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망라한 수많은 선거결과 분석 논문과 교과서들은 이념상의 양쪽 극단(極端)이 아니라 중간지대에 표가 몰려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 정치에선 유권자의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도(忠誠度)가 눈에 띄게 약화됐고, 이런 정당과 정서적 유대를 갖지 못한 유권자가 중간지역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당들이 중도(中道)라는 정답을 등지고 극단이라는 오답(誤答) 주변을 헤매는 것은 당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일손을 빌려주는 소수의 열성 당원에게 끌려 다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 정체성을 선명(鮮明)하게 드러내야 지지층이 결집하고 동력이 생긴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당 노선을 한쪽 끝으로 몰고 가려는 쪽이 지지자 입장에서 속 시원하고 그래서 박수도 더 많이 받는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왼쪽 편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같은 정당들이 큰 목소리를 내는 야권 구조, 특히 지금처럼 야권통합이나 연대 형성이 야권의 대표적 화두(話頭)인 상황에선 더 그렇다.
그러나 상대 당과 겨루는 본선에선 그 당과 그 당 후보들이 내건 정책이 평균적 국민과 큰 거리를 나타낼수록 표를 모으기 힘들어진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노동당 정체성이 걸린 '생산수단 공유' 규약을 폐기시키기 위해 당내 반대파들과 씨름하고,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상대 공화당 정책을 적극 수용한 '신(新) 민주' 정책 노선을 내세웠던 것도 그런 정치계산의 산물이다. 두 사람은 힘겨운 당내 노선투쟁을 견뎌낸 후 본선에선 수월한 승리를 거두며 장기집권했다. 반면 미국 정치에서 극단적 보수와 극단적 진보그룹을 대표했던 공화당의 골드워터나 민주당의 맥거번 후보는 당내 예선에서 극성 지지층의 요란한 박수를 받았지만 본선에서 역사적 대참패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정권 탈환을 위해 좌파 성향 지지층의 박수 소리와 대선 승패의 향방을 정할 중산층 유권자의 신뢰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