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9.12 03:04
['건강파트너십 프로그램'… 癌 이겨낸 경험·지혜 들려줘]
"수술후 정기검진 받아도 의사 상담은 1분 남짓… 환자 말 들어주는게 그들에게 용기 주는 것"
매주 전화로 30분~1시간씩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 전해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암병원에서 이미자(42·가명)씨는 주광재(60·주부)씨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나이도 다르고, 고향도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은 유방암을 앓았다는 것이다. 똑같이 가슴 절제 수술을 받았고, 밋밋해진 가슴 때문에 '여자'로 살아나가기 어렵다는 생각도 했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꺼렸다. 둘 다 수영을 좋아했지만 수영장에 못 갔다. 하지만 주씨는 2000년 유방암 수술 후 5년간 재발하지 않아 완치 판정을 받았고, 이씨는 지난해 발병해 지금도 암세포와 싸우고 있다. 주씨는 "수술을 하고 10년, 20년이 지나도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분들은 한(恨)을 쌓고 평생을 살아가는데 미자씨는 빨리 극복해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대학교 암병원 6층의 쉼터 ‘행복 정원’. 윤영호 의대 교수(오른쪽부터)와 암 전력(前歷)을 가진 ‘건강파트너십 프로그램’의 파트너 이강우·주광재씨가 둘러앉아 40대 암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지호 객원기자 yaho@chosun.com

주씨와 이씨가 만난 것은 지난 5월 '건강파트너십 프로그램'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주씨처럼 암을 이겨낸 66명의 '왕년 암환자'들이 이씨와 같은 '현재 암환자' 200여명과 연결돼, 자신들이 암세포를 이겨낸 경험과 지혜를 알려주며 돕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2009년 "암을 극복하려면 치료도 중요하지만, 치유도 중요하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서울대병원 암병원 윤영호(48) 교수의 주도로 의사·교수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이후 6개월의 교육을 거쳐 한때 암환자였지만 완치된 '왕년 암환자'들 중 66명이 '파트너'로 뽑혔다. 프로그램이 본격 시작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지금 66명의 파트너들은 3~4명의 암환자들을 각각 맡아 매주 전화로 30분~1시간씩 고민상담·건강상담을 하고 있다.
"일절 건강 상식과 관련된 조언은 못 해주게 돼 있어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소리도 여러 번 참았죠. 수술받고 1년 남짓 된 사람은 뭐라도 몸에 좋은 것을 알고 싶어 하지만,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섣부르게 말하면 안 됩니다. 다만 암환자의 아픔에 같이 끌려 다니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저렇게 하면 어떨까요'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맺어져 새로운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은 주씨와 이씨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한 유명호텔 요리사로 지난 2005년 위암을 앓았던 양동혁(47)씨는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은 김철현(66)씨와 병이 나으면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기로 했다. 양씨는 "처음에는 '이게 끝인가'라면서 죽음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 김씨의 모습에서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고 했다. "죽음만 생각하는 그런 부분들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고, 누구나 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둘은 과거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고, 앞으로 둘 앞에 주어진 미래만 생각하기로 했다. 각자 '미래에 하고 싶은 일 100가지'를 적었는데 "언젠가 꼭 남을 위한 사회봉사를 하고 싶다"는 항목이 겹쳤고, 지리산에서 요양 중인 김씨의 병세가 나아지는 대로 함께 봉사에 나서기로 했다.
위암으로 위의 절반가량을 잘라낸 파트너 이강우(57·공인중개업)씨는 "우리는 치료가 아닌 치유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의사·간호사가 의학적으로 수술·약 처방 등의 '치료'를 해줬다면, 자신들은 암환자의 심정을 이해해주는 정서적 치유자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그는 "암 수술을 하고 나서 정기 검진을 받아도 고작 1분 남짓 의사의 상담을 받는 게 전부였던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어느샌가 환자가 우리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환자를 기다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삶의 일부를 의지하면서 희망을 찾아가는 게 아닐까요." 지난 7월 암 완치 판정을 받고 지금은 또 다른 암환자 두 명을 돕고 있는 파트너 유선주(53·자영업)씨의 말이다.