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수진 변호사·평화합동법률사무소
예단·혼수 갈등 둘러싼 이혼소송 지켜보면
결혼을 '婚테크'처럼 여기는 젊은 세대도 많다
높은 이혼율 탓하기 전에 婚前 부부교육이라도
의무화해야 하지 않을까
"결혼 전에 처가(妻家)가 강남에 수십억 하는 상가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결혼 사기입니다."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제가 예물로 받은 보석과 시계를 남편이 다 가지고 갔습니다. 돌려주세요." "제가 아내에게 받은 예물보다 제가 준 보석이 훨씬 값어치가 나가니 제가 준 것들을 돌려받고 싶습니다."내 의뢰인 P씨는 명문대 출신에 좋은 직장을 가진 남자와 1년 가까운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식 준비 과정에서 시댁의 지나친 혼수 요구로 갈등을 겪으면서 결혼을 관둘까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청첩장까지 돌린 뒤여서 그대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남편과 시부모는 파경(破鏡)에 이르기까지 2년 남짓 사사건건 P씨가 해온 혼수와 예단을 다른 집과 비교하며 트집을 잡았다. 결혼 당시 50㎏의 보기 좋은 체형을 가졌던 그녀는 38㎏의 앙상한 모습으로 이혼법정 조정실에서 이제는 적(敵)이 된 남편과 마주 앉아 결혼생활을 청산하기 위한 재산 분배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이혼 소송을 자주 맡다 보니, 결혼을 준비하면서 예물·예단 등 혼수 갈등으로 받은 상처와 학대가 결혼 후까지도 이어져 P씨 부부처럼 파경에 이르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소송이 진행되면 무엇 때문에 두 사람이 이혼법정에 서게 되었는지, 내 잘못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반성하기보다, 혼수와 예단비·신혼살림에 들인 자금을 어떻게 하면 손해 보지 않고 더 많이 회수할 수 있는지가 관심사의 전부이고 싸움의 주요 양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과연 저 두 사람이 잠깐이라도 서로 사랑한 적이 있었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최근에는 결혼도 인생에서 다양한 선택의 대상 중 하나라는 의식이 많아졌을 뿐 아니라, 배우자를 선택할 때 인성이나 애정보다는 외모와 배우자 또는 그 부모의 경제적 능력 등의 조건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서울의 도시근로자가 109㎡(33평형)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13.7년이 넘게 걸리는 현실에서 경제적 안정을 결혼의 중요조건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이혼율 2위라는 불명예는 결혼을 재테크의 일종인 '혼(婚)테크' 정도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결혼관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경제적 조건을 중시하는 결혼은 준비 과정에서도 혼인생활을 위한 준비보다는 남들에게 보이는 결혼 예식을 준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 결과 결혼 예식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당사자나 주위사람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고 말았다. 고가(高價) 혼수와 예단을 준비하는 것이 배우자와 그 집안에 대한 예의로 여기는 일부의 잘못된 인식도 여전히 과소비 결혼을 부추기고 있다.
얼마 전 결혼 예단비로 10억원을 건넨 뒤 5개월 만에 파경에 이르렀다면 예단비 대부분을 아내측에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이 보도됐다. 예물이나 예단은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혼인이 단기간 내에 파탄된 경우에는 혼인의 불(不)성립에 준하여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판결 취지보다 예단비로 10억원이라는 돈을 주고받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가 관심거리였을 것이다.
원래 예단은 '예물로 보내는 비단'을 뜻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비단이 귀했기 때문에 신부가 시집가는 집안에 선물로 드려 예(禮)를 표했던 풍습에서 유래했다. 전통적으로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비단을 보내면 신부가 시부모의 옷을 바느질한 후에 싸서 돌려보내고 신랑집에서는 수공비조로 돈을 신부집에 보냈다. 이런 절차를 거친 이유는 신랑집에 신부의 바느질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예단의 의미도 퇴색되어 이제는 값비싼 물건이나 심지어 현금으로 건네는 경우가 많아져 예단은 결혼 준비 과정에 가장 부담스러운 걸림돌로 바뀌었다.
실제로 한국결혼문화연구소가 전국 5개 도시에서 결혼한 294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48.3%에 이르는 142쌍이 예단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고 답했다. 조건만으로 애정 없이 쉽게 한 결혼은 파국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로아는 "결혼의 성공은 적당한 짝을 찾기에 있기보다는 적당한 짝이 되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높은 이혼율이 문제라고 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에게 결혼 생활에 관한 부부교육을 의무화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혼자격 시험을 치러 통과한 사람들에게만 운전면허처럼 결혼면허를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