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포로수용소 공원 김백일 장군 동상 수난
21일 경남 거제시 고현동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매표소 통과 전 왼쪽으로 돌아가자 그늘막용 검은 비닐에 덮여 있는 2m40㎝ 높이의 사람 형태 물체가 나타났다. 전신이 쇠사슬에 칭칭 감겨 있고 초록색 자물쇠도 채워져 있었다.이 물체는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등이 지난 5월 설치한 김백일 장군(1917~1951) 동상이다. 휴가를 맞아 이 공원을 찾은 김모(39)씨는 "멀리서 봤을 때 불에 타 시커멓게 변한 동상인 줄 알았다"고 했다.
- ▲ 함북도민회 주도로 이북5도민회 회원들이 돈을 모아 경남 거제시 고현동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워준 흥남철수작전의 영웅 김백일 장군의 동상이 검은 천으로 덮이고 쇠사슬로 묶여 있다. 경남 거제지역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이“김백일 장군은 일제 강점기 만주군에서 복무한 친일파”라며 지난 20일 이같은 행동을 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동상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거제경실련, 거제YMCA·YWCA, 거제환경운동연합, 거제참교육학부모회 등 지역 1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다. 협의회 회원 10여명은 지난 20일 오후 3시쯤 10여분 만에 이 '작업'을 끝내고 떠나버렸다.
이 동상은 지난 5월 27일 설치됐다. 흥남철수작전 당시 미군을 설득해 10만명의 함경남·북도 피란민을 무사히 거제로 철수시키는 데 공을 세운 김 장군을 기리기 위해 함경남·북 도민들이 7800만원을 모아 세운 것이다.
동상이 세워지자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는 즉각 철거를 요구했다. 거제경실련 김범용 사무국장은 "독립군을 잡던 만주군 장교 동상을 세우는 건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거제시의회도 "김 장군이 친일 활동을 했다"며 지난달 28일 동상철거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경상남도도 문화재 영향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이전 또는 철거하라는 명령을 지난 4일 거제시에 내렸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99호로 지정된 거제포로수용소 반경 300m 이내에서 건설공사 시 문화재에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거제시도 태도를 바꿔 기념사업회측에 자진 철거를 종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황덕호(67) 회장은 "동상을 철거하려는 의견이 있으면 동상을 세우려고 하는 의견도 있을 텐데 어떻게 한쪽 주장만 듣고 철거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면서 "거제시의회가 (동상을 세운)우리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함북도민회 관계자는 "김 장군은 흥남철수작전을 성공시킨 은인이고 6·25전쟁에서 조국을 지켜낸 위대한 군인 중의 한 명"이라며 "동상 철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한편 6·25전쟁 때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내며 공을 세운 백선엽 장군도 만주군 복무 전력 때문에 친일 논란에 휩싸였고 최근 KBS가 백 장군 공적을 담은 6·25 특별기획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자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