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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들이 위험하다] 중국집에 "배가 고파요" 전화한 여아, 결국에는…

화이트보스 2012. 8. 2. 11:25

시골아이들이 위험하다] 중국집에 "배가 고파요" 전화한 여아, 결국에는…

  • 홍성=최종석 기자
  • 홍성=정상혁 기자

  • 울진=윤형준 기자

  • 입력 : 2012.08.02 03:07

    [3] 굶는 아이, 대도시의 14배
    한창 클 나이에… - 실종 전날 새벽에 일어나
    중국집에 "배고파요" 전화… 방학엔 굶는 아이 더 많아
    '공격적인 복지' 필요 - 배고프단 말도 못하는 아이들, 어른들이 직접 찾아내 도와야

    29일 경북 울진군에서 만난 장모군. 덩치가 작고 말라 초등학교 3~4학년인 줄 알았는데, 장군은 "6학년이에요"라고 했다. 키는 144㎝, 몸무게는 38㎏. 또래보다 10㎝나 작다.

    장군은 아빠(40), 형(16·고2)과 함께 산다. 엄마는 장군이 두 살 때 집을 떠났다. 배를 타던 아빠는 그물 감는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한 뒤 소주를 입에 달고 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최근에는 교통사고까지 당해 병원에 입원했지만 치료비를 못 내 강제 퇴원당했다. 세 식구 생활비는 형이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다.

    굶는 아이들

    장군은 온종일 쌀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는다. 2년 전만 해도 친할머니(77)가 함께 살며 밥을 챙겨줬다. 그러나 할머니가 재혼을 한 뒤엔 가끔 반찬거리만 가져다준다. 아빠가 술에서 깨어나 밥을 직접 짓는 일은 일주일에 2~3번 정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31일 오후 장모양이 고무 대야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할머니와 지체장애 2급인 삼촌과 함께 사는 장양은 또래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키워야 할 나이에 어린이집도 가지 않고 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방학인 요즘, 장군은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냉장고를 열어본다. 할머니가 해준 반찬이나 국이 있는 날엔 국에 밥을 말아 먹지만, 그마저 없는 날이 대부분이다. 물 한 모금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형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달리는 것이 그의 유일한 놀이다. 점심과 저녁은 피자집에서 남는 피자로 때운다.

    장군은 피자마저 당분간은 못 먹게 됐다. 지난달 29일 형이 오토바이 사고가 나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형제가 똑같이 왜소한 걸 보면 너무 안됐다"며 "어려운 애들일수록 잘 못 챙겨 먹고 건강하지 못하니까 커서도 돈벌이를 못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농촌 아이들 중에서 끼니를 거르거나 영양이 부실한 아이들이 늘고 있다. 할아버지·할머니 손에 맡겨진 아이들이 할아버지·할머니가 아프면 밥 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이 없는 방학엔 그냥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도 많다.

    지난달 31일 낮 12시 충남 홍성군의 한 농촌 마을. 장모(4)양네 가족이 평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할머니 김씨(68)가 호박을 넣고 끓인 국물을 양은 냄비에 담아 내자 장양은 밥 한 공기를 전부 말았다. 자기 얼굴보다 더 큰 냄비에 얼굴을 박고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고추장이 반찬이었다. 몇 술 뜨더니 장양은 고추장을 아예 국에 풀어 빨간 국물을 만들고는 한 그릇을 전부 비웠다.

    장양은 할머니와 지체장애 2급인 삼촌과 함께 산다. 아빠와 엄마는 장양이 어릴 때 집을 나갔다.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과 삼촌 앞으로 나오는 장애인 연금, 김씨가 텃밭에 고추 농사를 지어서 번 돈 등 57만원으로 먹고산다. 김씨는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하지만 수술비 40만원이 아까워 땀만 나면 빨개지는 눈을 비비며 버티고 있다.

    장양은 할머니 손을 잡고 26㎞ 떨어진 읍내의 공립 어린이집을 다녔다. 하지만 요즘엔 할머니가 농사일로 바빠 온종일 집에서 흙장난을 하고 논다. 삼촌은 "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모두 사립인 데다 거기도 대기 인원이 많아 포기했다"고 했다. 집 근처 어린이집도 모두 10~15㎞ 거리다.

    정부지원도 제대로 못 받아

    충남 홍성 읍내에 사는 김모(10· 초 4)양도 배가 고프긴 마찬가지다. 김양은 10㎡(약 3평)짜리 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도 서울로 가더니 연락이 끊겼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한 달에 보름 정도 나무 패는 일을 해 월 60만원씩 벌었지만 두 달 전 무릎을 다쳐 누운 뒤로 수입이 전혀 없다. 당장 할아버지 수술비 300만원이 걱정이라고 했다. 할머니도 4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김양 끼니 챙기기도 벅차다. 김양네는 지역 사회복지법인에서 주는 쌀과 반찬으로 겨우 먹고 산다. 정부 지원금으로 한 달에 3번 먹는 8900원짜리 피자가 김양의 유일한 외식이다. 할머니는 "손녀딸 건강도 건강이지만 사춘기가 다가오는데 (성격이) 삐뚤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조손가정의 경우 군청에서 매달 3만원씩 식비로 쓸 수 있는 카드를 작년부터 발급해 주고 있지만 외진 곳에 사는 아이들은 카드 가맹점을 찾으러 읍내까지 나오기도 어렵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숨져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아이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 필리핀 주부 A(47)씨는 "한 달에 한 번 겨우 읍내에 나와 반찬거리를 사간다"고 했다. 홍성에서 18년째 조손가정 아이들을 돕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청로회 이철이(56)씨는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라서 선생님한테도 배고프다는 말을 잘 안 한다"며 "지역이 넓은 농촌에선 어른들이 이런 아이들을 찾아내서 돕는 '공격적인 복지'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


    [천자토론] 종일 방치된 시골아이들, 범죄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