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소송 안하는 부산저축銀 - 지급보증도 안 받아 놓고 대출금 회수 조치 없어
②손 놓은 금융 당국 - "대출 과정 확인하는 초기 단계" 적극적인 환수 움직임 없어
③제대로 수사 않는 검찰 - 돈 흐름 아는 李대표 국내 있는데
증거부족 이유로 본격 조사 안해
지난 2월 불법 대출 등으로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이 2005년부터 5년 동안 캄보디아의 각종 개발사업에 투자한 4900억여원 가운데 3000억여원의 행방이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사라진 3000억여원은 정부가 부산저축은행 부실과 관련해 지금까지 투입한 공적자금(1조5000억원)의 5분의 1에 달하는 액수다.대표적인 사업이 수도 프놈펜에 추진 중인 신도시 캄코시티(Camko City)다. 이 사업에는 부산저축은행뿐 아니라 KTB자산운용도 800억원을 투자했다. 이 사업 시행사인 랜드마크월드와이드(LMW)는 대출금과 사업 수입 등으로 4300억원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집행이 확인된 돈은 1300억여원에 불과하다. 돈의 용처에 대해 LMW 이상호 대표는 "때가 되면 다 밝히겠다"면서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 ▲ 저축은행 비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를 앞두고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 캄코시티에 투자한 뒤 사라진 3000억원의 행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토바이를 탄 남녀가 공사가 중단된 캄코시티 앞을 지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①부산저축은행은 왜 가만히 있나?
부산저축은행은 캄보디아에서만 5000억원 가까운 돈이 물린 상황이다. 3000억원을 대출해 준 캄코시티 사업은 작년 말부터 공사가 중단됐고, 시엠립의 신공항 프로젝트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못했다.
그런데도 부산저축은행은 지금껏 대출금 회수를 위한 소송 등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이번 사업에서 부산저축은행이 사실상 공동시행사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의 경우 금융기관은 PF 대출이자와 수수료만 받는다. 그러나 부산저축은행은 캄보디아 개발사업에 각종 SPC(특수목적법인)를 통해 대출을 해준 것은 물론이고 시행사로도 참여해 수익을 챙기려고 했다. 캄코시티의 경우 사업 수익의 60%를 가져가는 계약을 맺었을 정도다.
이 때문에 부산저축은행은 캄코시티의 PF대출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시공사 지급보증조차 받지 않았다. 지급보증이란 사업시행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시공사가 대신 갚는 것이다. 결국 캄코시티 사업이 중단됐지만 부산저축은행은 대출금을 받을 길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②금융감독 당국은 뭐 하나?
부산저축은행에 지금까지 1조5000억여원의 예금을 대신 지급한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감독 당국이 적극적인 환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의문이다.
예보는 캄보디아에 투입된 대출금을 전액 환수하겠다는 원칙은 밝혔다. 하지만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된 지 5개월이 다 되도록 성과가 없다. 예보 관계자는 "현재 3000억원이 어떤 과정을 거쳐 대출됐는지, 담보는 어떻게 잡혀 있는지를 확인하는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보는 대출금 회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예보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다시 회수 가능성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예보는 부산저축은행이 현지에서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땅을 매각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제3국으로 자금이 빠져나갔다면 이를 되찾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③검찰, 수사 의지 있나?
검찰은 지난 3월부터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 중이지만 4개월이 지나도록 뚜렷한 성과는 고사하고 적극성도 보이지 않고 있다. 검사 1명을 캄보디아에 파견해 현장 점검을 하고, 사건 초기 이상호 대표 등 관련자 일부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수사를 통해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의 대출금이 "캄보디아로 송금은 됐다"는 사실 정도만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인 송금된 돈의 용처(用處)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현지에서는 동남아시아 등 제3국으로 자금이 유출됐거나 캄보디아 내 부동산에 투자됐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제3국에서 자금세탁을 거쳐 한국으로 재유입됐다는 의혹도 나온다.
검찰은 최근에서야 수사 검사 2~3명을 보강하고 캄보디아 검찰총장에게 이번 사건 관련자에 대한 금융계좌 정보 제공을 요청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관련자 소환 등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캄코시티 사건의 열쇠를 쥔 이상호 대표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수사는 진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거 없이 소환해봐야 돈의 흐름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박연차 게이트 사건 당시에도 4~5개월이 지나 홍콩 검찰 당국으로부터 박씨의 차명계좌 자료를 넘겨받은 후에야 수사를 본격화한 전례가 있다. 검찰 관계자는 "돈의 용처를 확인한다고 해도 현지인에게 넘어간 자금을 환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