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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아!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렴”

화이트보스 2011. 3. 17. 10:40

황순아!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렴”
입력: 2011.03.15 00:00

강진발 ‘워낭소리’…31살 최고령 암소 장례식
군동면 신옥진씨 “친자식 다름없어 빈자리 허전”
지난 2009년 강진 군동면 명암마을 신옥진씨와 황순이가 밭을 일구고 있는 모습. /강진군 제공
“순하디 순한 우리 막둥이 황순아~ 너 없이 어찌 산다냐 함께 한 세월이 31년인디… 자식을 보내는 이 애비의 마음을 아냐, 모르냐…”
농부와 30여년을 동고동락한 황소의 장례식 사연이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4일 전남 강진군에 따르면 강진 군동면 명암마을에 사는 신옥진(69)씨는 지난 8일 이웃들과 함께 31년생 암소 ‘황순이’의 장례를 치렀다.
농사준비로 분주해야 할 주민들도 장례식 전날 황순이가 숨을 거뒀다는 소식에 일손을 놓고 찾아와 늙은 누렁이의 넋을 위로했다.
신씨와 황순이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87년.
강진우시장에서 43만원에 암소를 구입하면서부터다.
당시 6년생이었던 황순이는 제법 고집을 피울만한 나이인 데도, 새주인의 말을 잘 따라 황순이라고 이름 지었다.
황순이는 그동안 15번 출산에 암수 8마리씩 총 16마리의 새끼를 낳아 오랫동안 집안 경제에 큰 도움을 줬다.
신씨는 황순이의 도움으로 4남매 중 3명의 자식을 대학에 졸업시키고, 둘은 호주로 유학까지 보냈다.
황순이는 4자매를 가르치고 결혼시킬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준 집안의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년 1㏊에 이르는 넓은 밭도 척척 갈아엎었다.
신씨의 밭은 경지정리가 된 논으로 둘러싸여 있어 농기계를 이용해 밭갈이를 할 형편이 못되다 보니 황순이의 도움은 필수적이었다.
특히 농사일을 하다가 바쁜 일이 생겨 들에 풀어놓고 와도 사라지는 법이 없이 혼자 집으로 찾아오는 영특한 황순이였다.
보통 소의 수명은 평균 20년 안팎이지만 황순이는 여느 소와는 달리 밭에 나가 풀만 먹고 커서인지 건강하게 30년을 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건강한 황순이도 세월은 비켜갈 수 없었는지 3년 전부터 먹어도 살이 빠지고, 털이 거칠어지면서 발도 절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달 중순께부터 유독 힘들어해 동물병원에서 지어온 약도 먹여봤지만 결국, 지난 7일 눈을 감았다.
신씨는 황순이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선물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장례식을 마련했다.
그는 가족처럼 지내온 황순이를 떠올리며 매년 제사를 지낼 계획이다.
신씨는 “30년 동안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해 준 황순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라며 “친자식이나 다름없던 황순이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가슴 한 켠이 허전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2년 전에 사온 10살된 성순이가 황순이 뒤를 이어 쟁기질을 하고 있어 생이 마감하는 그날까지 성순이 또한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겠다”고 덧붙였다.

< 강진/이봉석 기자> lbs@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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