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2.08 23:24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7일 용산 재개발 현장 점거 농성으로 복역 중인 8명에 대해 "이들은 범법자이기 전에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생계 터전을 잃고 겨울철 강제 철거의 폭력 앞에서 절망했던 사회적 약자(弱者)"라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했다.
박 시장이 사면을 건의한 사람들은 2009년 용산4구역 재개발 현장의 건물을 점거하고 8차선 대로를 향해 벽돌·화염병·염산병을 던지며 농성을 벌였던 인물들이다. 이들이 경찰을 향해 던진 화염병에서 솟은 불길이 농성 망루 전체로 옮아붙어 서울경찰청 특공대원 김남훈 경사와 농성자 5명이 사망했다.
박 시장은 시민운동을 해온 자기 경험의 바탕 위에서 당시 용산 세입자들이 보상금을 평균 2500만원 받고 영업 장소에서 쫓겨나야 했던 딱한 형편을 감안해 사면의 특전을 베풀어 달라고 건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 시장은 이제 특정한 이해관계 위에 서 있는 소수 단체들의 권익을 대변하던 시민운동가에서 전체 서울 시민의 공익(公益)을 지켜야 하는 공직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공직자란 여러 가치가 충돌하는 각 사안(事案)마다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중시하고 어느 가치를 그다음에 둘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사는 직업이다. 시민운동가처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만 내세우고 다른 가치는 도외시(度外視)해도 되는 속 편한 직업이 아니다. 용산 사태도 그 바탕엔 합법적 절차에 따른 결정을 중시할 것이냐, 아니면 그 과정에서 일부 손해를 본 이해 당사자의 입장을 우선해 그 결정을 되물려야 하느냐 하는 판단 문제가 깔려 있다. 민주주의에서 합법적 절차를 거친 결정을 비합법적 실력 행사로 뒤집는 일이 상례화(常例化)하면 공동체의 질서는 무너지고 만다.
사회적 약자의 이의(異議)나 반론(反論)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주장도 신중한 저울에 달아보고, 공적 질서의 근본을 허물지 않는 선에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문제의 8명 중 4명은 재개발 철거 지역마다 찾아다니며 사제(私製) 총까지 동원해 투쟁을 해온 전문적 시위 단체 소속원이었다.
고(故) 김남훈 경사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서울시장 휘하에서 시장을 대신해 공익적 임무를 대행하다 희생된 사람이다. 32세의 나이에 아내와 여덟살짜리 딸을 둔 그의 희생을 가장 가슴 아파하고 그에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통감해야 할 사람은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농성자들 사면을 건의할 생각이 있었다 해도 최소한 김 경사 유족을 찾아가 뜻을 먼저 물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