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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保守'가 무슨 뜻인지나 알고 정강에서 빼나

화이트보스 2012. 1. 6. 14:19

한나라, '保守'가 무슨 뜻인지나 알고 정강에서 빼나

입력 : 2012.01.05 23:41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5일 당 정강(政綱)·정책에서 '보수'란 용어를 빼는 걸 논의했다. 회의에서 일부 반론도 있었으나 삭제 주장이 다수여서 결국 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비대위는 이와 함께 '큰 시장 작은 정부' '반(反)대중영합주의' '선진화'처럼 글로벌 스탠다드와 신자유주의를 떠올리는 표현들을 빼고 대신 경제 정의(正義)를 강조하는 표현을 넣는 걸 검토 중이다.

한나라당 현 정강 정책은 전문(前文) 첫머리에서 한나라당을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 발전을 주도해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는…"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 세력인) 우리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었고 이 성과를 토대로 나라를 선진화하는 데 모든 당력을 집중한다"는 목표를 밝히고 있다. 비대위는 여기서 '발전적 보수'를 빼자는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은 "어떤 정당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는 유권자가 평가하는 것이지 정당 스스로 표방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영국 양대 정당 중 하나인 보수당은 200년 넘게 '보수'를 당명으로 쓰고 있다. 미국 공화당 사람들도 예사로 자기 당을 보수당(conservative party)으로 부른다. 한나라당 비대위원들은 "젊은 사람이 '보수'란 말을 싫어하고 보수 진보 논란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물정 모르는 소리다. 20대 30대 지지층을 확대해 또 한 번의 집권을 노리는 민주통합당은 '민주'와 '진보'를 입에 달고 산다. 민주통합당보다 훨씬 왼쪽에 있는 통합진보당은 아예 당 이름에 '진보'를 넣고 있다. 한나라당을 이들과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정당으로 재탄생시키겠다고 나선 비대위원들이 한나라당보고 '보수' 간판을 내리라는 건 비대위원 스스로가 '보수'를 '진보'보다 열등한 가치로 여기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시대적 이슈로 떠오른 복지 정책을 비롯해 대기업정책, 고용정책, 교육정책, 여성정책, 지역균형 정책, 인사정책을 오늘의 정치·경제·사회 상황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크게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에 유연성을 두는 것과 보수 간판을 내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영국 보수당은 노동계급의 생활 개선과 복지증진 같은 사회개혁이 필요할 땐 노동당 정책도 과감히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당명에서 '보수'를 빼는 못난짓은 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란 말의 이미지가 나빠졌다면 그건 보수의 축(軸)으로 자처해온 한나라당의 빗나간 행동 때문이다. 당 정강에 '보수'란 말이 있어 한나라당이 국민의 고통을 해소하고 행복과 안정을 보장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는 데 무슨 제약이 있었다는 말인가. 비대위원들은 물론이고 당권을 거머쥐고 당을 좌지우지해온 인사들이 당 정강에 '보수'란 말이 있는지를 제대로 알고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한나라당이 자기들 잘못 때문에 흙탕물을 뒤집어쓴 '보수'의 얼룩을 닦아낼 생각은 하지 않고 '보수'라는 가치 자체를 내동댕이치는 건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고 '한나라당'과 '보수'를 한꺼번에 죽이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보수의 핵심 가치는 무엇이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부터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