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고령화에 대한 준비

약초물] 산과 들과 물이 만났다

화이트보스 2011. 9. 27. 14:15

약초물] 산과 들과 물이 만났다
 

  ①황기 달인 물 ②오미자와 머루 달인 물 ③황기, 더덕, 길경, 늙은 호박 달인 물 ④인진쑥 달인 물.

#캔약초는 효소를 만들거나 물에 달여 마셔

 “마님, 날이 써늘한데, 뭐나… 그 차 한잔 주. 목이 답답하네.”

 해가 뉘엿뉘엿 뒷산에 걸릴 무렵, 밭에서 풀을 뽑고 온 김영돈씨(46·강원 정선군 화암면 건천리)가 무뚝뚝한 정선 사투리로 부인에게 따끈한 차를 청한다. 애교 넘치는 부인 함선랑씨(42)는 운치 있게 밖에서 마시자며 아예 작은 찻상을 들고 마당으로 나간다.

 “짠! 호로록~.” 건배하듯 찻잔을 부딪친 뒤 눈을 감고 차맛을 음미하는 부부. 황기와 길경(도라지 뿌리), 더덕과 늙은 호박에 감초까지 넣고 달인 물을 따뜻하게 데운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 캔 약초들인데, 잘 말렸다 정성껏 달여 그런지 아직도 향이 짙다.

 영돈씨는 이 근방에서 ‘약초의 달인’이자 약초 애호가로 통한다.

젊은 시절 타향살이를 하다 귀향해 약초와 인연을 맺은 것도 벌써 강산이 두번은 변한 세월.

해발 750m의 건천마을에서 더덕·황기·만삼·도라지를 재배하면서, 뒷산 송이골(뒷산인데 해발 1,400m는 족히 된다)에서는 겨우살이·삽주·잔대·시호·지치·둥굴레·갈근(칡)·당귀·백봉령·하수오 따위의 다양한 약초를 채취해 온다. 송이골은 고도가 높은 분지라 각종 약초와 나무열매, 나물들의 보고(寶庫)다.

캔 약초는 생약 그대로 팔기도 하고 효소를 만들거나 물을 달여서 집에서도 먹고 지인들에게도 판다.



#농민들이 어데 한약 지어 먹을 돈이 있나

 “우리 집은 보리차 마시듯이 부담 없이 끓여 마셔요. 농민들이 어데 한약 지어 먹을 돈이 있나. 헛개나무나 겨우살이 같은 약초들은 동네 뒷산에서 발에 채이니까, 캐 와서 푹푹 달여서 물처럼 마시는 거지.” 

영돈씨가 약초를 찾아 송이골을 누비는 시기는 월동을 앞두고 약초의 영양분이 뿌리로 몰리는 11~12월이다. 이때 캐서 말려 놓은 약초를 1년 내내 두고 그때그때 달여 먹는다. 여름에는 달인 물을 냉장고에 넣어 두고 갈증 날 때마다 시원하게 마시고, 찬바람이 불면 끓여서 차로 즐긴다.

 영돈씨는 술 마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부인 선랑씨에게 헛개나무 달인 물을 부탁한다. 애주가인 그가 오늘은 앞집, 내일은 읍내로 술을 마시러 다닐 수 있는 것도 모두 헛개나무 덕분.

가을걷이가 끝나고 무릎과 허리가 시큰거릴 때면 관절에 좋은 엄나무·가시오갈피처럼 가시 달린 나무를 달이고, 읍내로 ‘유학’ 간 고등학교 1학년 아들 동아(16)에게는 원기 회복에 으뜸이라는 황기물을 보내 주고 있다.



#아토피 앓은 딸 약초 증류수 발라 가려움증 많이 줄어

 영돈씨 부부가 약초물을 즐기는 방법은 마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약초를 달일 때 생기는 증류수를 모아서 발도 씻고 세수도 한다. 이틀 내내 달이면 증류수가 18ℓ(1말) 정도 나오는데, 이 물로 영돈씨는 발을 씻고 선랑씨는 세수를 한다.

양이 많지 않아 자주 쓰지는 못하지만, 덕분에 영돈씨는 무좀이 나아졌고 선랑씨는 피부가 촉촉해졌다. 어려서 아토피를 앓은 딸 민아(15)도 약초물을 바르고 가려움증이 많이 가셨다.

 약초물은 요리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쌈장이나 나물무침에 한숟갈 넣으면 쌉싸래한 감칠맛이 돌고 향도 진하다.

밀가루 반죽에 색을 더하는 것도 약초물의 몫. 오미자 달인 물은 메밀 부치기(부침개)에 고운 분홍빛을 입히고, 말린 곰취 삶은 물은 은은한 초록빛을 만든다.



#좋은 약초도 고유의 독성이 있어 많이 마시면 부작용 생길 수도

 이처럼 약초물을 요샛말로 ‘격하게 사랑하는’ 영돈씨 부부이지만, 약초물 이용에는 철칙이 있다.

바로 한종류의 약초물을 두재(40첩) 이상 연달아 먹지 않는 것.

“아무리 좋은 약초라도 고유의 독성이 있기 마련”이고 “한가지 성분이 오랜 기간 쌓이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먹어서 몸에 열이 난다거나 잠이 잘 안 오는 등 어딘가 불편하면 ‘안 받는 것’이라 여기고 먹지 않는다. 

“지나치지만 않으면 이보다 좋은 보약이 없소. 기자 양반, 내 외모 어떻소? 도시에 사는 내 또래들보다 훨씬 젊어 보이지 않소?”

 취재를 마칠 무렵, 농업인치고 꽤 멀끔한 외모의 영돈씨가 얼굴을 쓰다듬으며 자랑스레 얘기한다. “이게 다 약초물을 애용한 덕분”이라며.

그때, 영돈씨의 ‘자뻑’을 듣던 부인 선랑씨도 한마디 거든다.

 “자양강장에 좋다는 하수오 덕분에 밤낮 없이 힘도 세다고 좀 써 주드래요.” ☎010-9265-2646.

 정선=김인경 기자 why@nongmin.com

사진=김병진 기자 fotokim@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