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위원
현대차가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생산직 채용이나 정규직화 시늉을 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글로벌 차원으로 접근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현대차의 국내·해외 근로자는 각각 5만7000명과 2만3000명이다. 그런데 차량 생산 비중은 국내 5.5 대 해외 4.5다. 해외공장의 생산효율이 월등히 높다는 의미다. 현대차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정몽구 회장이 왜 “생산효율이 안 오르면 국내 생산직은 단 한 명도 늘리지 않겠다”고 못박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일자리에 인색하다고 현대차를 함부로 비난할 수도 없다. 지금 세계 자동차 업계는 구조조정 칼바람이 한창이다. 상반기에 1조원의 적자를 낸 프랑스의 푸조시트로앵은 최대 공장을 폐쇄하고 8000명을 잘라내야 할 위기다. 이탈리아의 피아트는 “앞으로 감원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 자동차부품공업회는 “재정위기 여파로 유럽 자동차업계에서 50만 명이 밀려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현대차가 국내 근로자 총량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삼성전자엔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민심을 자극할까 봐 국내외 생산비중을 공개하지 않는다. 대한항공은 요즘 삼성전자의 ‘외도’에 골치가 아프다. 한때 항공화물의 60%가 넘던 IT제품 비중이 40%로 곤두박질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질 좋고 값싼 인력을 좇아 베트남 등지로 생산라인을 옮겼기 때문이다. 드디어 지식경제부도 열 받은 모양이다. 휴대전화 수출이 10개월 연속 감소해 무역흑자가 쪼그라들자 “휴대전화 해외 생산이 80%나 된다”며 영업비밀까지 공개했다.

이미 경차와 피처폰은 국내에서 생산할수록 손해를 본다. 삼성의 ‘메이드 인 차이나’ 휴대전화와 현대차의 ‘메이드 인 인디아’ 경차가 국내 시장을 휘젓는 것은 시간문제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대기업은 투자를 늘리라”고 윽박질러도 소용없다. 투자의 대부분이 생산설비 고도화에 집중될 뿐이다. 괘씸하다며 법인세를 올리고, 대기업을 구박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제조업 공동화(空洞化)’는 글로벌 경쟁의 부산물이자 선진국의 공통된 현상이다. 일자리에 인색하다고 대기업을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구조적 모순을 풀지 못하면 ‘좋은 일자리’는 신기루일 뿐이다. 단 하나, 예외적인 성공 비법은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의 ‘아우토 5000’이다. 이 회사 노조는 1993년 근로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16% 삭감해 경영정상화에 성공했다. 2009년 독일 기업과 노조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그 지혜를 따라 배웠다. 지금 유로존에서 독일 혼자 잘나가고 5%대 실업률의 ‘일자리 기적’을 뽐내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공급경제학’의 임금 삭감과 법인세 감세라는 쓰디쓴 처방으로 체력을 보충한 것이다. 반대로 요즘 우리 대선 주자들은 증세와 재정 확대의 ‘수요경제학’에 목을 매고 있다. 모두 꿈을 깼으면 한다. 역사적으로 피와 땀과 눈물 없이 좋은 일자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