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 기간 중 서울 도심의 용산 미군기지를 (한국) 시민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얼마 전 서울을 방문했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 '결정의 순간(Decision Points)' 한국어판 출판기념회장에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2001년부터 8년간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한미(韓美) 양국 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일로 꼽을 만큼 용산기지 이전은 규모가 큰 사안이었다. '시민에게 돌려주기로 했다'는 그의 말에는 한국 정부가 이전비용을 부담하는 이 결정에 만족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 다음 날, 한동안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용산기지 이전비용 문제가 다시 등장했다. 국방부측은 용산기지 이전 사업비가 총 8조6900억원이 될 것으로 새롭게 추산했다. 2004년 양국이 합의할 때보다 3조3000억원이 늘어난 금액이다.
부시 전 대통령이 용산기지 이전을 업적으로 내세울 만큼 미국측은 이 합의에 큰 불만이 없다. 당시 '자주'를 앞세웠던 노무현 정부가 용산기지 이전을 먼저 제기하면서 모든 비용은 우리측이 부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와 반대로 주한미군이 먼저 말을 꺼낸 2사단 이전은 미국측이 비용을 대기로 했다.
만약 우리가 당시 용산기지를 포함, 주한미군 기지를 후방으로 재편하고 싶어하는 미국의 의도를 파악하고 냉철하게 대응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이전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전비용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될 뻔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은 올 초 회고록과 그의 홈페이지를 통해 이런 가정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그는 국방부의 더글러스 페이스 차관에게 긴급지시를 내렸다.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가 한·미 관계에 대해 재검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며 "이를 활용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로 받아들이고 동의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먼저 한·미 관계 재정립을 제안하면 한반도를 불안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겠지만, 이는 그가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이미 1975년부터 1년 반 동안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노회한 인물이다. 한반도 상황에 밝은 그는 노 대통령의 반미(反美) 발언을 역이용해 미국의 국익에 기여했다. 노무현 정부가 용산기지 이전 문제를 제기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비용을 대라고 했다. 주한미군을 1만명가량 감축하는 협상도 병행했다.
국내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영합하는 포퓰리즘은 동남권 신공항 문제처럼 대통령이 사과하면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안보 포퓰리즘'은 막대한 손실을 보고도 복구할 방법이 없다. 한반도와 관련 있는 외국 고위 인사들의 발언에 숨은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면 비슷한 잘못을 앞으로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늘어난 '反美' 청구서
입력 : 2011.04.0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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