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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튀어야 살 수 있다

화이트보스 2012. 7. 25. 13:49

한국 경제, 튀어야 살 수 있다[중앙일보] 입력 2012.07.25 00:05 / 수정 2012.07.25 00:06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공상과학소설 『해리슨 버거론』 얘기다. 때는 2081년, 마침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튈 수 없는 시대가 왔다. 똑똑할 수도, 잘생길 수도, 빠를 수도 없다. 뛰어난 두뇌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귀에 정신을 혼란시키는 수신기를 꽂고 다녀야 한다. 미 연방 평등관리국은 20초마다 날카로운 잡음을 쏘아보내 이들이 뛰어난 두뇌를 통해 불공정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게 한다. 해리슨 버거론은 정말 똑똑하고 잘생기고 재능이 많은 14세 소년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무거운 장비를 쓰고 다녀야 했다. 커다란 잡음청취 이어폰을 쓰고 잘생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코에 빨간 고무공을 끼고 눈썹은 밀고 하얀 이에는 검은 덮개를 끼우고 다녀야 했다.

 최근 한국은행이 2012년 경제성장률을 3%로 하향조정했다.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의 늪에 빠져든 느낌이다. 수출의존적 산업구조와 글로벌 경기침체, 급속히 진행되는 노령화로 인해 경제활력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환경 속에서 한국 경제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한국 경제는 튀어야 살 수 있다. 어찌 보면 한국에 주어진 숙명이다. 한국 경제는 평균으로 경쟁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미국·중국·일본같이 경제규모가 크고 인구가 많은 나라에 밀리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 스포츠든 기업이든 각 분야에서 튀는 선수를 키워 최고끼리 경쟁시켜야 한다. 피겨스케이팅을 보자. 선수층도 얇고 평균 실력은 떨어지지만 김연아 같은 튀는 선수가 있으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 수영의 박태환도 마찬가지다. 평균적 수준은 밀리지만 최고들끼리 비교하면 경쟁력이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튀는 기업으로 글로벌시장에서 승부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중 50% 이상이 수출 덕분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이치다. 한국 기업 중 세계시장에서 튀고 있는 대표적 기업은 삼성전자다. 정보기술(IT) 산업에서 애플과 함께 세계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튀는 기업에 전파장애기를 장착하거나 눈썹을 밀어내선 안 된다. 물론 국제경쟁력 있는 자기 분야에서 튀라는 말이지 이것저것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국내에서 튀란 말이 아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현재 튀고 있는 기업이 미래에 튈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의 성장을 제약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지금 미국 IT업계에서 선두 주자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이지만 30년 전에는 IBM이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과 유사한 반(反)독점법이 없었더라면 기득권을 갖고 있던 IBM에 밀려 오늘의 애플이나 MS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MS가 30년 전 IBM처럼 반독점 규제를 받고 있다. 바로 자신을 규제하는 이 법 때문에 오늘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MS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승복한다. 바로 미국의 힘이요, 미국의 미래 혁신산업을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다. 삼성과 관련해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도 바로 이 점이다. 과도한 시장지배력 때문에 미래에 튈 잠재력이 큰 중소중견 혁신기업들의 싹을 꺾는 경우가 있다면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도 새롭게 튀는 기업들이 계속 생겨날 수 있다. 30년 전엔 미미했지만 지금은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애플이나 MS처럼 말이다.

 
 평준화 좋다. 하지만 튀는 기업에 올가미를 씌우는 하향평준화는 안 된다. ‘모난 돌 정(丁) 맞는다’는 말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한국 기업엔 맞지 않는 말이다. 오히려 ‘모난 기업에 정(情)을 줘야 한다’. 그래야 튀는 기업이 많이 생겨난다. 튀는 기업들이 계속 생겨나야 한국 경제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