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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로 식혀라"… 쏟아지는 방사선 속 800명 사투

화이트보스 2011. 3. 16. 09:09

원자로 식혀라"… 쏟아지는 방사선 속 800명 사투

입력 : 2011.03.16 03:09

[2호기] 연료봉이 녹아 격납용기 뚫고 나오면 대재앙…
1·3호기 방사성 물질은 원자로에 갇혀 있지만 2호기는 그대로 노출돼

일본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지난 11일 동북지방 대지진 이후 15일 아침까지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 6기 중 4기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 중 15일 2호기 폭발은 원자로 최후의 보루라고 할 격납용기에 손상을 입혔을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 정부는 밝혔다. 대규모 방사성물질 유출로 이어질 가능성도 더 커졌다. 사고 직후 당장 인근 지역의 방사선량이 원자력 종사자 연간 허용량에 육박했다.

격납용기는 핵연료봉 다발이 들어 있는 원자로를 주변과 차단하는 밀폐 장치로, 강력한 탄소강으로 만든다. 원자로에서는 위험한 방사성물질이 무수히 나온다. 격납용기가 손상을 입으면 방사성물질이 아무런 제어를 받지 않고 뿜어져 나올 수 있다. 결국 2호기 폭발 사고로 원전 사고를 막는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 것이다. 포스텍 김무환 교수(기계공학과)는 "1·3호기는 방사성물질이 원자로에 갇혀 있었지만, 2호기에선 격납용기가 손상돼 방사성물질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래픽= 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박상훈 기자 ps@chosun.com

게다가 이번 폭발로 손상 가능성이 있는 곳이 아래쪽 도넛 모양의 압력억제실이다. 격납용기 안쪽 수증기를 물로 흡수해 압력을 낮추는 설비다. 원자로 자체 압력 조절 능력이 손상됐으니, 이제 압력을 낮추려면 격납용기의 밸브를 일부러 여는 방법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격납용기 안의 방사성물질과, 화재를 유발하는 수소가 더 자주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도쿄전력과 협력회사 직원 800여명은 15일 밤 원자로에 계속 바닷물을 주입하고 있다.

2호기의 폭발 원인은 아직 불확실하다. 우선은 앞서 1·3호기와 같은 '수소폭발'로 생각할 수 있다. 전날 2호기 핵연료봉이 공기 중에 완전히 노출되는 사고가 이어졌다. 이때 고온의 피복물질(지르코늄)이 공기 중의 수분과 만나 대량의 수소를 발생시켰을 수 있다. 이은철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과)는 "2호기 폭발시 불꽃이 보인 점으로 보아 연료봉에서 나온 수소가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爐心)용해' 현상을 2호기 폭발의 원인으로 꼽는 전문가도 있다. 김무환 교수는 "연료봉이 녹아 원자로를 뚫고 흘러내려 격납용기 내부 수분의 부피를 순식간에 1000배로 늘리는 '증기폭발'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며 "폭발 압력이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격납용기에 충격을 준다"고 말했다.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는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에서 15일 자위대 소속 군인들이 원전 폭발현장 수습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보호장구를 갖추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연료봉이 녹아서 고온의 액체상태로 변한 우라늄이 탄소강으로 된 격납용기까지 뚫고 나오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밖에는 콘크리트 격납건물뿐이다. 고온의 우라늄과 접하는 순간 콘크리트는 파괴돼 버린다. 엄청난 양의 방사성물질이 대기로 뿜어져 나가는 것이다.

[4호기] 폐연료봉 불타면 '죽음의 재' 퍼져…
격납용기도 따로 없어… "노심용해보다 더 심각"

후쿠시마 제1원전 4~6호기는 1~3호기와 달리 지진 전에 점검을 위해 연료봉을 모두 빼낸 상태였다. 원자로 자체의 안전 문제는 없었다. 이런 4호기에서도 폭발이 발생했다. 다 쓴 폐연료봉 때문이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2원전의 원자로 10기에서 나온 폐연료봉을 원자로 건물 안 수조(水槽)에 보관해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화약고였던 셈이다.

황일순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과)는 "폐연료봉 중 원자로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것이 수면 밖으로 노출되면 원자로 안의 연료봉처럼 수소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이날 폐연료봉에서 나온 수소가 1·3호기처럼 수소폭발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도쿄전력은 지진으로 원전에 문제가 생기자 원자로 냉각에만 신경을 쓰고 폐연료봉이 담긴 수조 상태는 어떤지 챙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전력 대변인은 "후쿠시마 원전의 폐연료봉들이 지진 발생 직후 냉각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고 밝혔다. 결국 원자로 옆에 폐연료봉이라는 시한폭탄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 한 원자력 전문가는 "폐연료봉은 2개월이 지나도 원래 열량의 0.1%는 갖고 있다"며 "이를 방치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폐연료봉은 자칫 방사능을 지닌 '죽음의 재'가 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폐연료봉 수조는 원자로처럼 격납용기로 둘러싸여 있지 않다. 따라서 화재가 나면 폐연료봉에 들어 있는 방사성물질이 연기와 함께 빠져나가 멀리 확산될 수 있다. 미국 원자력 엔지니어인 데이비드 로크봄은 "폐연료봉이 지금 후쿠시마 원전처럼 대기에 노출되면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원자로의 노심용해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라고 뉴욕타임스(NYT)지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