDI 초대원장이 수행원 한 사람만 데리고 뉴욕으로 떠나 힘들게 모집한 인재들이었다.

KDI 준공식 때는 연구원들을 신라호텔 영빈관에 초대해 축하연을 열었고, 밴드까지 불러 젊은 연구원들이 여흥을 즐기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그간 정책결정에 있어 과학적인 분석 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토론에만 의존한 측면이 있어 허전했는데 KDI가 생겨 마음이 든든하다"고 소회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만제 초대 원장은 경제기획원 부총리, 재무부 장관 후보로 두 차례나 추천됐지만, 박 전 대통령은 "KDI는 경제기획원 못지 않게 중요한 기관이고, 김 원장이 잘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추천대상에서 빼라"고 지시할 정도로 신뢰를 보냈다.

결국 김 초대 원장은 박 전 대통령 서거 때까지 KDI를 지켰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3년 재무부 장관이 됐다.

1972년부터 1982년까지 KDI 부원장을 지낸 김광석 전 경희대 교수는 신군부에 의한 정부출연연구소 통폐합 위기를 거론하면서 "공룡처럼 대형화한 연구소에서는 차별화된 연구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동분서주했고 결국 통폐합을 막아냈다. 덕분에 KDI가 5공화국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남상우 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은 1993년 6월 금융실명제 추진방안을 비밀리에 마련하기 위해 부총리 옆집은 물론 지인 사무실에 '국제투자연구원'이라는 거짓 간판을 내걸고 일하는가 하면, 과천 한 아파트에 숨어 작업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설광언 KDI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1997년 외환위기 극복 방안을 작성하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야근과 스트레스로 가만히 앉아있어도 코피가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를 정부정책의 기본틀로 확정하라고 지시했을 때 몇달간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다 잊을 정도로 보람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