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7.27 03:04
[제2부 원자력 협정] [5·끝] 美의 전략은… 한국 체면 세워주되, 핵심사항은 피해가기
美대선 공화당이 잡아도 '비확산 정책' 변함 없어
행정부보다 의회가 더 강경… "한국만 예외 안돼"
"2014년 협정만기 다가오면 한국이 더 부담 클 것"
'최고 동맹' 한국 요구 100% 무시는 부담돼 고심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현재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이 요구하는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허용해 줄 생각이 사실상 없다고 한다. '핵 없는 세상'을 핵심 외교 기조로 내세우는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은 "세계 어느 한 곳에서라도 '비확산의 둑'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아무리 전략적으로 한국이 중요하다 해도 한국에만 예외를 인정해 주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비확산 강조 정책은 여야 구분이 없다. 이 때문에 올해 대선에서 공화당이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상황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행정부가 다른 전략적인 고려로 한국에 농축·재처리의 길을 열어주고 싶어도, 의회의 반발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 소식통은 "의회의 비확산 분위기는 행정부보다 훨씬 강경하다"며 "만약 비확산 기조에 어긋나는 협정을 행정부가 들고 오면 바로 거부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은 "세계 5위권의 원자력 대국으로 발전한 한국이 평화적 목적의 농축·재처리 권한을 요구하는 것을 그냥 간단하게 무시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인식도 갖고 있다. 농축·재처리 권한을 누리면서 커온 다른 원자력 강국들과 달리 유일하게 여기서 배제돼 온 한국을 '특별 경우'로 대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미국도 다른 나라들과 새로 원자력협정을 체결할 때는 '농축·재처리 권한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명시하지만, 한국과 맺는 협정에는 '한국의 체면을 세워주는 문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지금 협정보다 완화된 조건들을 내걸면서 '조건이 충족되고 미국이 동의하면 한국이 농축·재처리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미국이 동의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못 한다'는 말이므로 실질적인 변화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원전 내 핵폐기물 임시 저장소가 곧 포화 상태가 된다"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미국은 "재처리는 대규모 시설 등이 필요하고 제대로 가동하려면 수년이 걸리는 만큼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역시 재처리를 하지 않고 있는 만큼, 중간 저장 형태로 시간을 벌면서 공동으로 새로운 기술 개발 연구를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이미 한국이 요구하는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해서도 10년간 공동 연구를 하기로 했다. 미국은 파이로프로세싱이 '핵무기 개발 전용 가능성이 낮은 재처리 방식'이라는 한국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한국을 배려해 절충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이 한국과 협상하며 '시간 끌기'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도 크다. 미국이 대선 등 정치 일정을 이유로 협상을 미루면서 협정 만기 시점인 2014년까지 끌고 가면 결국 미국 측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협정은 2014년 3월까지만 효력이 유효하다.
미국은 한국이 한미 원자력협정이 완전히 종료되는 현실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농축우라늄 공급이 중단되고, 한미동맹이 흔들거리는 상황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간이 촉박해지면 결국 한국이 현행 협정 수준에서 동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