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헤어 디자이너

헤어 디자이너 이순철씨

화이트보스 2012. 6. 23. 10:46

 

헤어 디자이너 이순철씨
공고 나와 삼성중공업 입사, 관뒀을 때 부모님 몸져누워
손재주 믿고 미용사 입문… 소녀시대·황신혜 헤어 담당
헤어아카데미 설립 꿈 안고 종합예술학교 교수로 활동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출연한 탤런트 김남주가 유행시킨 뽀글뽀글 퍼머, '샐러리맨 초한지'에 나온 정려원의 화사한 빨간 머리, 패셔니스타 이혜영의 트레이드 마크 상큼한 단발…. 젊은 여성들을 앞다퉈 미장원으로 달려가게끔 만든 이 헤어스타일들을 탄생시킨 이는 거제도 출신 '경상도 사내' 이순철(36)씨다.

그는 최근 영화 '돈의 맛'에 출연한 배우 백윤식·김강우와 함께 프랑스 칸 영화제에 다녀왔다. 시상식 헤어스타일을 맡기 위해서다. 레드카펫 위 김윤진의 머리도 그의 손을 거쳤다. 황신혜·소녀시대 등 내로라하는 연예인들 헤어스타일도 도맡아 담당하고 있다.

유행의 최첨단에 선 이씨는 막상 만나보니 예상과 달리 무뚝뚝한 사투리로 "어릴 땐 이 일을 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 했다"고 했다. 구미 전자공고 전자통신과 출신으로, 졸업과 동시에 동기들이 선망하는 삼성중공업에 입사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취업에 도움이 된대서 학창 시절 전자통신 관련 자격증만 5개나 땄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런데 막상 원하던 회사에 입사한 뒤 인생 진로가 바뀌었다. 반도체 부문을 지원했지만 해양설계 부문에 배치된 것이 계기였다. "회사에서 용접·절단을 했는데, 그 일이 그렇게 안 맞을 수가 없는 거예요."

선박 용접·절단을 하다 진로를 바꾼 헤어 디자이너 이순철씨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출연 중인 탤런트 김남주의 머리를 손질해준 뒤 함께 포즈를 취했다. /이순철씨 제공
결국 3개월 다니다 퇴사했다. 다른 계획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누나가 "넌 손재주가 있으니 미용 기술 한번 배워보라"고 권했다. 다른 대안도 없던 터라 상경해 구로공단 인근 미용학원에 등록했다.

아들이 '삼성맨'이란 안정된 길을 버리고 미용사가 되겠다고 하자 부모는 머리 싸매고 누웠다. 주변에서도 "사내놈이 무슨 미용이냐"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 달 반가량 미용학원에 다니며 자격증을 따고 이발병으로 입대했다. 그는 "남성 커트의 기본기는 모두 군에서 갈고닦았다"고 했다. 제대 후 이씨는 유행의 중심 청담동 미용실에 수없이 원서를 내 한 곳에 스태프로 채용됐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긴 머리를 잘라 달래서 자르고 있자니 바닥에 떨어진 머리칼을 보며 눈물 흘리는 여성, 머리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고 아예 삭발을 요구한 남성 고객도 있었다. 30~40명 여자 스태프 사이에 섞인 '소수자' 남성으로서 텃세도 겪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실력으로 승부하자'며 이를 악물었다. 남들보다 항상 2시간 일찍 나오고 2시간 늦게 퇴근하며 기술을 익혔다. 해외 패션잡지와 영화를 보며 유행 스타일을 배웠다.

고된 수련생활 뒤 마침내 디자이너가 됐지만, 그를 찾는 고객이 없었던 몇 달간은 매일 자신을 지목하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관둬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문이 나면서 그를 지목하는 고객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담당했던 연예인 헤어스타일도 족족 대박을 터뜨려주며 그의 입지를 다져줬다.

2007년 청담동에 문을 연 그의 미용실은 스태프만 200명 이상인 유명 매장으로 성장했다. 그는 지금도 도전 중이다. 언젠가 전문 헤어 아카데미를 설립하겠다는 꿈을 꾸며 이번 학기부터 서울종합예술학교(헤어디자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