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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하고 사는 파트너婚 인기 …‘연상녀+연하남’ 흔한 일

화이트보스 2011. 7. 31. 17:48

계약하고 사는 파트너婚 인기 …‘연상녀+연하남’ 흔한 일

[중앙선데이] 입력 2011.07.31 04:15 / 수정 2011.07.31 08:41

중앙SUNDAY 창간 4주년 기획 10년 후 세상 <18> 결혼
결혼한 부부, 앞으로는 당당하게 애인 만든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2025년 어느 봄날, 서울에 사는 60대 중반의 K씨는 친구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평소 잘 입지 않던 양복과 넥타이를 고르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아내도 옷을 꺼내 이것저것 입으며 K씨에게 어떠냐고 묻는다.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없다며 아내는 연신 투덜거리지만 살짝 들뜬 마음을 감추기엔 웃는 얼굴이 너무 환하다. 흥겨운 분주함이 방 안에 가득하다. 엄밀히 말하면 오늘 결혼식은 ‘시민연대협약식’ 또는 ‘파트너혼(婚)’이다. 정식 결혼은 아니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결혼 형식이다. 결혼과 동거의 중간 단계라고나 할까. K씨 부부는 이 예식에 신부의 ‘멘토 부부’로 초청됐다.

2020년을 전후로 ‘결혼’ 자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6년 스테파니 쿤츠가 쓴 『Marriage, a History』의 번역서 제목이 『진화하는 결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 제목은 적절했다. 결혼 기피 현상이 만연해지자 한국 사회는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 같은 것도 결혼의 범주 속으로 받아들였다. 프랑스가 1999년 제정한 ‘시민연대협약에 관한 법률’(PACS)을 뒤따른 것이다. 당초 염두에 둔 건 동성애자 커플이었는데, 이성 커플에게도 환영을 받는 분위기다. 시민연대협약은 정식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법적으론 정상적인 가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두 사람 사이의 계약이기 때문에 법원에 계약서를 제출하면 성립되고, 둘 중 어느 한쪽이 파기하면 자연스럽게 끝나는 관계다.

이 제도가 프랑스의 출산율을 높이는 효과를 거두자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도입했다. 아시아에선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했던 일본이 가장 먼저 나섰다. 2011년 7월 일본에선 ‘프랑스혼’ 혹은 ‘파트너혼’의 상대방을 찾아주는 회원제 정보회사도 생겼다. 결혼에 대해 꽤 보수적인 한국에까지 들어온 것은 그보다 몇 년 뒤였다.

2010년대 초반 한국은 전체 물가도 많이 올랐지만 특히 신혼부부 물가가 엄청나게 급등했다. 전체 물가의 세 배쯤 폭등했다. 그중 아파트 전셋값은 2000년대 초반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그러면서 ‘결혼 연기’ 혹은 ‘결혼 포기’ 커플이 늘어났다. 그나마 낮았던 출산율은 더 떨어졌다. 한국처럼 결혼에 대해 전통적이고 완고한 나라까지 ‘시민연대협약’을 도입한 배경이다.

한국에서는 시민연대협약을 ‘파트너혼’이라고 부른다. 자유롭고 유연한 파트너들의 결합이라는 뜻의 신조어다. 파트너혼의 경우 두 사람의 계약이므로 예식장을 빌리지도, 수많은 하객을 초청하지도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근 전문 예식장이 생기면서 절차와 격식이 복잡해지고, 초대하는 하객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 커플을 위한 각종 서비스나 상품이 경쟁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친구 딸의 파트너혼만 해도 규모는 결혼식에 버금갈 정도다. K씨 부부는 신부 대기실에 들른다.

결혼 상대 찾기 위한 ‘婚活’ 필요한 시대
K씨의 친구 딸 유리는 만혼이다. 서른여섯인 유리는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국제변호사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운동도 노래도 잘하는 ‘알파걸’이었다. 또래 친구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당연히 결혼도 일찍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난 여성은 짝을 찾기 힘들다”는 옛말을 입증하듯 유리의 결혼 상대는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상향식 결혼’이 일반적이었다. 여성은 자기보다 나은 조건의 남성을 찾았다. 그런데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일반화되고, 모든 직장과 분야에서 남녀 지위가 비슷해지자 그런 의식은 결혼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유리의 결혼은 ‘하향식 결혼’이다. 신랑은 조건만 따진다면 유리보다 조금씩 모자랐다. 나이도 네 살 아래다. 지금은 오히려 ‘하향식 결혼’과 ‘연상녀-연하남 결혼’이 일반적이다.

스테파니 쿤츠가 쓴 『진화하는 결혼』에 따르면 낭만적인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결혼은 18세기 말에 생긴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고, 우리는 그들과 결혼한다”라는 케냐 루오족의 말처럼 그 전까지 결혼은 여러 가문이나 공동체들이 협동관계를 맺는 데 기여했다. 그러다 18세기 말부터 결혼은 남녀 간의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왔다. 그 바탕은 시장경제와 계몽주의 사상이었다. 임금노동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의존할 필요가 작아졌다. 그들은 임금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기만 하면 언제든 결혼할 수 있었다. 제프리 와츠의 말처럼 계몽주의 사상은 배우자 선택에서 사랑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만들어 결혼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오히려 결혼의 위기를 불렀다. 결혼생활에서 사랑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사랑이 식어버린 결혼은 더 유지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한국 사회에선 2000년대 후반부터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인식됐다. 사랑과 자기실현에 관한 새로운 가치관이 확산됨에 따라 결혼을 하지 않아도 의미 있는 삶을 꾸릴 수 있고, 세상 모든 걸 부부 중심으로 대처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88만원 세대’의 출현으로 부모 품을 떠나지 않으려는 의식도 한몫했다. 더욱이 자유 선택의 기회가 많을수록 눈앞의 상대가 최선인지 확신할 수 없다. ‘어딘가 더 나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결단을 미루는 남녀가 늘어났다.

그런 시대를 야마다 마사히로는 ‘혼활(婚活) 시대’라고 불렀다. 자유로운 ‘선택’이 결혼의 결단을 방해하는 시대. 취업할 때 구직활동을 하는 것처럼 적극적인 결혼활동(婚活) 없이는 결혼하기 어렵게 된 시대라는 뜻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해 혼자 사는 젊은이가 늘어나면서 혼전 섹스·동거에 대한 거부감도 점차 사라졌다. 미혼 신분으로 사실혼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자 결혼의 필요성도 줄어들었다. 싱글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자유가 결혼과 동시에 끝나버릴 수 있다는 불안도 컸다.

당시 동거에 대한 젊은이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조사가 있다. 2010년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세 이상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이상적 배우자상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동거 경험이 있는 이성과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을 할 의향에 대해 54.4%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동거에 대한 거부감이 그때부터 많이 줄어든 것을 보여준다.

과거를 회상하는 사이 K씨 부부 차례가 왔다. 멘토부부로서 신랑·신부에게 간단히 축사를 한다.

결혼 여부보다 누구와 사느냐가 더 중요
예전과 비교하면 결혼 형태도 다양해졌다. 20세기 대표적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계약결혼을 한 것이 1929년 10월의 일이었다. 둘은 사르트르가 사망한 80년까지 51년간 서로 제3자와의 사랑을 허용하는 자유로운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한때 K씨도 그런 관계를 소망했지만 철학자도 작가도 아닌 평범한 남자에겐 위험한 상상이었다.

국제 결혼도 일반화되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총 혼인 중 외국인과의 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전에 비해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재혼 역시 일상화돼 초·재혼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동성애 결혼도 인정받았다. 동성애 문화는 문학이나 뮤지컬·영화 같은 예술 속으로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러다 21세기에는 법과 제도 속으로도 성큼 들어왔다. 2011년 7월 24일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처음 태동한 뉴욕에서 동성애 결혼이 허용되었다. 당시 뉴욕시장이던 마이클 블룸버그는 시청 동성애자 직원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섰다. 미국에서 동성애 결혼을 법으로 허용한 곳이 뉴욕주가 처음은 아니었다. 2000년 7월 1일 버몬트 주에서 동성애 여성들의 시민 결합(civil union)을 허용했다. 이어 매사추세츠 등 4개 주와 워싱턴 DC가 뒤를 따랐다.

거기에는 경제적인 동기도 있었다. 동성결혼과 관련한 결혼산업과 부가산업이 당시 침체에 빠진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결혼의 무대 뒤에서는 문화적·법적·경제적 동기가 작동하는 것이다.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는 나라에서는 국가결혼정보원이라는 것도 생겼다. 싱가포르에서는 청년체육공동체개발부 산하에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했다. 싱가포르의 국가 슬로건이 한때 ‘로맨틱 싱가포르’인 적도 있었다. 비혼화·만혼화 현상이 심화되자 국가가 결혼을 장려하고 촉진하고 사회 전체를 결혼친화적 환경으로 만드는 데 노력했던 것이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는 미래 세상에서 결혼은 사라질 것인가? 예식장을 나오며 K씨는 자문한다. 그러면서 “어떤 형태로든 결혼은 지속된다”라는 제시 버나드의 말을 떠올렸다.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미래에는 개인주의가 더욱 팽배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정서적 교감을 나눌 대상을 더 열렬히 원하게 된다. 결혼이 곧 그런 것이다. 결혼은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서로의 성장을 도와주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결혼은 하나의 형태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될 것이다.

미래 세상에서 “왜 결혼을 안 하느냐?”라는 질문은 사라질지 모른다. 결혼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사느냐가 더 중요할 테니까.

김상득 듀오 기획부장 kimida@duo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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