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2.06 23:31 | 수정 : 2012.02.07 03:25
김낭기 논설위원

민주통합당과 '나꼼수' 등 정봉주씨 지지자들은 정씨가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정씨는 2007년 BBK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이들은 " 당시 '이명박 후보가 김경준의 BBK 주가 조작에 연루됐다더라'고 했던 사람이 정봉주 한 사람뿐이었느냐. 그런데 왜 정봉주만 유죄냐"고 한다. 그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했거나 그렇게 의심했던 것은 맞는다. 정씨가 주장했던 내용도 이런 수준이었다면 유죄판결은 정말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정씨는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한 게 아니다. 정씨에 대한 판결문을 보면 그는 구체적이고 단정적으로 네 가지 사실을 주장했다. 그 중 하나를 보면 이렇다.
"이명박 후보의 최측근인 김백준이 2001년 5월 3일 삼성증권에서 98억을 신한은행에 개설된 자기 개인 계좌로 받아 그날 바로 김경준의 주가조작과 횡령에 동원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인 워튼에 98억원을 빌려줬다. 이 후보가 김경준과 결별했다고 밝힌 2001년 4월 이후에 김백준이 주가조작 계좌에 송금한 점에 비춰 이 후보의 '결별 선언'은 거짓이고 주가조작을 몰랐다는 주장은 허위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신한은행 계좌는 김백준씨 개인 계좌가 아니라 BBK와는 다른 회사인 EBK가 법인 자금 등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던 계좌였다. EBK는 이명박 후보가 2001년 2월 자신과 김백준씨를 공동 대표이사로 해서 김경준씨와 함께 만든 증권 중개회사다. EBK는 김경준씨가 유치한 100억원을 자본금으로 쓰기로 했다. 김경준씨는 이 100억원을 삼성증권에 넣어 굴리던 중 2001년 4월 이 후보와 결별하면서 EBK를 청산하게 됐다. 이에 따라 김경준씨는 100억원을 투자자에게 반환하는 절차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삼성증권 계좌에 있던 98억을 빼내 신한은행 EBK 계좌와 워튼 명의의 계좌를 거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98억원은 EBK 설립과 청산 과정에서 오간 돈이지 주가 조작과는 관련이 없다"는 게 판결의 결론이다. 판결문은 "정씨가 자기 주장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확인 절차를 소홀히 하고 단정적으로 주장했다"고 말했다.
정씨 지지자들은 대통령 후보의 도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일부 사실이 좀 틀렸다고 해서 뭐가 그리 큰 잘못이냐고 주장한다. 판결문도 "도덕성 검증은 당연한 일"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제 제기 방식"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근거가 약한 의혹의 제기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면 나중에 그 의혹이 사실 무근으로 밝혀지더라도 임박한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오도(誤導)하는 중대한 결과를 야기한다. 따라서 문제 제기는 최대한 확인을 거쳐 해야 하고, 의혹을 받는 상대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거나 반박하면 그 반박·해명의 신빙성에 대한 합리적인 재반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정씨는 상대방의 해명이나 반대 증거를 외면한 채 종전 주장을 반복했다. 이는 검증이라는 명목으로 근거 없는 의혹만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정씨 지지자들 주장과 판결문 내용 중 어느 쪽이 상식에 맞을까. 정씨는 정말 억울한 것일까. 정씨를 추종하거나 이용하려는 세력에겐 물어볼 것도 없다. 문제는 일반 국민이다. 국민도 정씨가 억울하다고 여긴다면 우리나라 선거는 앞으로도 '제2, 제3의 정봉주'가 판을 치는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