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부는 LH에 직접 돈을 주거나 빚을 탕감해 주는 일은 피했다. 대신 시장에서 채권을 팔 수 있도록 신용을 보강해주기로 했다. 주택기금 차입금도 출자전환 대신 후순위채로 바꿔주는데 그쳤다. 후순위채는 늦게 빚을 갚아도 된다. 금융사에 진 빚을 주택기금 것보다 먼저 갚아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그만큼 금융사로선 떼일 우려가 줄어 LH가 발행하는 채권을 사주기 쉽다. 미매각 부동산을 판매목적회사(SPV)에 넘기는 것도 비슷한 취지다. 결국 팔려야 돈이 들어오지만 그래도 장부에서 악성 재고를 떨어내는 효과가 있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LH가 할 일을 줄여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이나 지방 산업단지 조성 사업에서 손을 떼게 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매년 43조~45조원에 이르던 사업 규모를 30조원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신도시를 만들 때 녹지율을 줄이고, 학교부지 제공 의무도 없애는 방안이 추진된다. LH 입장에선 더 많은 땅을 팔 수 있어 수익률이 올라가고 비용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LH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다 아는 마당에 화장만 고쳤다고 시장이 러브콜을 보낼지는 의문이다. 신한투자금융 길기모 연구위원은 “55조원에 이르는 회사채 규모 자체가 너무 커 기관투자가들이 선뜻 손이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유상증자를 통해 부채비율을 떨어뜨리고 재원 조달 방안도 다양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원책 상당수가 법 개정 사안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국회에서 논란이 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특히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민간 건설사를 참여시키는 방안은 화약고나 다름없다. 지금도 그린벨트를 헐어 지은 아파트를 분양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심하다. 그나마 서민들에게 싼값에 좋은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논리가 있어 반발을 무마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간 건설사를 끌어들여 이익을 챙겨준다면 그린벨트 훼손의 정당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창수 국토부 1차관은 “LH와 같은 수준에서 아파트 가격을 관리하기 때문에 이윤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리수까지 둬가며 지원책을 내놨지만 주택 공급 축소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연간 추진 사업비를 30조원으로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보금자리주택의 경우 2012년까지 32만 가구를 공급해야 하지만 30조원의 사업 규모로는 연간 8만 가구 이상 사업승인을 받기 어렵다. 국토부 측은 어떻게 해서든 보금자리주택 공급 목표를 채운다는 방침이지만, 그럴수록 다른 사업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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