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2.12 23:19
선거 날이 가까워질수록 나라 기틀이 멍들고 금 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국방 개혁 법안은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천안함·연평도 같은 북의 기습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지만 국회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국회 국방위원 소속 의원도 70% 가까이 찬성하고, 여야 정쟁(政爭) 대상도 아닌데 법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눈앞이 총선인데 표에 도움은 안 되고 골치 아플 소지만 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은 "집권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파기하겠다"는 공개서한을 미국 대통령에게 보냈다. 야당은 집권 세력만큼 국정 돌아가는 속사정을 알기 어렵다. 올 12월 대선에서 승리하면 그때부터 정부 설명을 들어가며 요모조모 살펴본 뒤 폐기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도 야당은 차기 정부 임기 시작 1년도 더 남은 시점에서 미국 대사관에 시위하듯 몰려갔다. 야당에 FTA 폐기는 국익(國益)이 아닌 총선 전략 차원 문제라는 얘기다.
국회 정무위원들은 여야 합의로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 특별법'을 처리해 본회의로 넘겼다. 이 특별법은 원리금 5000만원까지 보호해주는 예금자 보호 제도 원칙을 11년 만에 허물 뿐 아니라, 위헌(違憲) 소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법안에 반대 입장을 밝힌 정무위 소속 의원은 단 한 명뿐이다. 법제사법위도 이 법의 위헌성에 대해 "소관 상임위가 통과시켰는데 문제 삼기 어렵다"며 꽁무니를 뺀다. 정무위도 법사위도 선거를 앞두고 저축은행 피해자들에게 밉보이지 않겠다는 계산만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2017년까지 비정규직을 현재의 절반가량 줄이겠다는 약속을 이달 초 내놓자, 새누리당은 2015년까지 비정규직 20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고 받아쳤다. 지난해 반값 등록금 공약을 놓고 경쟁하던 여야는 청년 표를 얻기 위한 독자 상품도 쏟아내고 있다. 새누리당은 졸업 후 중소기업 입사를 약속하는 대학생에 대한 장학금 제도와 함께 사병 월급을 현행 9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린다는 방침도 내놓았다. 민주당은 대기업에 매년 3%씩 청년층 추가 고용 의무를 지우고, 지키지 않는 기업에는 부과금을 물리겠다고 했다. 영세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와 대기업 수퍼마켓(SSM)을 손보겠다는 약속도 쏟아지고 있다.
지금 이 나라 정치권은 표(票)만 되면 나라 기둥이며 지붕까지 뜯어다 내다 팔 태세다. 반면 국가의 근간(根幹)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도 표에 부담되면 꿈쩍도 않는다. 어떻게든 먼저 자기들 금배지 지키고, 정권을 차지한 뒤 나라는 그다음에 챙기겠다는 태세다. 여(與)와 야(野)가 합심해서 나라를 망쳐 놓기로 결심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