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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다가 지칠 이름, 안철수

화이트보스 2012. 8. 29. 17:00

부르다가 지칠 이름, 안철수

기사입력 2012-08-29 03:00:00 기사수정 2012-08-29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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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자신의 책 ‘나의 도전 나의 열정’ 사인회를 위해 강원 강릉시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정 전 대표를 수행한 한 인사는 모여든 사람들 뒤편에 있었다. 이 인사 앞으로 지나가던 한 무리의 고등학생이 인파 속에서 정 전 대표를 발견했다.

“누구야?”

“정몽준이네.”

“정몽준이 누군데?”

“무식하기는. 삼성 회장이잖아.”

이 얘기를 전해 준 인사는 학생들의 무관심함을 탓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가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벌써 10년 전 일이다. 현재 고등학생이라면 당시 코흘리개 아이였다. 이들에게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골을 넣고 주먹을 불끈 쥔 선수는 기성용이지 홍명보가 아니다.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측근에게 물었다. “지사의 지지율이 왜 경기도에서도 오르지 않는 거예요?” 돌아온 답은 이랬다. “시골에 가면 경기도지사가 아직도 임창열인 줄 아는 사람도 있어.”

농반진반이지만 의미심장했다. 김 지사의 자랑 중 하나는 “경기도관찰사로는 698대로, 최장수”라는 점이다. 그런 그가 인지도에서 10여 년 전 도정을 맡았던 임창열 전 지사에게 밀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지도와 지지도가 비례하지 않는 것을 어쩌겠는가.

요즘 국회 주변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얘기는 “김두관이 뜰 줄 알았는데…”다. 김 전 경남도지사는 출마 선언만 하면 전국의 이장과 전문대 출신들이 자신을 지지할 줄 알았겠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솔직히 상당수 국민은 김두관이 누구인지조차 잘 모른다. 국민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정치인의 인기는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정치권에 몸담은 시간과는 더욱 상관없다. 오히려 정치를 오래 할수록 국민이 식상해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동할 개연성이 크다. 과거의 인기는 그래서 신기루다. 이런 정글의 세계에서 정치인이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선택받을 기회를 얻으려면 시대와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더욱이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거나 30년 동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절망을 경험하지 않고도 선택의 반열에 올랐다면 조상께 감사할 일이다.

소설 ‘11분’에서 파울루 코엘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시간도, 지혜도 아니다. 사랑 그리고 절망이다.” 박근혜, 문재인 후보는 절망 속에서 변했다. 안철수 원장은 반대다. 그를 변화시킨 건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찾아온 폭발적 사랑이다.

그럼에도 안 원장은 1년째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국민의 얘기를 더 듣겠다. 내가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고민 중이다.” 누군가는 그가 정말 순수해서 그런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1년째 짝사랑하는 지지자들은 뭔가. 그는 오히려 집요하게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되묻고 있다. ‘너는 나를 끝까지 지지할 것이냐’고. 감당하기 힘들면 내려놓고, 의지가 있으면 짊어지면 될 일을 갖고 안 원장은 지지자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선은 ‘민주주의의 결핍’이 됐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대선후보 선출이 계속 늦어지면서 유권자의 선택이 졸속으로 바뀌었다”고 개탄한다. 안 원장은 도대체 뭘 더 듣고 싶은가.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blog_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