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朴세력 중심인 신주류, 무상급식 찬성 등 좌향좌… 우파 시민단체들은 '선거 앞둔 포퓰리즘' 비판
박 전 대표가 주장하던 우파 핵심가치는 어디 갔나
세상인심 참 묘하다.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친박(親朴)의 도움을 받은 홍준표와 유승민은 나란히 1·2위를 하고 친이(親李)가 민 원희룡은 4등으로 주저앉았다. 일반 여론조사에서 9.5%에 머문 유승민은 13.4%를 얻은 원희룡에 뒤졌으나 당내 선거에서 원희룡을 크게 눌렀다. 친박표(票)는 똘똘 뭉치고 친이표는 이리저리 흩어졌다는 말이다. 실제는 이랬는데 선거 기간 내내 계파 투표 한다고 바가지로 욕먹은 건 원희룡 혼자다. 그는 졸지에 구태정치의 원흉으로 몰린 데 비해, 홍·유 두 사람은 계파정치란 구태를 깬 정의의 사도(使徒)로 떠올랐다.이유는 간단하다. 서로 잡은 줄이 달랐기 때문이다. 홍·유 두 사람이 잡은 줄은 재·보선 참패 후 당의 중심에 들어선 신주류이고, 원이 잡은 줄은 중심에서 밀려난 구주류이다. 권력세계에선 같은 짓을 해도 서해를 바라보는 구주류가 하면 밉고 동해에서 떠오르는 신주류가 하면 예뻐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누군가 자기를 부를 때 맨 앞에 '구(舊)'자를 붙이면 즉각 주변을 둘러보고 세상이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아채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치생명을 건 무상급식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야당의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겠다며 주민투표를 밀어붙이는 그를 응원하는 이들은 안타깝게도 구주류 중심이다. 신주류는 선거에 도움되지 않는다며 서울시 주민투표를 골칫덩어리 바라보듯 한다. 친박 진영의 새로운 스타 유승민 최고위원은 아예 "야당이 주장하는 무상급식은 정책 목표가 옳기 때문에 과감하게 받겠다"고 선언해 시작하기도 전에 주민투표의 김을 확 빼버렸다.
"한나라당은 대한민국의 성공을 만든 근본동력인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당당하게 물어야 한다. 연평도 포격까지 당하고도 천안함을 누가 격침시켰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당이 좋으냐고. 글로벌 시대에 FTA를 반대하는 당이 옳으냐고. 자신들이 10년 동안 정권을 잡았을 땐 무상교육·무상복지·무상의료 외면하다가 지금은 한나라당 때문에 복지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정당의 진정성은 무엇이냐고 물어야 한다." 이렇게 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한나라당이 사는 길이라고 외치는 김문수 경기지사 주변에 모여든 면면들 역시 신주류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신주류의 맹장들은 오 시장이나 김 지사와는 전혀 다른 말들을 쏟아낸다. 유승민 최고위원은 "4대강에는 22조원이나 쏟아부으면서 밥을 굶는 결식아동, 수천만원 빚에 인생을 저당잡힌 대학생, 월 백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비정규직들을 위해선 예산이 없다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내뱉는다"면서 "당의 노선과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꾸자"고 말했다. 남경필 최고위원은 "국민성공 시대를 만들겠다던 이 정부는 대기업과 대기업 오너들만의 성공시대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는 완전히 실패한 정권이란 야당의 비판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신주류의 언행을 두고 우파 시민단체들은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단체는 한나라당 이주영 정책위의장을 지목해 "물러나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그러나 신주류는 꿈쩍도 않는다. 새 정책팀이 아주 잘하고 있다고 계속 등을 떠민다. 신주류의 중심은 박근혜 전 대표다. 그는 지금껏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그의 오랜 침묵은 곧 지지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가 선거에서 이기려면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당 정책의 좌향좌를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결심을 굳힌 것 같다는 관측이 널리 퍼져 있다.
4년 전 박 전 대표는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 구주류보다 더 단호하게 우파의 가치를 주장했다. 원희룡 대선 경선후보가 "줄푸세가 혹시 복지는 줄이고 투기는 풀어서 약자들의 반발이 나오면 공권력으로 대처하겠다는 것은 아니냐"고 묻자, 박 전 대표는 "말씀을 그렇게 험악하게 하시느냐. 가장 큰 복지는 성장에 있다"고 맞받았다. 줄푸세는 '큰 시장, 작은 정부'의 원칙 아래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며, 법치를 세우겠다"는 박 전 대표의 대표공약이었다. 그때 박 전 대표의 정책 메시지 총괄팀장이 유 최고위원이었다.
물론 상황이 바뀌면 정책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원칙을 중시해 온 정치인이라면 우파의 핵심가치에 손을 댈 땐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가 추진한다고 해서 포퓰리즘이 포퓰리즘이 아닌 것으로 둔갑될 순 없다. 그는 지난해 소득세 감세를 철회한다고만 했을 뿐 아직 줄푸세 공약에 수정을 가했다고 밝힌 일이 없다. 사람들은 지금 박 전 대표의 좌향좌가 복지 이외 다른 어느 분야, 어느 정책으로까지 번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