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8.05 23:26
8강전에서 바람은 우리 등을 밀어주지 않았다. 영국팀은 대부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일급 선수들이었다. 지붕을 닫은 돔구장에서 7만여 홈 관중이 내지르는 함성이 혼을 빼놓을 듯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 선수들은 상대 선수들의 화려한 이력에 주눅 들지 않았다. 홈 관중의 일방적 영국 응원을 우리 팀을 향한 응원가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두 차례 페널티킥 선언이 위기였다. 골키퍼 정성룡은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몸을 날려 한 골을 골대 밖으로 쳐냈다.
멀리서 지켜보는 조국 팬들조차 가슴이 두근거리는 승부차기에서도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고 골대 이 구석 저 구석에 골을 차 넣었다. 교체돼 들어온 골키퍼 이범영이 다섯 번째 영국 키커의 슛을 쳐내고 기성용이 마지막 골을 넣은 것으로 기적은 완성됐다. 기성용은 한일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확정 지었던 10년 전 홍명보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국 축구에서 런던올림픽 대표팀만큼 감독과 선수가 깊은 신뢰로 뭉친 대표팀도 드물다고 한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2년 올림픽팀을 이끌면서 선수 한 명 한 명을 식구처럼 보살폈다. 선수들이 8강전에서 정신력과 체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아낸 것도 홍 감독에 대한 믿음과 보답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축구계는 말한다. 2002 월드컵 이후 주춤하던 한국 축구는 이제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
한국 선수단은 열대야를 뜬눈으로 밝히며 런던에 눈길을 붙박아놓은 국민을 감동시키고 있다. 유도 송대남은 체급까지 올려가며 서른셋에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남자 양궁 개인전 첫 금메달을 딴 오진혁도 14년 땀방울이 몸에 밴 서른한 살 늦깎이다. 갓 스무 살 김장미는 사격경기 마지막 다섯 발에서 승부를 뒤집었다. 어처구니없는 오심(誤審)에 꺾이지 않나 걱정스럽던 수영 박태환과 펜싱 신아람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선을 다한 선수단 모든 젊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