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장기 교체’라는 화두를 던지면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아일랜드’(2005년)를 떠올린다. 이 영화는 미래 복제인간을 소재로 하고 있다. 복제인간은 하루 종일 몸 상태를 점검받으면서 모체(母體)에 제공할 장기나 조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장기가 필요한 시점이 되면 무참히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바이오 기술이 발전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생물학적 인공장기’는 생명윤리 문제와 더불어 암세포로의 변화 가능성 같은 기술적 한계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려면 적어도 100년은 필요하다고 본다.
이종 장기이식은 면역·감염 문제 여전
다른 동물의 장기를 이용해 치료하는 ‘이종장기이식’ 방식도 면역거부 반응과 감염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 적어도 10년 안에는 완전히 해결하기 힘들다. 고려대 의대 박용두(의공학과) 교수는 “면역체계나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운 장기는 10년 안에 나올 가능성이 0%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600만 달러의 사나이’처럼 기계를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기계식 인공장기 역시 꾸준한 에너지 공급원을 개발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이식된 인공장기가 접하는 조직이나 세포·혈액과 조화로운 공존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따르면 작년 장기이식 대기자는 1만8189명이었다(2010년 12월 기준). 반면 이식승인은 1841건에 불과했다. 겨우 10.1%만이 수술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이식 희망자와 실제 이식이 이뤄진 통계를 볼 때 10년 뒤에도 이런 불균형 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10년 후 장기이식은 다양한 형태의 인공장기를 이용하는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박용두 교수는 “환자가 꼭 필요한 시점에 적합한 장기가 있다면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이식 희망 장기가 구해질 때까지 원래 장기의 역할을 임시적으로 대행하는 용도나 영구적인 대체 목적의 인공장기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심장 재현하는 바이오 프린터
우리가 상상하는 인공장기의 기술 수준은 이미 높은 편에 속한다. 고려대병원 선경(흉부외과) 교수는 “기계식 인공심장은 미국에서 이미 상용화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 인공심장은 환자에게 맞는 심장이 구해질 때까지 임시적으로 몸 안에 넣어두는 일종의 ‘대행’ 역할을 수행한다. 사용 가능 기간은 평균 2~3주. 심장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더 이상 생존 불가능할 때 인공심장을 넣어 생명을 잠시 연장한다는 의미다. 그 시간 안에 적합한 심장이 나타나지 않으면 환자는 죽음에 이른다. 예외적으로 임시 용도로 넣은 인공심장으로 9년까지 생존한 환자도 있다. 따라서 선경 교수는 “10년 후에는 사용 가능 기간을 대폭 늘린 인공심장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심장의 기능을 완전히 대체할 순 없지만 심장이 원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재생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국제전기전자학회(IEEE) 연차학술대회에서 선보였던 ‘바이오 프린터’ 기술도 이런 연구 가운데 하나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컴퓨터에 ‘심장’ 모형도를 입력했을 때 똑같은 형태의 심장을 만들 수 있다. 심장을 둘러싼 혈관과 신경까지 모두 재현하는 것은 기술발전 속도에 비춰볼 때 10년 안에는 불가능하지만 심장 조직 기능의 일부를 보존하는 수준까진 개발이 가능하다.
인공망막 분야도 10년 후 많은 발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망막은 눈 내부의 얇은 신경막으로서 눈에 들어온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 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카메라에서 필름이 하는 일에 해당한다. 외부 충격이나 유전적 이유로 망막에 문제가 발생하면 시력에 이상이 생긴다. 이를 대체하는 인공망막은 특수재질로 만든 전극으로 망막신경세포를 자극해 이 신호가 마치 자신의 광수용체 세포에서 발생한 전기신호처럼 느끼게 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망막 개발은 눈앞의 움직임을 보고 사람 손 크기 정도의 형태를 알아보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정흠(안과) 교수는 “전극 수가 늘어나면 해상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동안은 해상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분야를 연구 중인 서울대 서정모(전기공학부) 교수는 “10년 뒤에는 기술 발전으로 손가락 수를 분간하는 정도의 시력인 0.02 정도까지 발전할 것”이라며 “최종적인 기술개발 목표는 0.1 정도 시력을 복원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인체 내 장기 작동 센서 개발이 핵심
반면 인공 간이나 췌장, 신장 부분에서는 10년 후 인공장기가 보조 역할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계인공췌장은 현재 인슐린 분비를 담당하는 방향으로만 연구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김희찬(의공학과) 교수는 “제2형 당뇨병 환자는 췌장이식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기계인공췌장이 이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췌장은 혈당센서, 인슐린 주입장치, 자동조절 알고리즘이 함께 완성돼야 한다. 하지만 인체 내에서 오랫동안 작동할 수 있는 센서 기술 개발이 어려워 10년 후에도 몸 밖에서 혈당을 조절해야 하는 ‘폐루프형 인슐린 펌프(closed-loop insulin pump)’ 형태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김희찬 교수는 “10년 후 인공췌장은 인슐린을 재충전하는 편리한 방법과 더불어 혈당센서의 정보를 받아 적당한 양의 인슐린을 주입하는 작은 크기의 체외형 자동제어 기기 개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장은 몸 안에서 소변을 만들어 수분의 양을 조절하고, 전해질 균형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만약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면 혈액 내에 존재하는 대사물이 배출되지 못해 생명이 위험해진다. 이 때문에 현재 신장에 문제가 있는 환자는 신장 이식을 받거나 인공신장을 이용한 대체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신장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체내형 인공신장은 없다. 따라서 10년 후 인공신장은 반세기 전에 개발된 기술인 혈액이나 복막 투석기를 통해 혈액에 있는 대사물질을 제거한 뒤 다시 몸 안으로 혈액을 넣는 방법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크기는 훨씬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병원을 찾을 필요 없이 가방에 투석기를 넣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기술개발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서울대 의대 이정찬(의공학과) 박사는 “2007년에 착용 가능한 입는 인공신장에 대한 논문이 의학지 란셋(Lancet)에 발표된 이후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계속 이뤄지고 있다. 기존 혈액투석 기술을 소형화한 것이지만 일주일에 세 번 받아야 했던 혈액투석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어 치료 효과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간은 쓸개즙을 만들고 양분 저장, 해독 작용을 하는 만능 일꾼이다.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인공간을 만드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이유다. 동국대 박정극 교수(의생명공학과)는 “간의 일부 해독기능을 대체하는 인공간이 개발돼 간부전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 생존율을 높이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간의 다양한 기능을 대체하기 위한 방법으로 간세포를 기계장치와 융합해 간 기능을 보조하려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인체의 간세포는 대량으로 얻기도, 배양하는 것도 어렵다. 박정극 교수는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서 돼지 간세포를 이용하는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라며 “이 방법은 세포를 고농도로 생물반응기에 충전하고 신장투석처럼 체외순환 형태로 환자의 혈장을 통과시켜 환자의 간 기능을 대체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가장 각광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동물을 이용한 인공간의 기능 지속 시간은 8~10시간에 불과하다.
권병준 기자 ri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